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규님께서 2006-09-06 22:54:18에 쓰신 내용입니다
: 개인적으로 하도 궁금한게 있어서 회원분들에게 질문드립니다.
: 몇해동안 저는 현 대통령이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 그런데, 얼마전 이곳 시시토론 게시판을 알게되면서 내가 뭘 잘못 알고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많아 졌습니다.
: dvdprime에도 비슷한곳이 있던데 그곳 분위기도 여기와 흡사하더군요.
: 다른 의도없이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 이곳만의 흐름인지 아니면 제가 뭘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요?
: 오해하고 있다면 왜이렇게 현 정부는 인기없이 많은이로 하여금 욕을 먹고 있는 것인가요?
: 몇 몇 신문때문인가요?
: 저 개인도 그렇게 멍청하진 않고 우리국민들도 악의적인 보도로 인해서 쇄뇌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
이상규님의 답변에 대해 댓글을 달다보니 너무 길어져서 이렇게 따로 답변글을 답니다.
국민들이 멍청하기 때문에 속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멍청하지 않아도 충분히 속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는 황우석 사태가 우리 사회에 알려준 소중한 진실입니다.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고 하시는 그 뭔가가 무언지는 아무도 모를 것 같습니다. 대통령의 사소한 잘못 말고 큰 잘못이 무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엉뚱하게도 노무현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연예인들의 사생활 들추기처럼 개인적인 품성이나 자질의 문제가 거론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방지축이다. 경솔하다. 말이 많다. 외곬수다. 능력이 없다.
이런 개인적인 personality는 好不好의 문제일 수는 있어도 善惡이나 正誤의 문제는 아닙니다.
개인 노무현을 비판하는 것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을 비판하려면 대통령으로써 그가 행한 통치행위에 대해 비판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노무현을 비판하는 것은
이라크 파병,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 양극화를 가속시킬 수 있는 한미 FTA 추진 등입니다.
그에 반해 그의 성과로 보는 것은 검찰의 독립성 강화, 권위주의의 해체, 필요하긴 하지만 뜨거운 감자여서 누구도 쉽게 건들지 못했던 세금문제의 공론화 등입니다.
정책에 비판이라면 얼마든지 바람직합니다만 엉뚱하게도 지극하게 추상적인 '능력이없다'거나, 말이 많다(세상에 별 이상한 비판도 다 있습니다)거나 코드인사(수구세력들이 상대방 공격하는 말 만들어내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죠. 자신의 정책을 잘 수행해 줄 인사를 뽑는 것이 코드 인사라서 안된다니 ㅡㅡ;)라거나 좌충우돌한다거나 하는 비판은 저로서는 비판이 아니라 트집잡기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반노무현 정서가 광범위한 대세를 형성한 것은 단순하게 보면 조선일보를 위시한 반노 언론의 극심한 흔들기와 흠집내기가 성공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하게 본 것이고 좀 더 구조적인 문제를 보면 그것은 우리 역사 속에서 노무현이라는 인물이 갖는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소 소설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제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수구기득권 세력은 무려 40년 이상을 집권하면서 그 토대를 공고히 해 왔습니다. 비록 87년 이후부터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무너질 만한 세력은 아니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97년 대선이나 2002년 대선같은 경우도 보수 대 개혁의 대결이 아닌 수구 기득권 세력 대 비기득권 세력의 대결구도로 가져 감으로써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97년에 대선승리를 위해서 김대중은 김종필과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는데 김종필은 잘 알다시피 꼴통으로 치면 한나라당에 밀리지 않는 꼴통이었죠. 하지만 그 역시 기득권 세력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반기득권 세력으로서 김대중과 연합할 수 있었고 이런 광범위한 반기득권세력들이 똘똘 뭉쳐야만 겨우 겨우 기득권 세력에게 승리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것이죠.
노무현의 집권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데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통해 충청권의 지지를 확보함으로써 다시 한번 기득권(비록 집권을 못하고 있었지만 이때도 역시 한나라당은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세력이죠. 지금까지도 마찬가지고)대 비기득권자의 대결로 전선을 형성한 것이 주효했고 여기에 승리를 확신한 한나라당의 방심이 덧붙여 또다시 기사회생의 승리를 이룩하게 됩니다.
