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맨(The Snowman)이라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동화를 원작으로 하여 영국에서 만들어진 꽤 유명한 단편 애니메이션이 있습니다. 어쩌면 범작에 그쳤을지도 모를 이 애니메이션을 아주 돋보이는 수작으로 만들어 해마다 크리스마스 전후의 겨울이 되면 한번쯤 생각나게 해주는 생명력을 부여한 아름다운 선율의 OST 가 있는데, 바로 이 글의 제목인 “Walking In The Air” 입니다.
남자 아이가 만든 눈사람이 한밤중에 깨어나 아이와 함께 집의 안과 밖을 들락거리며 놀다가 하늘로 날아올라 오로라가 물결치는 북극으로 데리고 갑니다. 산타와 다른 눈사람들과 축제를 한바탕 즐긴 다음 집으로 돌아오고 날이 밝아 녹아 없어진 눈사람의 흔적 옆에서 슬픔에 잠긴 아이의 모습과 함께 영화는 끝나는데, 밤하늘을 날아 북극으로 가는 장면에서 배경 음악으로 사용된 곡입니다.
런던, 세인트 폴 성당(St Paul's Cathedral)의 성가대원이었던 피터 오티(Peter Auty) 라는 소년의 목소리에 Sinfonia of London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녹음되었는데, 제작 일정에 쫓겨서 정작 노래를 부른 피터 소년의 이름은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오르지 못했다는군요.
(앵두볼에 딸기코의 산타할아버지가 너무 귀엽습니다.....^^)
그런데 피터 소년이 부른 OST 보다 더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풍부한 감흥을 떠올리게 하는 “Walking In The Air” 가 있었습니다. 언젠가 FM 93.1 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바로 필이 꽂혀 “나이트위시” 라는 이름만 기억하고는 다음날 가게로 달려가 음반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앨범을 집어든 순간, 오, 이 무슨 아찔한(?) 분위기의 그림인가!
그룹명 Nightwish - 나이트와치라는 그림은 아는데 나이트위시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앨범명 Oceanborn - 에어본(커래히~~~)도 아니고 오션본이라면 그림 속 여인이 바다에서 태어났다는 것인가? 아니면 육체는 죽고 영혼이 부활했다는 의미일까?
“멜로딕 스피드 메탈과 오페라 락의 화려한 조화.....” 라는 말로 시작되는 앨범 속 책자의 설명처럼 첫 트랙부터 속사포같이 쏟아져 나오는 강렬하고 스피디한 메탈 사운드는 도저히 제 빈약한 감각이 받아주질 못해서 무조건 통과, 통과 하다가 드디어 열 번째 트랙의 “Walking In The Air” 를 듣는 순간, 오! 춘향 엄니 월매 헤어스타일에 주막집 하녀 같은 복장으로 째려보고 있는 저 여인이 이토록 아름답고 황홀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단 말인가? 라는 감동이 밀려오더군요.
OST 의 피터는 소년답게 순수하지만 맑기가 조금 부족한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노래를 합니다. Sinfonia of London 오케스트라도 피터가 부르는 노래와 애니메이션 영상의 분위기를 살려주기 위해서인지 소년의 목소리를 압도하지 않고 조용하지만 섬세하게 반주를 해줍니다.
OST 가 졸졸졸 흘러가는 가느다란 시냇물이라면 Nightwish 가 연주하는 사운드는 그야말로 거침없이 밀고가는 거센 강물 같습니다. 여성 보컬은 정식으로 성악 전공한 실력으로 오페라 부르듯 하이톤으로 노래하며, 볼륨을 조금 올려보면 메탈 스타일로 편집된 곡 답게 강렬한 일렉 기타와 드럼소리가 압도적이고, 특히 가끔씩 연주되는 플룻은 켈틱이나 노르만 같은 북유럽의 신화를 연상하게 하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보컬과 반주는 거리낌 없이 내지르지만 서로의 소리를 해치지 않으며 OST 보다 소리의 풍성함이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Walking In The Air” 라는 곡이 가지고 있는 기본 선율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훨씬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같은 곡이지만 피터 소년의 OST 에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던 신경을 관통하는 짜릿한 느낌이나, 최대볼륨의 소리로 주위 공간을 가득 채우고 그 속에 푹 잠겨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가끔 안겨주는 곡이기도 합니다.
Nightwish 의 Oceanborn 은 나의 유일한 메탈 앨범입니다. 열두개의 트랙중 오로지 한 트랙의 노래를 듣기 위해 구매한 앨범이지만 전혀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인적인 만족도가 높습니다. 보통은 “Walking In The Air“ 만 듣지만 어쩌다 휴일 낮에는 볼륨을 평소보다 조금 올리고 전곡을 감상하기도 하는데 “멜로딕 스피드 메탈과 오페라 락의 화려한 조화.....” 에 이제는 꽤 적응한 모양입니다.
나는 상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온갖 것들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한번 추천하고 싶은 곡입니다. 겨울이 다 지나가기 전에 살며시 눈을 감고 눈사람과 함께 북극여행을 다녀오는 것도 괜찮겠지요? 아니면 내 아이의 손을 잡고 눈사람 대신 하늘을 같이 날아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