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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작통권 환수, 보수언론 말 뒤집기
이중잣대·입장표변…맹목적 증오로 사실관계 왜곡
최근 한국군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와 관련, 일부 인사와 보수언론들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극단적인 주장과 무리한 정치적 해석을 통해 안보불안 심리를 부추기고 있습니다. 정부는 한미 양국이 긴밀한 협의를 통해 진행하고 있는 안보문제를 일부에서 다른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왜곡 전달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무분별한 '안보위기론'을 들고나오는 저의가 무엇인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한 보수언론들의 ‘기막힌 말뒤집기’를 조목조목 지적한 청와대 양정철 홍보기획 비서관의 글을 다시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대통령이 몇몇 언론사 사주들을 청와대로 불렀습니다. 술자리가 무르익어 가면서 사주 가운데 한 사람이 대통령에게 뒤늦은 사과를 합니다. 대통령 해외순방 기사를 작게 취급해 죄송하다고.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고 술을 따릅니다. 당황한 대통령이 편하게 따르라고 말립니다. 사주가 말합니다. “각하, 저는 이게 더 편합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얘기가 아닙니다. 한 미디어 전문지가 89년 보도한, 권력에 굴종했던 시대에 우리 언론계의 씁쓸한 자화상입니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쳐
상황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과거 대통령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게 더 편하다고 말했던 사주의 신문을 포함해 두 개 신문은 지금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증오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두 신문을 보면 노 대통령에 대한 반대, 한마디로 '반(反)노무현'으로 먹고 사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무리 복잡한 사안이라도 반노무현 논리로 명쾌하게 정리합니다. 앞날의 논조를 예측하는 일도 반노무현 코드로 보면 거의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에서 복잡한 판단 없이 가장 편하게 신문을 만드는 언론사도 두 회사요, 우리나라에서 논조를 예측하기 가장 쉬운 신문사도 두 회사입니다. 언론계 웬만한 사람이면 어떤 사안이 생겼을 때 두 신문의 내일 논조를 점치는 일이 어렵지 않게 돼 있습니다.
작년(2004년) 행정수도 논란이 한창일 때 저는 두 신문을 향해 저주의 굿판을 걷어치우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과거 정권에선 행정수도 이전을 적극 지지하다가, 참여정부가 내세우니까 극렬 반대하는 맹목적 반노무현 논리를 지적한 것입니다.
오늘은 두 신문의 또 다른 표변을 살펴보면서 반노무현 중독증을 검증해 보고자 합니다.
과거엔 찬성한 정책도 지금은 반대
최근 한·미 양국 간에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논의가 본격화 되고 있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란, 방어준비태세인 데프콘이 3단계 수준으로 발령되면 한·미연합사령관이 행사하게 돼 있는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이 단독 행사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우리 국군의 독자적 작전수행능력, 즉 스스로 작전권을 가진 자주군대로 거듭나는 의미 있는 일입니다.
우리 정부는 1950년 이승만 대통령 때 유엔군 사령관에게 작전권을 통째로 이양했습니다.
1987년 노태우 대통령은 작전통제권 환수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민족자존”을 국정목표의 하나로 제시하면서 용산기지 이전, 군사정전위 UN군 측 수석대표 한국군 장성 임명과 함께 이를 추진하게 됩니다.
