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있었던 우리 축구대표팀 경기를 놓고 자게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여러가지 의견이 있었지만, 슬쩍 훑어본 저로서는 대부분의 의견이 ‘막판 시간끌기’에 대한 찬반이 위주이고, 대략 ‘치사하다’라는 의견과 ‘이기기 위한 전술’이니 이해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축구에 대해 평균적인 정도의 관심과 지식 밖에 없습니다만, 그동안 우리 대표팀으로 상징되는 ‘한국축구’를 놓고 가장 아쉽게 생각하던 바가 있었고, 전체적으로는 역시 그 문제와 귀결되는 불만이며, 보다 원론적인 한국축구의 문제점이 바로 그것 아닌가 하는 점에서 주절주절 글을 올려봅니다. 아까 자게에 대충 달았던 댓글을 좀 더 보충해서 올려봅니다. 이곳 시게라고 맨날 대통령 흉이나 보고, 한나라당을 비난하고, 모모신문을 저주하는 ‘색깔성’ 글만 올라서는 재미가 없으니 논제의 다양성이라는 면에서도 나름대로 의미있는 시도가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말입니다.
저는 우선 축구는 ‘재미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축구 경기 자체의 여러 가지 묘미와 나름의 다이나미즘이 오늘날 축구를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스포츠 종목으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점에서 보면 특히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무엇보다 한국 축구가 ‘세계적인 팀’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 축구는 신난다’라는 평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관중이 즐길 수 있는 축구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경기를 놓고 ‘공을 돌리는 것도 전술의 일부분이므로 그냥 즐기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만, 다른 모든 부분보다도 ‘어제 경기는 관중이 즐길 수 있는 축구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가장 실망스러웠습니다. 16강도 중요하고, 1승도 중요합니다만, 축구에 쏠린 전세계인의 눈과 기분을 즐겁게 해주는 축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 한국팀은 단순한 한국팀이 아니라 약 40억 인구의 아시아대륙을 대표하는 팀으로서의 자부심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전반전 내내 보여준 그토록 소극적이고, 움츠러든 모습은 차라리 아시아 대표팀으로서의 위신을 크게 손상시켰다고 말하겠습니다. 더구나, 내용은 차치하고 그렇게 축구정신이 실종된 소극적인 경기를 우리 국민들 말고는 누가 재밌게 봐주었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상대인 토고팀을 맞아 우리팀이 그 정도로 주눅이 들어 '벌벌 길'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가 누굽니까? 총 7회의 월드컵 출전경력에, 86년 멕시코 대회에서부터 6연속 본선에 진출한 팀입니다. 더구나, 지난 대회에서는 월드컵 4강이라는 귀중한 경험과 다양한 자원을 갖춘 팀입니다. 상대팀 토고는 월드컵에 첫 출전한 팀일 뿐더러 돈 문제를 둘러싼 이해하기 어려운 각종 사단과 내분을 대회 직전까지 겪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FIFA 랭킹(한국 29위, 토고 61위)에서도 기죽을 일이 하등 없는 상태고, 토고같은 나라에서는 아마 영원히 기대할 수 없는 엄청난 대표팀 지원에, 수십억원을 주고 데려온 감독과 코치진에,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열광적인 국민들의 성원에.. 객관적으로 불리할 것이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경기의 두껑을 연 순간, 우리 팀은 완벽하게 ‘얼어붙은’ 모습으로 시종일관했습니다. 이건, 한국 국민들에 대한 실망 뿐 아니라 우리에게 져서 월드컵을 출전하지 못하고 분을 삼키며 TV를 들여다 보고있었을 다른 모든 아시아인들을 배신한 모습이었습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한 마디로, 무슨 잔치집에 풀어놓은 동네 촌닭처럼 완전히 얼어붙은 아마추어팀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첫 경기가 중요하고, 국민들의 기대가 크고, 1승이 꼭 필요하다고 한들 우리 태표팀이 그 정도로 왜소하고 나약한 모습을 아시아인들에게, 세계인들에게 보여야만 했을까요? 저는 팬의 한 사람으로서, 혹자의 평가처럼 '이번 월드컵 경기중에서 가장 실망스런 경기(일본-호주 경기보다도 더)‘를 펼친 끝에 가까스로 1승을 거두는 것보다는, 설혹 지더라도 제대로 된 경기를 통해 지는 모습을 보기를 원합니다. 아마 국민 모두가 그런 부분을 원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지더라도 훨씬더 뿌듯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을 수 있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식으로 경기를 거듭해서 16강까지 간다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어제 경기에서 한국팀은 월드컵 본선팀에 어울림직한 수준은 물론, 무엇보다 '한국팀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월드컵이라는 어마어마한 무대에서, 한국팀의 진수를, 한국팀만이 가진 ‘색깔’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자부하고 있는 한국팀의 전형적인 '팀 칼러'는 무엇일까요? 비록 선수 개개인의 기량은 강팀들에 비해 처지지만, 벌떼처럼 좌충우돌하는 강한 압박과 스피디한 공격전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는 불타는 투혼과 한 골 먹으면 두 골을 넣겠다는 악바리 근성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실망스럽게도 어제 경기에서 우리 팀은 그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하는 팀이 아니며, 객관적으로 그런 목표는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16강 진출도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월드컵 본선이라는 어마어마한 세계축구 축제의 장에서 펼쳐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바로 ‘한국축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지더라도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세계인들로부터 엄지 손가락을 치켜받을 수 있는 경기를 펼쳐야 합니다. 정말로 우리 국민이, 그리고 세계 축구팬들이 한국팀 경기를 즐길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한국팀다운 색깔과 ‘스피리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기기 위한 축구가 아니라, 지지않기 위한 축구는 팬들에게 외면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시합에서 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한국축구 정말 재미없다’는 말을 듣는 것, 그것을 가장 부끄러워 해야 합니다. 남은 프랑스와 스위스전에서는 정말 제대로 자랑스러워 할만한 '한국팀 다운 경기'를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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