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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선택
[칼럼] 건설노동자들의 포스코 점거 사건을 바라보는 색 다른 시선
라는 제목의 오마이뉴스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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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의 한계에 대하여
한 달 사이에 노동자들이 네 명이나 잇따라 목숨을 끊자, 한 방송사 PD가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노동문제에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한 달 사이에 네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그 노동자들의 삶과 주변의 이야기들을 100여개의 테이프에 담았지만 도대체 내용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어느 일요일 우리 연구소에 모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몇 시간에 걸친 이야기가 끝날 무렵 PD가 나에게 마지막 질문을 했다.
"이제 분신하거나 자살한 그 노동자들 입장에서 한 마디 해주십시오."
나는 그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그 사람들의 입장을 내가 어떻게 몇 분의 일이라도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129일이나 크레인 꼭대기에서 고독을 견디다가 목을 맨 사람이나, 1년 반이나 수배 생활을 하다가 자신의 몸에 스스로 불을 지른 사람의 입장을 제가 어떻게 몇 분의 일이라도 짐작할 수 있겠습니까?"
내 말을 들은 PD는 어이없다는 듯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내뱉었다.
"내가 지금 어떻게든 그걸 한번 해 보겠다고, 이렇게 돌아다니고 있는 거 아닙니까?"
아, 나는 부끄러웠다. '제도언론'이라고 비웃는 방송사 PD조차 노동자들의 절실함을 조금이라도 전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나? 30년 가까운 노동운동 경력으로도, 1년 반 수배 생활을 했던 노동자 집에 찾아가 곰팡이가 하얗게 뒤덮여 있는 냉장고의 반찬들을 직접 본 사람의 절실함을 따라갈 수는 없었던 거다.
직접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그렇게 컸다. "돌아다니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직접 보니까, 정말 말이 안 나온다"고 쓸쓸하게 말하던 PD의 얼굴이 생각난다.
이미 환갑을 넘었거나 그에 가까울 정도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는 '불법행위'를 아흐레 동안이나 했다.
언론이나 시민들은 이들의 불법행위를 탓하기에 앞서, 도시가 건설되기 시작할 때부터 그곳에 들어와 수십 년 동안 일하면서 "우리가 이 도시를 건설하고 공장들을 세웠다"고 말하면서도 건설 노동자로 평생을 살아온 것에 대해 일말의 자부심도 갖기 어려운, 건설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에 먼저 주목했어야 했다.
과격한 투쟁방식은 사회적 약자의 마지막 선택이다. 강한 조직은 굳이 과격한 투쟁을 할 필요가 없다. 건설 노동자들의 '불법행위'를 비난하고 싶은 사람들은 자신이 그들의 처지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하여
대학생들에게 강연을 끝내고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털모자를 썩 어울리게 쓴 학생이 다가오더니 말했다.
"저는 네덜란드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고 이번에 한국 대학에 입학한 학생인데요. 며칠 전 철도노조 파업할 때, 텔레비전 뉴스에서 시민들 인터뷰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모두들 한결같이 자기가 불편하다는 것만 이야기하는지…. 파업하는 노동자들 입장에서 말하는 사람이 왜 한 명도 없는지, 참 이상했습니다."
그 학생이 살던 사회에서는 파업이 발생하면 "노동조합의 이러저러한 요구사항은 타당한 내용이니 정부와 기업은 빨리 받아들여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시민들의 모습도 적지 않게 보았을 테니 깜짝 놀란 것도 당연하다.
굳이 '똘레랑스'를 들이대며 비교하지 않더라도 우리처럼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해, 그것이 합법적 파업이든 불법적 파업이든, 짙은 혐오감으로 무장한 사회는 별로 없다.
건설 노동자들의 포스코 점거 사건에서도 언론들은 대체로 포스코의 기계설비 건설이 중단되면서 하루 100억여원씩 손실이 발생하고 대외신인도가 하락하는 등 그 경제적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는 점과 파업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강조했다. 사설의 제목들만 얼핏 봐도 알 수 있다.
"경찰에 가스불 뿜고 끓는 물 퍼붓는 노조"(세계일보), "노조,탈법 폭력투쟁으로 얻을 게 없다"(국민일보), "7일째 포철 불법점거, 공권력은 어디 갔나"(중앙일보), "이런 노조, 세계 어디에 또 있는지 대 보라"(동아일보), "노조, 포항에선 불법 示威, 울산에선 배부른 투정"(조선일보), "시민들도 항의하는 포스코 점거농성"(한국일보) 등이었고 <한겨레>가 "건설노동자 사태, 포스코가 중재력 발휘해야"라는 제목으로 그나마 간신히 체면을 유지했다. <동아일보>의 사설 제목을 빗대자면 "이런 언론, 세계 어디에 또 있는지 대 보라"고 말하고 싶다.
언론의 이러한 보도 양태는 우리 제도 언론의 수구 보수적 성격에 포스코의 주도면밀한 개입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포항건설노조의 파업과 관련해 포스코가 관계기관 회의를 통해 이미 지역 언론에 실어야 할 기사목록과 작성 시기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했으며 실제로 같은 내용과 제목으로 기사화됐다지 않은가.
이러한 언론 속에서 우리는 수십 년을 살았다. 건설 노동자들의 포스코 점거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의 시각이 이러한 언론으로부터 전혀 영향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불법행위'라는 잣대에 대하여
정규직 노동자들이 번듯한 복지시설을 마음껏 사용하고 있을 때 건설 노동자들은 식당이 없어 비가 오면 빗물에 점심을 말아 먹고, 탈의실이 없어 건물 모퉁이나 차 뒤에서 작업복을 갈아입고, 휴식시간에는 신문지 한 장으로 땡볕을 가린 채 쉬면서 일해야 했다.
그렇게 일하던 건설 노동자들에게 일부 사업장에서 최소한의 시설이라도 마련해 주기 시작한 것은 건설 플랜트 노동자들이 '남의 회사'에 '불법 침입'을 해서 목숨을 건 고공 농성을 며칠씩이나 한 뒤부터이다. 그 '불법행위'가 없었다면 이들의 처지는 아직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건설 노동자들 상당수는 그렇게 일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은 언제나 이렇게 '불법행위'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시멘트노조는 파업을 300일 넘게 벌이고 있으면서 노조가 해산될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언론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하고 있다.
1600명의 교사들이 '불법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해직당하지 않았다면 전교조는 아직 합법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400명의 공무원들이 '불법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파면, 해임당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 공무원노조는 아직까지도 합법화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현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전교조나 공무원노조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죄송하게도 그러한 바람은 역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
'불법행위'라는 잣대로 교사와 공무원들의 노동조합 설립을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앞으로 경찰이나 판사들이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이는 '불법행위' 역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선진국 경찰노조나 판사노조가 걸었던 길을 우리는 수십 년 세월이 지난 뒤에 따르는 것뿐이지만 거창하게 말하자면 그것이 '역사의 순리'다.
건설 노동자들은 포스코를 점령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형사적 처벌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다단계 하청이라는 건설 현장의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건설 노동자들의 불법행위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불법행위'를 시작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하나씩 확보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던 과거의 역사를 한 번쯤 뒤돌아 볼 필요도 있다.
~ 후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