결국 44년만인 1994년 김영삼 대통령 때(전시 작전통제권을 제외한) 평시 작전통제권을 이양 받았습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제2의 창군이라고까지 의미부여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한·미 양국은 제5차 미래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전시작전통제권 문제와 함께 한국군 역할 증대방안에 대해 논의해 나가기로 한 바 있습니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해 두 신문은 대단히 예민하면서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작전통제권을 되찾는다, 명실상부한 자주군대로 태어난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근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 대가로 치명적 안보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자주군대라는 멋진 말을 대통령이 사용하고 국민은 그 말의 사용료로 엄청난 부담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05.10.13. 조선 사설)
“정부 바람대로 작통권이 환수되면 한·미연합사는 해체되고 결국은 한·미 동맹 해체과정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05.10.24. 조선 사설)
“노 정권은 미국으로부터 한 발이라도 더 벗어나는 것을 자주국방의 요체로 삼고 있는 것이다. 내 나라는 내가 지킨다고 큰 소리 치는 노 정권의 자주, 자주국방은 당장 박수를 받을지 모르나 손에 잡히는 실속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05.11.17. 조선 H 부국장대우 칼럼)
“자주에는 비용이 따른다. 전시 작전통제권을 돌려받을 경우 한·미연합사령부 해체에 따른 대북억지력의 약화를 각오해야 한다.”(05.10.26. 동아 사설)
“과거 한·미 관계를 흔들고 이간질하던 주체는 북한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한국 정부 스스로가 한·미 간 유대를 의심케 하는 행동을 종종 보인다.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문제가 비근한 예다.”(05.11.03. 동아 <광화문에서>)
맹목적 '반노무현' 논리의 연장
사설을 중심으로 기사와 내부칼럼을 종합해 보면 논거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돈이 천문학적으로 많이 든다, 둘째 너무 예민한 사안이어서 한·미 동맹에 불필요한 오해를 줄 수가 있다, 셋째 치명적 안보위험이 우려된다는 것입니다. 일견 일리 있어 보입니다.
국방 전문가들이 보면 조목조목 충분히 반박할 수 있는 것들이지만 언뜻 그럴 듯 합니다. 하지만 저는 두 신문이 우국충정에서 이런 우려를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맹목적 반노무현 논리의 연장이라고 봅니다. 왜 그럴까요.
이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때에도 큰 이슈였습니다. 당시 두 신문이 사설을 통해 작전통제권 환수를 보는 시각은 전반적으로 적극 찬성과 찬사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는 건군 후 수 십 명의 4성 장군을 배출했지만 한국군 전체를 독자적으로 운용해 본 경험이 없다. 우리는 인식의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열세한 병력으로 적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장군… 같은 지략과 능력이 있다면 전시라 해도 굳이 미군 측에 작전통제권을 의탁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90.2.17. 조선 사설)
“국가보위의 궁극적 책임은 당사국에 있는 것이 분명한 이상 우리의 작통권은 우리가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전시 작전통제권까지 환수하는 것이 다음의 과제다.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만으로는 우리의 안보를 우리가 완전히 책임지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94.12.1. 조선 사설)
“국군에 대한 작전통제는 주권국가인 한국이 단독으로 행사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며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민족 자존의식을 높여 줄 것이다. 또 자주국방 능력을 단계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며… 통일정책 추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평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계기로 유사시 작전통제권도 되찾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92.10.11. 동아 사설)
“우리가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유엔사령관에게 넘겨준 것은 전쟁 중 작전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휴전이 성립된 지도 41년이나 지났으니 작전권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하루 속히 되찾아야 할 일이다.”(94.10.9. 동아 사설)
<표1 - 작전통제권에 대한 두 신문의 표변>
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한 과거 절대지지 입장이 현재 결사반대로 돌변한 것은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면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강압적 정권 아래선 무릎 꿇는 게 편하다는 사고방식이 민주적 정권에 대해선 무조건 반대하고 어거지를 쓰면 편하다는 사고방식으로 바뀐 겁니까?
두 신문이 작전통제권 환수의 반대 논거로 삼고 있는 세 가지를 찬성할 당시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핑계에 불과하다는 게 드러납니다.
이제와서 갑자기 비용 문제 삼아
먼저 돈 문제입니다. 두 신문이 평시 작전통제권은 물론 전시 작전 통제권까지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비용 문제를 도외시 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이제 와서 갑자기 비용문제를 들이대며 “민족자존의 문제”를 포기해야 할 만큼 우리 국력이 위축됐을까요?
