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씨의 칼럼입니다. 예전부터 무척 좋아하던 분인데, 한나라당이 승리할까 두려워 강금실 후보에게 표를 던졌나보네요. 솔직히 무척 의외군요.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난도 많이 듣는 분이라 (본문에 강금실 후보에게 표를 줬다는 말은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예상 밖이네요. 이번 선거에서 민노당의 득표가 생각보다 낮았던 이유는, 비슷한 이유로 민노당에 갈 표가 한나라당으로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건 그렇고 서초구에서 비례대표 표의 1/4(정확히는 23쩜 몇 프로)이 민노당에 갔습니다. 이것 역시 의외군요. 아무튼 토론꺼리가 아닌 펌글이지만 워낙 좋아하는 분이라 옮겨봅니다. 출처는 한국일보인데, 문제가 되면... 그냥 저를 잡아가세요.
계급의식은 어디로?
5ㆍ31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무너진 것은 누가 봐도 마땅하다.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희망에 업혀 태어난 정부와 다수당이 선거 때의 간절함은 까맣게 잊은 채 로또에 당첨된 벼락부자 모양 거드름이나 피워댔으니 누가 그들을 곱게 보겠는가? 대통령이 한나라당과 여당 사이에 이념 차이가 없다며 연정 타령이나 하고 있는 판국에 굳이 무능한 여당에 표를 줄 까닭이 어디 있는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이 집권했다 해서, 어려운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어렵게 됐을까? 더 나아질 것도 없었겠지만, 더 어려워졌을 것 같지도 않다. 아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언행 때문에 뒤숭숭할 일은 한결 적었을 테니, 외려 더 나았을 듯도 싶다.
● 진보·보수 양쪽서 버림받은 여당
이 정권의 가장 큰 잘못은 저를 지지한 사회적 약자들을 팽개치고 저를 경멸하는 기득권층 눈에 들려고 몸살을 해온 것이다. 이 윤리적 타락은 전략적으로도 패착이었다.
여권이 기득권층의 마음을 사려고 아무리 우향 돌진을 해 봐야, 보수적 유권자들 눈엔 이들이 '위장' 보수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보수적 유권자들 잘못만은 아니다. 여권의 몸뚱어리는 오른쪽으로 내달았지만, 그 입은 제멋에 겨워 진보 수사를 남발해왔으니 말이다.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가벼운 입은 유권자들에겐 다행스럽게 천기를 누설해주기도 했다. 대통령이 '좌파 신자유주의자'를 자임했을 때, 그 전까지 그를 신자유주의자라 제대로 보았던 진보적 유권자들은 자신들이 옳았음을 확인하고 속 편하게 지지를 거둬들였다.
그 전까지 그를 '좌파'라 잘못 여겼던 보수적 유권자들 역시 자신들이 앞으로도 결코 이 정권을 지지해서는 안 될 이유를 이 기이한 '양심선언'에서 기분좋게 찾아냈다. 유권자들은 모두 이 정권을 지지할 수 없다는 데서 일치했고, 그것이 이번 선거 결과로 나타났다.
이마에 '개혁 진보' 라벨을 붙이고 있든 말든, 이 정권은 지난 세 해 반 동안 계급적 배신을 저질러왔다. 대통령이 되기 전 노무현씨의, 그리고 국회의원 국무위원이 되기 전 유시민씨의 그 진실한 표정과 간절한 말투를 뭉클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배신은 인류라는 종의 비루함을 씁쓸히 곱씹게 하는 재료다. 그들은 사람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선한 표정으로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어쩌면 책임질 생각이 없었던) 제 미래를 진지하게 얘기했다.
물론 사람의 비루함에 대한 씁쓸한 상상을 자극하는 것이 대통령과 복지부장관만은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받은 지지의 크기를 보면, 이 사회의 가장 어려운 계층 사람들 가운데 적잖은 수가 이 부패한 부자 정당에 표를 건넨 것이 분명하다. 이들의 계급의식은 어디로 갔는가?
한국 사회의 경제적 상층에 자리잡은 서울 강남 유권자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한나라당 지지를 철회해본 적이 없다. 말하자면 이 부자들은 철저한 계급의식으로 뭉쳐 있다.
그런데 여당에 실망한 서민 유권자들은 왜 자신들을 대변하는 민주노동당에 표를 주지 않았을까? 물론 서민들에게 소구할 매력을 만들어내지 못한 민노당 잘못이 크다. 그렇다 해도 부자 정당을 지지하는 가난한 사람들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 서민들 '부자 정당'지지 이해안가
그것은 언젠가 강준만이 얘기한 '주류콤플렉스' 때문일까?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부자 신문을 읽으며 주류환상을 즐기듯, 이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며 부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잠시라도 소비하는 것일까?
사실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계급적 배신이다. 본디 중산층 상징자본을 지녔던 대통령이나 복지부장관의 배신과 달리, 가난한 사람들이 제 존재를 배신하는 것은 근원적 배신이기 때문이다.
사회 상층부가 계급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고 하층부가 거꾸로 된 계급의식을 소비하는 허영에 몰두하는 한, 사회 양극화의 출구는 없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마땅히 민노당 김종철 후보에게 표를 던져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한 나 자신을 책망하며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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