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감정적 민족주의에 휩싸여 현실 인식의 눈을 가리고, 중국 자본의 북한 투자를 무조건 반대하는 시각은 위험하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동북공정을 국내 문제로 보는 시각에는 반대합니다.
중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하나가 사민정책이었습니다. 특정지역을 무력으로 통합하면 그 지역에 대대적인 이주민을 보내 동화시키는 정책이었죠. 이미 동화한 소수민족의 역사는 중국사의 한 부분으로 통합됩니다.
하지만 동북과 신장은 전혀 다른 곳입니다. 사민 정책을 펴 중국화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차이가 큽니다. 동북 지역이 중국의 영토가 된 것은 청나라 시대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중국이 동북 지역의 영토가 된 것이겠군요. 하지만 청나라는 동북을 신성한 곳이라고 하여 한족이 출입할 수 없게 하고 중국화하는 정책을 펴지 않았습니다. 위구르와 티벳(신+장)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위구르(신강)도 통합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뿐더러 티벳은 모택동 시기에 강제병합된 곳입니다. 중국인은 티벳의 원래 중국의 땅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근거로 내세우는 것들이 모두 가당찮은 것들입니다. 옛날 중국 황제와 티벳 지도자의 면담 그림을 놓고, 황제의 의자가 아주아주 조금 높다는 식의 근거를 대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국가는 문화/역사 공동체입니다. 중국의 공정 작업은 삼단계로 진행됩니다. 먼저 대규모 이주정책을 폅니다. 다음으론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에 문화적 통합을 시도합니다. 한화하는 건 아니고 융합하는 거죠. 문화적으로 통합되면 상대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 안에 통합합니다. 이렇게 전혀 다른 문화/역사 공동체를 통합해 온 것이 중국 역사의 발전 스타일이었습니다(중국은 시간이 갈 수록 넓어졌습니다). 이미 문화적 동일화가 이루어진 곳이 역사적 통합까지 완료되었으면 더이상 이야기할 바가 없습니다. 국제문제가 아니라 국내문제로 넘어간 거니까요. 하지만 무주공산이던 동북과 전혀 다른 정치 세력의 지배 하에 완전히 다른 문화를 발전시켜온 신장은 아직 중국과 문화/역사적 통합을 완료한 상태가 아닙니다.
중국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민족문제(특히 신장 쪽)와 계급문제(내륙과 연안의 소득 불균형)입니다. 혹자는 민족문제가 더 크다고 말하지만 저는 계급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계급문제까지 겹친 신장은 화약고나 다름없지만, 대부분의 소수민족 자치구들은 중국과 문화/역사적으로 통합이 완료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북의 조선족도 이미 중국화했기 때문에, 민족 분쟁이 발발해서 중국이 분할되더라도 영토의 80%를 잃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조선족도 중국화했는데 왜 동북이 문화/역사적으로 통합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일단 문화적 통합은 진행 중이라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피할 수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통합을 인정해서는 안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동북 역사의 주체가 동북에서만 생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현재 동북과 한반도는 별개의 문화적 발전 과정을 진행하는 중입니다. 고구려(길게는 발해) 이후 무주공산이었던 동북 지역의 역사가 중국사라는 그들의 주장을 인정해버리는 것은,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한 지류였다고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그리고 북지역을 포기하는 것 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영역이던 한반도 북부에 대한 점유권 논쟁까지 일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중국도 국제사회의 일원인데, 마음대로 북한을 병합하진 못하겠죠. 하지만 북한에 정치적 내란이 발생하는 등의 특수 상황이 발생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북한에 괴뢰 정권(중국식으로는 '번'이 되겠죠)을 세워 한/미에 대항하는 울타리로 삼으려고 할 수도 있고, 극단적인 경우 미국과 손을 잡고 흡수해버릴 수도 있겠죠. 역사적인 통합이 이루어진 후라면 문화적 통합은 훨씬 쉽습니다. 너무 SF적인 이야기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유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국내 선전용 국내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제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손가락 가는 대로 키보드를 두드렸더니 장황하면서 두서는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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