당시 우리나라 경제규모와 지금의 경제규모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당시(90년) 국방비만 해도 정부재정 대비 24.2%에서 2004년 현재 16.1%로 오히려 줄어든 상태입니다. 그 때보다 오히려 예산부담은 줄었다는 얘기입니다. GDP 대비 국방비도 당시(90년) 3.7%에서 2004년 현재 2.8%로 줄었습니다.
경제규모는 커지고 국방예산 부담은 줄었는데 돈 문제로 두 신문이 입장을 바꾼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둘째, 한·미 동맹 문제입니다. 이 역시 궤변에 불과합니다. 미국에게 당시에는 문제가 안 되는 일이 이제 와서 갑자기 문제가 된다는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한국과 미국은 자유와 민주, 시장의 가치를 공유하는 긴밀한 가치동맹이자 혈맹입니다.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역시 양국의 협의를 전제로 하는 사안입니다. 우리 정부가 단독으로 주장할 일이 아닙니다. 실제 양국은 단계별 로드맵을 가지고 대표단을 구성해 원만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도 “시대가 변하면서 한·미동맹도 변하고 있고, 한·미양국은 동맹을 현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안보정책구상(SPI)회의와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를 통해 전시 작전통제권 등을 논의하고 있으며 한·미 양쪽의 관심이 모두 반영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우방 간에 원만히 진행되는 협상을 다른 나라 언론도 아니고 우리나라 언론이 “미묘한 파장” “불필요한 오해” “한·미 간 유대 의심” 등으로 논란을 증폭시키는 것은 누워서 침 뱉는 행태입니다.
셋째, 치명적 안보 위험입니다. 찬성할 당시엔 없던 안보 걱정이 이제 와서 갑자기 등장해야 할 만큼 남북간 긴장상황이 당시보다 더 심각해졌다고 볼 사람은 없을 겁니다.
매월 3만 명의 민간인들이 북한을 왕래하고 있고 당국 간 교류와 회담도 그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잦아졌습니다. 남북 사이에는 화해와 교류의 기운이 훈풍처럼 불고 있습니다.
당시(90년) 남북 간 국방비는 2배 차이였지만 지금은 4배로 격차가 벌어졌습니다. 같은 기간 남북간 경제력(GNI)은 11배에서 33배로 더욱 벌어진 상황입니다.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증오, 딴죽걸기, 시비의 의도가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이유로 같은 사안에 대해 이처럼 태도를 바꿔 악담을 퍼붓고 우방 사이의 틈을 벌리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지에 대해 두 신문은 이유를 밝혀야 합니다.
나라가 큰 일 날 것처럼 호들갑
외교 안보 분야에서 두 신문의 유사한 행태는 전시 작전통제권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주국방에 대해서도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나라가 큰 일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두 신문의 최근 논조를 살펴보겠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자주국방이 멋지다는 것을 몰라서 강대국과 동맹을 맺고 그들과 협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지혜롭다는 이야기이다.”(04.5.21. 조선 사설)
“공허한 구호인 자주국방이란 말에 매달려 엄청난 재정부담을 껴안으면서까지 기존의 동맹 체제를 허물어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05.10.23. 조선 사설)
“더 근본적이고 시급한 일은 정부가 이제라도 어설픈 자주론의 함정에서 빠져 나와 한·미동맹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04.6.7. 동아 사설)
“노 정부는 실속 없는 자주국방 타령부터 중단하고 이완된 한·미동맹을 서둘러 재정비해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안보는 안보대로 취약해 지고 국민 허리만 더 휠 수밖에 없다.”(05.11.8. 동아 사설)
회사의 공식입장이라고 볼 수 있는 두 신문 사설을 종합해 보면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반대할 때 사용한 논거가 자주국방에서도 똑같은 도구로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돈 문제, 동맹 문제, 안보 문제입니다.
이 역시 두 신문의 우국충정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작전통제권에 대한 과거 입장이 참여정부 출범 이후 돌연 바뀐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이전 정권에선 침을 튀겨 가며 자주국방을 예찬하다가 같은 얘기를 현 정부가 얘기하니까 침을 뱉는 모습이 똑같습니다. 맹목적 반노무현 논리의 연장인 셈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때와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 때 두 신문이 낸 박수소리를 들어보십시오.
