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와 함께 스웨덴을 대표하는 아이콘, 그룹 ABBA 의 여덟 번째이자 마지막 스튜디오 정규 앨범인 The Visitors 는 1981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당시 비요른과 아그네사는 먼저 결별한 상태였고 2년 후인 1981년 베니와 프리다 역시 헤어지기로 함으로써 ABBA 는 자연스럽게 해체의 수순을 밟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곡을 만들어 스튜디오에 모여 녹음을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The Visitors 앨범입니다. 그룹 ABBA 의 마지막 여행인 셈이었습니다.
활동 기간이 10년도 채 못된 그들의 영광과 환희를 상징하는 모습이 아래의 일곱 번째 앨범인 Super Trouper 사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집중조명을 받으며 서로 어깨를 바싹대고 함께 서 있는 네 명의 멤버와 그들을 둘러싸고 환호하는 사람들.
그러나 이어서 발표된 The Visitors 앨범 사진에는 화려한 조명대신 어스름한 그림자가 더 커보이고 멤버들도 함께 연주하고 노래하는 부부이자 동료가 아닌, 이제는 조금씩 서로에게 남남이 되어가는 사람들인양 제각기 거리를 두고 앉거나 서 있습니다. 마치 빛과 그림자, 기쁨과 슬픔, 만남과 헤어짐등 인간사를 지배하는 두 가지의 상반된 모습을 모두 알려주려는 것처럼 말이죠.
두 명의 여성이 들려주는 화사한 목소리와 건반과 기타를 기본으로 하여 다양한 악기로 조합된 배경의 반주가 마치 치밀하고 완벽하게 설계된 톱니바퀴가 빈틈없이 맞물려 정확하게 돌아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할 때마다 직접 선율과 가사로 곡을 만들고 노래를 했던 ABBA 의 싱어/송라이터 재능에 감탄을 하곤 합니다. 사실 그들의 모든 노래는 두 명의 남자 멤버인 베니와 비요른이 작사, 작곡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재능있는 이 두 남자는 체스(Chess) 같은 뮤지컬에도 손을 댔습니다.
그런데 두 명의 여성 멤버인 아그네사와 프리다의 얼굴은 쉽게 구별하는데 항상 베니와 비요른의 구별은 헷갈리더군요. 누가 베니고 비요른인지, 피아노 연주하는 사람이 베니인지 비요른인지, 베니의 짝이 아그네사인지 프리다인지, 지금 아그네사가 노래하는 것인지 아니면 프리다 목소리인지......^^
어느 스웨덴 화가의 아틀리에에서 촬영한 The Visitors 의 어둡고 불그스름한 사진의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에는 역시 아바 특유의 화려한 사운드와 보컬이 실려 있는데, 가사의 내용은 멤버 자신들에 대한 개인적이거나 조금은 사회적인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아홉 번째 트랙까지는 1981년의 LP 앨범이고 마지막 네 곡은 그 이후에 녹음되었다가 CD 의 보너스 트랙으로 삽입된 곡들입니다.
01. The Visitors
02. Head Over Heels
03. When All Is Said And Done
04. Soldiers
05. I let The Music Speak
06. One Of Us
07. Two For The Price Of One
08. Slipping Through My Fingers
09. Like An Angel Passing Through My Room
10. Should I Laugh Or Cry
11. The Day Before You Came
12. Cassandra
13. Under Attrack
The Visitors 앨범은 ABBA 에게는 공식적인 마지막 앨범이 되었지만 반대로 저에게는 난생 처음 경험한 팝 앨범이자 LP 였습니다. 외국 노래는 전혀 듣지 않으셨던 아버님의 다섯 장 팝 앨범 중 하나였는데, The Visitors, Super Trouper 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앨범등 ABBA 앨범만 세 장이었고 아버님이 안계실 때 가끔 안방에 들어가 폴리도르라는 상표의 빨간 딱지가 붙은 LP 판을 돌리던 기억이 납니다.
앨범의 타이틀곡인 1번 트랙의 The Visitors 와 4번 트랙의 Soldiers 는 다른 곡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보통의 ABBA 사운드가 아닌 뭔지 모를 팽팽한 긴장감, 절박함 또는 묘한 슬픔 따위에 강한 인상을 받았던 곡이었는데 그 가사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3번 트랙의 When All Is Said And Done 이나 6번 트랙의 One Of Us 같이 자신들의 자전적이고 개인적인 삶을 묘사하는 듯한 노래들도 있고, 8번 트랙의 Slipping Through My Fingers 는 갖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아이가 등교하는 모습을 보고 아빠 비요른이 가사를 만들었고 엄마 아그네사가 노래했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쉽게 흩어져 내리는 물방울이나 모래알처럼 자신의 딸아이도 언젠가는 품에서 떠나거나 헤어져야할지도 (아마 아그네사와의 이혼을 그 때 생각하고 있었다면.....) 모를 진한 아쉬움이 노래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앨범 가운데 딱 하나를 고르라면 서슴없이 저는 이 앨범을 고를 겁니다. 시작을 함께 했으니 끝도 같이 해야겠지요.......^^
PS) ABBA 의 영광은 유러비전 송컨테스트에서 부른 Waterloo 로 그랑프리를 차지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들을 때면 왜 스웨덴 그룹이 영국의 웰링턴이 프랑스 나폴레옹을 패배시켰던 벨기에의 지명을 노래의 소재로 이용했는지 가끔 그 이유가 궁금하곤 했었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통합의 길로 가고 있는 유럽인지라 그 정도의 소재는 별 이유없이 국경을 초월하여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긴 했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지만 1974년의 유러비전 송컨테스트는 바로 영국에서 개최되었더군요. 그리고 ABBA 는 예선인지 본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1973년에도 참가하여 Ring Ring 이란 곡으로 3위를 차지한 경력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영국에서 벌어지는 이듬해 컨테스트에서 꼭 우승하고픈 마음으로 워털루라는 영국인들의 자존심을 한껏 살릴 수 있는 소재를 의도적으로 선택하여 참가곡을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 프랑스에서 열렸다면 Waterloo 라는 노래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고 그 대신 루이 14세나 잔 다르크 같은 소재를 이용한 노래가 탄생하지는 않았을까요?
My, My, At Waterloo Napoleon did surrender.
Oh, yeah, And I have met my destiny........
이런 가사 대신에,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비전 송컨테스트에 참가한 한국 그룹이라면
My, My, 장비가 혼자 날뛴 장판교에서
Oh, yeah, 내 운명을 만났네....어쩌구 저쩌구....
중국 가수가 한국에서 열린 컨테스트에 참가했다면
My, My, 이순신이 승리한 한산도에서
Oh, yeah, 내 운명의 달밤이 시작되었네....어쩌구 저쩌구....
이랬을지도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