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74년 8월15일)을 계기로 한층 적극적이고 빠른 속도로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던 사실이 최근 해제된 미 국무부 비밀문서에서 밝혀졌다. 박 전 대통령은 ▦북한의 남침 방어 ▦지나친 대미 의존 탈피 ▦정권 유지 등을 목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적극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경제와 뉴욕 한국일보가 공동 입수한 ‘1973~74년 미 국무부 비밀문서’에 따르면 지난 74년 11월7일 리처드 스나이더 당시 주한 미 대사는 국무부 본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최우선 순위는 권력 유지에 맞춰져 있지만 더 이상 제어할 수 없는 국내외 세력이 자신의 목표 달성에 걸림돌이 되는 것에 초조해하고 있다”며 “현재는 물론 미래의 국정 운영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대통령의 장기 목표는 자주국방, 외부세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고 분석한 뒤 “특히 육 여사 암살사건과 관련해서는 극단적인 정책(Brinkmanship)을 펼쳐 일본과의 외교관계 단절을 고려했으며 자신에게 도전하는 국내 세력을 미국 정부가 용인할 경우 미국의 재정지원과 군사원조도 포기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또 “박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점진적 철수에 이어 궁극적으로 미군을 완전 철수시킨 뒤 다른 곳에서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한편 앞으로 10년 이내에 독립적으로 핵 억지력을 보유하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11월14일자 보고서에는 “캐나다 정부가 한국의 핵개발 의지를 확인하고 한국에 핵 발전기를 판매할 지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기록했다. 또 파리 주재 미 대사관은 “한국이 비밀리에 프랑스로부터 핵연료 처리시설을 매입하기로 하고 최종 계약만 남겨둔 단계”라고 국무부에 보고했으며 국무부는 이 같은 내용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제네바 주재 미 대표부에 통보했다는 기록도 비밀문서에 포함됐다.
이에 앞서 74년 8월8일 스나이더 대사의 전임자인 필립 하비브 대사는 국무부 본부에 보낸 ‘핵무기 개발’이라는 제목의 전보에서 “한국 내부에서 자주국방의 열망이 높아지고 미국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어 한국 국방 수뇌부 관계자 대부분은 궁극적으로 핵무기 생산을 희망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보고했다.
뉴욕=서정명특파원 vicsj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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