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부시대통령 발언 ‘왜곡보도’ 의도 논란
[한겨레 2006-10-18 12:07:27]
[한겨레] 한-미간 갈등을 고조시키기 위한 ‘의도적인 왜곡보도’인가, 기자와 편집간부의 부주의와 실수에서 기인한 ‘불충실한 보도’인가?
<조선일보>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난 11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북한 핵실험 등 현안에 대한 특별 기자회견 내용을 보도하는 과정에서 주요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누락시켰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사실은 <한겨레> 필진네트워크와 <오마이뉴스> 블로그 등에서의 문제 제기를 통해 인터넷에서 확산됐다.
누리꾼들은 참여정부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여온 <조선일보>가 북핵사태와 관련 미국과 한국이 이견차를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번역·기사 작성 과정에서 사실을 왜곡했다고 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11일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북한 선언과 관련, “우방과 미국의 국익을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강구할 것이지만, 북한을 침공할 의사는 없다”며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중국과 한국, 일본, 러시아가 북한 핵실험을 강력히 비난한 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부시가 한국에 고마움을 표시한 이 부분이 12일자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빠졌다. 조선은 이날 1면과 3면에 이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조선일보는 “군사대응 이전에 외교적 해결할 것”이라는 제목으로 부시 기자회견 문답내용까지 실으며 “중국·러시아·일본 지도자들은 북한의 핵실험을 강력히 규탄했다. 그들의 동참에 감사한다”고 보도, 부시가 언급한 나라들 가운데 ‘한국’만 슬그머니 빼 북핵사태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는 것처럼 호도했다. 조선 12일치, “부시, 중·러·일 정부에 감사 표했으나, 한국은 언급하지 않았다””
또 최종판에서 일부 달라졌지만, 1면 기사 ‘ 부시 “모든 국가가 심각한 조치 취해야” 기사에서는 “부시 대통령은 회견 모두 발언에서 북한의 위협에 강력한 비난과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중국과 러시아, 일본 정부에 감사한다고 말했으나, 한국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사실 자체를 왜곡하기까지 했다.
부시 기자회견을 직접 듣지 못했거나, 백악관 홈페이지에 올라온 부시의 연설문을 직접 확인하지 않은 채 <조선일보>를 통해서만 이 사실을 접한 독자에게는 “부시가 한국에만 고마움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왜곡 기사’가 ‘사실’로 전달된 셈이다.
다른 언론들은 어땠는가? 이날치 <프레시안>와 <연합뉴스>에서는 부시가 한국에도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보도됐다. 프레시안은 이날 ‘부시가 말하는 외교적 해법의 뜻은?’기사에서 “부시가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가 북한 핵실험을 강력히 비난한 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는 “우방국 보호 위해 모든 방법 강구(종합2보)” 기사에서 부시가 북한의 핵실험에 맞서 “북한 체제에 대한 심각한 대응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해 역내 우방 및 유엔 안보리와 협력하고 있다”며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가 북한 핵실험을 강력히 비난한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 홈페이지(http://www.whitehouse.gov/news/releases/2006/10/20061011-5.html)에는 라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부시 대통령 11일 발언내용
I'm pleased that the nations in the region are making clear to North Korea what is at stake. I thank China, South Korea, Japan, and Russia for their strong statements of condemnation of North Korea's actions. Peace on the Korean Peninsula requires that these nations send a clear message to Pyongyang that its actions will not be tolerated, and I appreciate their leadership. 조선일보 보도과정 보면 조선일보의 ‘의도’ 파악돼
조선일보의 보도가 의도적 왜곡인지, 단순한 번역실수인지는 최초 보도 이후의 과정을 살펴보면 방향이 잡힌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 내용은 공개되지 않은 ‘불완전한 음성 정보’가 아니라, 백악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듯 발언 전문이 100% 공개적으로 배급되는 상황이다. 한국의 기자들은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부시의 말을 직접 듣고 메모해서 기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부시의 발언을 보도한 다른 언론사나 통신사의 보도에 기초해 보도한다. 더욱이 한국의 다른 언론사들은 조선일보처럼 ‘한국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보도하는 대신, 부시대통령이 한국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시했다고 보도했다. 백악관 원문에서 보듯 한국은 중국에 이어 두번째로 언급되어 있다. 조선일보가 나중에 이 기사를 수정하면서 ‘한국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내용은 삭제했지만, 여전히 “중국 러시아 일본 지도자들은 북한의 핵실험을 강력히 규탄했다. 그들의 동참에 감사한다.”고만 보도했다. (http://srchdb1.chosun.com/pdf/i_service/read_body.jsp?ID=2006101200543) 조선, 라이스 미 국무장관 기자회견 내용도 논란
조선일보의 번역 논란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한·중·일 3개국과 러시아 순방에 앞서 16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연 기자회견을 보도할 때도 이어졌다.
조선은 17일 인터넷판 ‘라이스 “한국 결정 두고 보겠다” 고강도 압박’ 기사에서 라이스가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의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지속방침에 대해 “이례적으로 강도높은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하며 강한 압박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는 한겨레와 세계일보 등이 18일자 신문 ‘미, 경협등 한국 운신폭 아예 차단’ ‘라이스 미 국무, 남북경협 한국 결정 지켜볼 것’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라이스가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등 남북경협에 대한 압박의 고삐를 공개적으로 죄고 있다”고 보도한 것과 차이가 있다. 이들 언론은 라이스의 발언이 ‘남북경협 중단’ 요구를 담고 있다고 분석하긴 했지만, 조선처럼 ‘이례적으로 강도높은’ 같은 표현을 쓰지 않았다.
실제 이날 라이스는 ‘한국이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사업을 중단시키지 않는다면 실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한국이 대북 활동 전반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켜볼 것이다. 그런 활동의 많은 부분은 북한의 행동과 관련이 있지 않나 본다. 한국이 모든 대북 활동을 재평가할 것임을 분명히 한만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지켜볼 것”이라고 언급했을 뿐 직접적인 불만 표시나 강도높은 압박 방침을 표시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또 다른 발언의 번역에서도 혼란을 줬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조선은 라이스가 ‘제재 이행을 위해 이제까지 미국의 취한 조치에 대해 한국의 소극적인 태도가 불만(uneasy)스럽지 않은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한국 등 일부 국가들이 제재 이행을 꺼린다는 건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이를 이행하고자 하는 이 지역 국가들의 자연스런 우려이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한국을 비롯한 당사국들의 강력한 반응이 있었다고 본다”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연합뉴스 기사에서는 대북 제재 이행과 관련한 ‘한국의 불안이 걱정(uneasy)되느냐’는 질문에 라이스가 “결의 이행이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도록 이뤄져야 한다는 이 지역 국가들의 우려(concern)는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나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으로 번역됐다. 한겨레는 “긴장 고조에 대한 지역 국가들(한국·중국)의 자연스러운 우려를 이해한다. 우리(미국)도 그렇고 모든 당사국들도 지역 긴장을 고조시키지 않고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민언련, “조선 기사, 사실보도라는 취재윤리 위반한 것”
민언련은 이런 조선의 보도와 관련해 “북핵사태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극단적인 사태로도 비하될 수 있기 때문에 보도에 있어서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며 “그러나 조선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들은 뚜렷한 대책도 없으면서 무조건적인 강경책만이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사태를 호도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송지혜 기획부장은 “조선의 기사는 사실보도라는 취재윤리를 위반한 것”이라며 “언론사의 정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실을 입맛대로 바꾸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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