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세의 나이를 자살로 마감한 가수 김광석.
아픔이 있던 시대를 살아서인지, 자신의 정채성을 찾기위해 몸부림 쳐서인지 그의
노랫말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네요.
김광석의 다시부르기를 들어봅니다.
김광석의 노래는 너무나 무던하게 일상을 담아내기 때문에 과장됨 없는 다큐멘터리와 같다.
흘리듯 듣던, 가슴에 새겨 가며 듣던 그의 노래를 들을 때면 언제나 가슴 안에서 울컥 치미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것도 그의 노래가 가진 일상의 힘일 것이다.
어느 날 본 모 이동통신사 광고에서 허름한 이발소에서 파르라니 깍은 머리를 보이던 청년의 모습과 함께 들려오던 ‘이등병의 편지’는 십년 전이나 십년후, 그리고 현재까지도 군입대를 앞둔 청년들의 심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남녀 주인공의 안타까움을 그대로 대변하듯 흘러나오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또한 그렇다.
한번쯤 누구나 길을 걷다 멈춰서 그 푸른 가을 하늘을 보며 생각 해 봤을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사랑 때문에 밤 새워 본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사랑이라는 이유로’, 내 부모님을 보면서, 혹은 내 나이 육십이면 나도 느낄 거 같은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에서 민중 가요 ‘광야에서’까지 다시부르기에 있는 노래들은 그 면면들이 다양하다.
또한 많은 가수들이 다시부르기에 있는 곡을 리메이크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다시부르기는 언제든 다시 불러도 좋을 노래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그의 노래를 다른이들이 다시 불러 다른 감흥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김광석이 주는 그 느낌은 김광석만의 울림으로 인해 더욱 우리 정서에 깊숙한 뿌리를 내리고 토양분이 되어준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그의 노래는 나뿐 아니라 세상에 남겨진 그를 모르는 다른 누군가에게, 또는 그를 아는 모두의 삶 속에서 순간순간 녹아 빛을 발하고 있다.
그는 우리 곁에 없으나 그의 노래는 우리와 같이 살아있음에 감사한다.
======================== 김광석 님의 노트 中 ==================
그는 한 인터뷰에서 “‘너의 노래에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수로서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5집을 기다리고 있다고, 좀더 된장국 냄새가 나는 노래 를 하고 싶다고 고백했단다. 그는, 모르는 것도 많았던 사람이다.
『공연이 중반을 넘어섰고, 다들 축하해 주고, 열심이었다고, 특종이 라고 악의 없는 칭찬들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 속에 일고 있는 허전 함은 무엇 때문인가. 나를 치열하게 해준 것은 무엇이었나. 후회도, 보람도 아닌 그저 살아있음에 움직인… 그 움직임이 불쌍하다. 무료 하다. 사람들이, 울고 웃고 박수치는 그 사람이, 사람들이 무료하다. 즐겁지 않은 이유를 모른 채 나는 여전히 즐겁지 않다. 가라앉는 것 인가. 무섭구나.』 <1995년 8월 즈음>
훗날 자신의 노래가 삶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에게 비상구가 되길 바란다는 그에게도 노래는 그의 비상구였던 셈이다. 자신이 갖 고 있던 깊이와 크기, 넓이를 표현할 수 있는 비상구였다. 비상구로 의 탈출. 유일한 삶의 즐거움.
『꿈꿀 수 있는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들은 늘 꿈을 꾸면서 살아갑니다. 그 꿈이 실현 가능한 것도 있고, 전혀 황당한 것일 수도 있지만요. 꿈을 꾸는 사람의 얼굴을 보면 늘 희망 적입니다. 이룰 수 있는 꿈이건, 이루지 못한 꿈이건 꿈을 꿀 수 있 다는 자체만으로도 우린 행복합니다. 꿈을 꾸는 사람의 얼굴. 저는 언제나 그 얼굴이 되고 싶습니다.』 <김광석의 ‘수첩’ 중에서>
『웃고 싶다. 창자가 뒤틀리고 꼬여서 끊어지도록, 하도 웃어 턱 뼈 에 금이 가도록 웃고 싶다. 다신 입이 다물어지지 않도록 웃고 싶다. 두 눈 까뒤집고 숨이 막힐 정도로, 헉헉거리도록, 미친 놈 소릴 들으 며 골목 똥개의 꼬리를 보고도 웃고만 싶다. 웃다 웃다 하도 웃어서 눈물이 나게, 옷에 소금기가 다 배도록 눈물이 나게 웃고 싶다.』 < 대학시절 노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