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0일 저녁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를 위해 단상에 오르던 중 괴한에게 피습을 당하였다. 또한 오늘 오전에는 부산에서 열린우리당 기초의원 후보 출마자와 선거운동원들을 낫으로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추억담이라 여겼는데 이 무슨 황당한 일인지 모르겠다.
한나라당 박대표 피습 사건에 대해 갖가지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당사자인 박대표는 정치적으로 오버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였다고 한다. 아직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적 테러나 배후 운운하는 것은 시의 적절하지 않으며 따라서 박대표의 당부는 지당하다고 본다. 이번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하여 검경 합동수사를 한다고 하니 차분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아울러 차제에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상에서 상대에게 인신 공격이나 테러, 저급한 욕설을 일삼는 反민주적인 행태가 사라졌으면 한다.
그러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기대난망이다.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야당인 민주당에서 테러의 배후를 밝히라는 다분히 정략적인 발상을 드러내는 것과 함께 보수 언론들은 일제히 나서 치안부재니 사회 기강 해이 운운하며 정부의 무능을 탓하기 바쁘다. 박대표의 소속 정당인 한나라당에서는 경찰의 수사 경과 발표를 무시하고 사전에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계획된 정치테러라고 규정하였다. 가관인 것은 조선일보 전 주필 김대중씨와 함께 수구 언론인의 대명사 격이라고 할 조갑제씨의 '좌익폭동비호정권하에서 칼 맞은 박대표'라는 글이다. 조씨는 박대표 피습 사건을 "정치폭력을 비호, 방치해온 노무현 정권의 책임"이라며 정권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로는 현장에서 붙잡힌 두 사람이 공범이라는 단서는 없으며 칼로 박대표의 얼굴을 그은 지모씨의 경우 1991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구속기소돼 장기 복역을 한 것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정도이다. 지씨의 경우 작년 말에도 한나라당의 사학법 개정 반대 집회에서 K의원을 폭행한 사실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평소 한나라당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박모씨의 경우 아현동에서 초등학교 동창생 자녀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신촌 현대백화점 부근 식당에서 동창생들과 함께 식사하며 술을 마신 후 식당에서 나오다가 한나라당 유세 차량을 발견하고 단상에 올라가 욕설을 퍼붓고 행패를 부리다 잡혔다는 것이다. 박씨의 경우 열린우리당 기간 당원이라는 점이 의혹을 낳고 있으나, 그러잖아도 전패의 위기에 몰려 있는 집권 여당에서 선거 악재라는 역풍을 무릅쓰고 조직적 개입을 통한 정치 테러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 있는 공당에서 섣부른 정치 테러 운운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게 만든다. 가령 민주당이 서둘러 배후 운운하는 것은 여당에 대한 해묵은 악감정과 최근 발생한 공천 헌금 파문으로 인한 지지도 하락을 모면해 보려는 얄팍한 술수가 결합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이 긴급 의총 장에서 "테러 배후 색출", "경찰청장 모가지" 등등 섣부른 예단과 과격한 언동을 쏟아내는 것도 사건의 파장을 확대하려는 저의를 의심하게 한다. 고문과 공작의 일탈이 판치던 전체주의 시대가 아닌, 정치판의 모든 행태가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까발려지는 상황에서 치졸한 정치공작을 도모함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어느 정치세력을 막론하고 박대표 테러에 대한 정치적 오버는 자멸의 길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현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가 정치인이든 민간인이든 테러는 지극히 반인도적 범죄라는 인식이며, 따라서 검경은 이번 사건의 자초지종을 명확하게 밝혀내어 법적인 조치를 취함으로써 국민의 안전을 도모하고 제2, 제3의 모방 범죄를 사전에 차단해야 할 것이다.
(이상 한겨레신문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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