이 두 번의 대선을 보면서 알수 있는 것은 아직까지 우리사회 수구 기득권세력의 힘은 대단히 크고 적어도 단일 세력으로서 이들에 대항할 수 있을 만한 세력은 없으며 전선이 분명하게 수구 기득권세력과 비기득권 세력의 대결로 확연히 그어질 때에만 겨우 승리할 수 있을 만한 정치지형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지형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전선의 형성에 있어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 것이 바로 탄핵사건인데 탄핵 사건은 패배감에 분노를 참지못한 기득권 세력 최악의 자충수였지만 역으로는 기득권 세력들의 체질을 개선하고 대오를 정비하게 해 준 약이 된 동시에 (마치 공황이 자본주의적 모순이 낳은 찌꺼기를 폭력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듯이...) 비 기득권 세력에게는 자신의 정치적 색채를 분명히 드러내게 함으로써 전선을 흐트러뜨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즉 그동안 기득권 세력에 대한 반대로 연합되어 있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세력들이 기득권 세력의 일시적인 약화로 연합의 당위가 줄어들자 이제 독자적인 자신의 색깔을 강조하게 된 상황을 만든 것이죠. 민노당이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나타내게 된 것 뿐만 아니라 열우당 내에서도 각 계파가 서로 다른 색깔들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반면 이런 와중에서 기득권 세력들은 와신상담 재기의 기회를 노렸고 행정수도 이전반대라는 공격점을 시발로 다시금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오히려 기득권 세력대 비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개혁적 우파(즉 현정권)대 이에 대한 반대세력의 대결로 전선을 이동시켜 버립니다. 이때 민노당이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한 것이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전선이 유지될 수 있을 정도로 일시적이나마 정치지형의 변화가 있었죠. 그만큼 탄핵의 반사이익으로 열우당이 얻었던 지지가 컸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정치노선은 민노당에 가깝습니다만 이때 민노당이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했던 것에 대해서는 정말 신랄하게 비판하고 싶네요)
하지만 전선의 이동이 장기화되자 열우당은 그걸 버틸 수 있는 힘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당연한 것이 열우당의 상승은 탄핵이라는 사건이 불러온 일시적인 반사이익이었지 사회의 근본적인 역학 관계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힘겨루기에서 열우당(개혁적 우파들)은 패배하게 되고 이는 세력의 약화를 더 부추기는 계기가 되어 이후 일사천리로 쭈욱 밀려버리게 됩니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 전선의 새로운 형성이 없이 수구적 보수 대 개혁적 보수는 서로 맞짱을 뜰 수 있을 만한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수구적 보수 vs [개혁적 보수, 진보, 비기득권 수구 까지를 모두 합한 비기득권 세력]의 싸움이 되어야 이길까 말까한 싸움인데 오히려 개혁적 보수 vs [수구적 보수, 진보, 기타 반노무현 세력]의 싸움으로 전개되었으니 도저히 이길 수가 없는 것이죠.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의 결과는 그러한 제 세력들의 역관계와 우리사회에서 전선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나를 여실히 보여준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지자체 선거 결과가 참으로 허탈하긴 하나 요즘 전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우리 역사를 보거나 세계 어디의 역사를 보거나 개혁이 철저하게 성공하지 못하면 반동의 시기가 옵니다. 영,정조 시대에 걸친 꾸준한 개혁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득권 세력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올라서려 합니다. 기득권 세력에 맞서서 일으키는 개혁이라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것이죠. 그렇게 개혁과 반동이 반복하면서 역사는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것이겠죠. 저는 지금의 이 시기가 바로 그 개혁이 철저하게 성공하지 못해서 반동을 부르는 시기라고 보고 있습니다. 당분간 반동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합니다만 그 반동도 오래 가지는 못할 거라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단지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아무리 반동의 시대가 오더라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일만은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반동의 시대가 오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역사는 전진해 나가겠지만 이 반동의 시기에 역사에 다시 없는 오점을 남기게 되면 그 폐해는 일이십년에 극복할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유신시대때 죄없이 감옥에 갇혀 고통받았던 많은 사람들을 다시금 불러내서 감옥에 집어넣는 것과 같은 것이며 몸에 불을 사르고 죽어간 전태일을 다시 불러내 그 몸에 불을 지르는 행위에 다름아니며 법정에서 죽어간 인혁당 사건의 희생자들을 다시 한번 심판대에 앉혀놓고 사형을 선고하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박근혜라는 인물이 스스로 하나의 정치인이기 보다는 박정희의 대변자, 박정희의 복권을 위한 대리인이기를 자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엉뚱하게도 이명박이 선전해 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실정입니다. 차악으로 최악을 막을 수만 있다면 그래도 그것이 나은게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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