[한완상 칼럼] 적대적 공생관계
한완상 칼럼
상대방을 초전박살 내려는 두 집단이 있다고 하자. 두 집단 간 갈등과 증오의 수준이 올라갈수록 각 집단 내의 입지가 강화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상대방을 대번에 제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강경세력이 바로 그들이다. 역으로 이들의 권력이 안으로 강화될수록 두 집단의 대결 또한 그에 비례하여 악화된다. 상식적으로 이런 현상을 ‘양극은 서로 통한다’는 말로 설명한다. 극좌와 극우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적대적 공생관계다.
물론 한 집단의 강경세력이 그 적대집단의 극단세력을 의도적으로 도울 리 만무하다. 오히려 상대방을 주적으로 규정하며 초전에 궤멸시키려 한다. 그런데 이런 적대적 의도와는 정반대로 한쪽의 호전적 극단세력은 다른 쪽의 극단세력의 입지를 결과적으로 강화해 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관계를 우리는 오늘의 남북관계에서 쉽게 확인하게 된다.
지난 60여년 동안 남과 북은 이념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적대관계를 형성해 왔다. 1950년부터 53년까지는 열전으로, 그 후 오늘까지는 냉전으로 상대의 저력과 성취를 훼손하는 데 소중한 자원을 동원해 왔다. 한때 이런 대결이 잠시 완화되는 듯하다가 또다시 첨예한 대결 국면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이 서울과 평양에서 발표되던 때 한편으로는 감동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당혹해할 만큼 강한 해빙 기류가 흘렀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남북 각기 자기 체제를 안으로 더욱 통제했다. 91년 남북 기본합의서가 나올 때만 해도 화해 분위기가 잠시 감돌았으나 한-미 합동군사훈련 등으로 곧 다시 관계가 험악해졌다. 2000년 6월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는 한때 파상적으로 호전되었다. 그러나 최근 북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또다시 남과 북은 긴장 국면으로 돌입한 듯하다. 이런 부침 속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법칙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남북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양 체제 내부 강경세력의 목소리와 영향력이 예외 없이 커진다는 점이다.
이런 악순환을 종식시키려면, 첨예한 대립과 갈등 자체에서 이득을 보는 세력이 극복되어야 한다. 먼저 강경세력 스스로 깨달아야 할 진실이 있다.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상대방의 입지가 그 자신들의 과격한 언어와 행동으로 인해 더욱더 강고해진다는 역설이다. 위협적인 행동을 보일수록, 상대방은 기다렸다는 듯 그 위협을 빙자해 더욱 강경한 대응을 앞세우며 그들 체제 안에서 기득권을 더욱 즐긴다. 그만큼 두 집단 사이의 증오와 갈등은 심화된다. 그뿐인가. 각 집단 안의 소중한 자원은 생산적인 곳에 투입되기보다는 파괴적이고 비생산적인 분야에 쏟아붓게 된다. 이런 악순환은 마침내 모두에게 고통과 손실만을 증가시킬 뿐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보복으로 서로가 만신창이가 될 뿐이다. 적대적으로 공생하게 되는 이 야릇한 악순환의 고리를 단절시키는 것이야말로 두 집단의 화해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필수적이다.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전환시키려면, 각 체제 안에서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려는 세력이 더욱 힘을 가져야 한다. 보수이되 합리적이고 열린 보수여서 억울한 인간 고통에 민감하게 대응하게 되고, 또 진보이되 교조적 독선을 넘어서서 열린 마음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공동선을 추구하게 된다면 합리적인 평화세력이 착실히 뿌리내리게 될 터이다. 아무쪼록 올해는 남북간 적대적 공생관계가 우호적 상생관계로 승화되는 역사적인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남북간 평화는 물론 각 체제 안에서 번영도 더욱 뻗어나게 될 것이다.
한완상/대한적십자사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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