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음악을 좋아한다'고 드러내서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그 누구도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는 것 같다.
그만큼 다른 취미생활과는 그 궤를 달리할만큼 생활과 밀착해 있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마 용이한 접근성이 한 몫할테지만, 그 이상으로 '소리'라는 것
이 원초적인 감각이기 때문에 시각적, 혹은 감성적인 기억과 결합하여 오랫동안 뇌리
에 남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나 또한, 처음 '음악'을 오감을 통해 느꼈던 것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한
다.
어릴 때 부터 음악을 좋아하셨던 부모님덕에 양질의 음악을 항상 듣고 지낸 것은 사실
이지만, 중1.. 그 뜨거웠던 여름이 되어서야 나는 음악을 주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
다.
이제는 철수해버린 타워레코드를 기억하시는가?
당시 부모님 생신 선물을 고르려고 거기에 갔던 나는, 일반 팝매장과는 동떨어져있는
격리된 공간을 처음으로 보게 된다. 그때까지 '이상한 음악'으로 여기고 있었던 소위
'재즈' 섹션이었다. 완전히 차음처리된 그 공간은 어린 나에게 신선하기 그지없었으
며, 그때까지 느껴보지못한 어른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A에서 Z까지 훑어보며 느낀 것은,
첫번째로 아는 이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으며
두번째는 갖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ECM 섹션이었다.
정적이며 아름다운 앨범 재킷. 고급스럽고 심플하게 박힌 ECM 로고.
그 내부에 담겨있는 가치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레이블 ECM의 앨범들은 시각적인 완
성도 또한 압도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keith jarrett trio의 standards vol.1 이었다.
이것이 나의 첫 재즈 음반이었고,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게 있어 가장 사랑스러운 음반
이다.
현존하는 쿨재즈 피아니스트들에 대해 이야기할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괴
짜 아저씨의 디스코그라피는 크게 두갈래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솔로 활동과 트리오 활동이 그것인데(ECM 뉴 시리즈의 클래식 라인업을 솔로쪽
에 포함시킨다면) 다분히 자기만족적인 연주를 하는 솔로 활동과는 달리, 트리오는
감성의 레인지가 훨씬 폭이 넓고 대중적이다.
개인적으로는 트리오 활동을 훨씬 선호하는 편인데, 잭 디조넷과 개리 피콕이라는 기
라성같은 멤버는 물론이거니와, 키스 재릿또한 어깨에 힘을 약간 뺀 여유있는 퍼포먼
스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키스 재릿 트리오는 스탠다드 넘버를 자주 연주하는 편인데, 수 많은 곡들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아까 언급했던 standards vol.1의 마지막 트랙인
god bless the child다.
아마도 현존하는 god bless the child 연주들 중에서 가장 긴 러닝타임(15분 30초)을
가지고 있으나,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임프로비제이션 덕에 결코 지루하지 않다.
모든 파트가 각 한번씩의 임프로비제이션을 펼치며, 트리오 멤버 모두 아주 창의적인
연주를 목표로 한다기보다는 편안히 앉아 jam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 떠오르게 하는
따뜻한 연주가 일품이다.
지금까지 약 15년간 이 곡만 못해도 천번 이상을 들었겠지만, '익숙함'이 미덕이 될
수 있는 연주는 정말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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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만남이 인생을 좌우하게 되는 일은 참으로 비일비재하지만. 이 한장의 음반
을 만남으로써 내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부분을 멋지게 시작하게 해준 것에
항상 고마움을 가지고 있기에, 혹여 좋은 음반을 원하시는 분이 있을까 해서 서툰 글
이나마 남겨 보았습니다.
음반이나 글 내용에 대해 궁금하신 분이 계신다면 리플로 말씀해 주시면 늦게라도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주말 잘 마무리 하시고 환절기 건강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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