“한마디로 자기 나라는 자기들 힘으로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명실상부한 자주국방의 태세와 정신을 더욱 굳게 다져야 할 것이다.”(71.2.9. 조선 사설)
“막강 세계 4위를 자랑하는 국군은 이제 따로 서야 한다는 절실한 자각과 함께 자주국방을 위한 막중한 사업에 착수했다.”(71.10.1. 조선 사설)
“변화된 미국의 역할을 수용하면서도 종속적이지 않은 외교안보 노선을 찾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과제이다.”(96.4.19. 조선 사설)
“나의 생명과 재산보호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나간다는 자주국방 작업이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음은 흐뭇한 일이다.”(77.1.31. 동아 사설)
“이번 기회를 자립 경제와 자주국방을 기필코 실현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며 국민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해야 할 것이다.”(77.3.16. 동아 사설)
“현재 한미연합사 체제로서는 자주국방의 주인으로서 전쟁주도권을 행사 할 수 없다.”(89.10.25. 동아 사설)
“지금까지의 주한미군은 한·미 어느 나라의 일방적인 이익에 봉사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냉정하게 방위비 분담을 산출해야 한다. 거기에 감정이나 이념적 열정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89.3.14. 동아 사설)
<표2 - 자주국방론에 대한 두 신문의 표변>
자주국방론에 대한 찬성입장이 현재 우려 일변으로 돌변한 것 역시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증오의 결과물로 보입니다.
두 신문이 자주국방론 우려의 논거로 내세우고 있는 세 가지 역시 자주국방의 불가피성을 역설할 당시의 상황과 비교해 보면 핑계에 불과합니다.
이전 시기 자주국방에는 돈이 안 들고 지금 시기 자주국방에는 천문학적 돈이 든다고 한다면 그런 궤변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특히 한·미동맹관계로 따진다면 박정희 정부 시절 양국 갈등은 극에 달했던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한국에게 방위비 지출을 늘리라면서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할 정도로 갈등의 파고가 높았습니다. 이에 맞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미사일 개발에 이어 핵 개발까지 추진한다고 하여 한·미 간 갈등은 극에 달했습니다.
지금 그런 상황이 재현된다면 두 신문은 “노무현이 나라 잡겠다” “엄한 소리 하더니 나라를 절딴 낸다” “자주국방은 무슨 놈의 자주국방이냐”면서 미국에게 싹싹 빌고 용서를 구하라고 야단법석을 떨었을 것입니다.
안보위험 역시 당시 상황과 지금은 천양지차입니다. 당시 남북은 북한 특수군 청와대 기습(68년),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74년), 월남 패망 등 냉전체제의 최정점에서 가파른 대치국면을 보이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자주국방을 강력히 주창하던 두 신문이 이제 와서 엉뚱한 안보위험을 내세워 나라 걱정을 하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방수단으로 안보문제까지 도구화 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이중잣대·입장표변…맹목적 증오 이제 거두라
똑같은 사안에 대한 이중잣대, 똑같은 문제에 대한 입장표변, 그 심연은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와 맞닿아 있습니다.
저는 두 신문에 대해, 과거 보도태도는 이랬으니 지금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이 하는 일이면 논리도 없이, 근거도 없이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과거 취했던 합리적 주장까지 뒤집어 가면서 무리한 생떼를 쓰는 맹목적 증오의 감정을 이제 거두라는 것입니다.
특히 외교 안보 문제는 대부분 국익과 직결됩니다. 우방간의 우호 친선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국민여론을 오도함으로써 엉뚱한 불안감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중해야 합니다. 국내 정쟁보도와는 달라야 합니다.
참여정부는 두 신문이 대통령에게 과거처럼 무릎 꿇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증오심 때문에, 비판을 빙자한 비방 때문에 자칫 조국에 침을 뱉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양정철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 등록일 : 200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