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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조선례 할머니의 ‘빼앗긴 들’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06-05-10 13:07:42
추천수 2
조회수   493

제목

대추리 조선례 할머니의 ‘빼앗긴 들’

글쓴이

박진수 [가입일자 : 2001-06-14]
내용
Related Link: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2203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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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미군기지 때문에 쫒겨나는 신세가 된 것은 벌써 두번째다. “어떻게 정부라는 게 세상에 그런가. 남의 나라 가서 살아도 이보단 낫겠소.” 주름진 얼굴에 진한 슬픔과 분노가 묻어난다.



조 할머니가 17살 어린 나이에 시집와 살던 곳은 현재는 캠프 험프리스 기지 활주로로 바뀌었다. “150호 정도 살았을까, 추석을 지내고 얼마 안돼 미군 활주로가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돌더니 어느날 미군 불도저들이 10대쯤 나타나 집을 밀어버렸어.”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남편을 사별하고 어린 세 아들을 먹여 살려야 했던 할머니는 그렇게 쫓겨나 혹독한 겨울을 보냈다.



“미처 집이 헐리지 않은 사람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지. 하지만 먼저 집이 헐린 사람들은 갈 데가 어딨어? 앞은 바다고 뒤는 비행장이고, 그래서 산으로 가서 겨울을 났어.” 땅을 파 움막을 짓고 지붕에는 떼를 입혀 간신히 추위를 막았다. 헐린 집에서 나오면서 들고 나온 잡곡으로 연명했다. “돼지 우리나 마찬가지였지.”



할머니는 논 600평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주인과 3·7제로 나눴지만 일년 소출은 쌀 몇 가마에 불과했다. 그리고 마을 앞 개간에 나섰다. 며칠 전 원인 모를 불이 난 대추리 이장 집 외양간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던 때였다. 주민들은 죽을 힘을 다해 삽과 지게, 가래만을 가지고 둑을 만들어 바닷물을 막고 흙을 메웠다. “모를 집어넣으면 죽었어. 2~3년 묵혔다 다시 심어보면 또 죽어. 벼가 빨갛게 타죽는 거야. 밑이 짜니까. 그러다 밤에 둑이 터지면 온 동네 사람들이 맨손으로 나가서 바닷물을 막았지. 이 논이 그렇게 만든 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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