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당시 노동의 유연성 확보는 내외부적으로 강하게 요구되던 조건이었습니다. 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방법의 차이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방법으로 풀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유연성을 확대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가 기업내 이동의 유연성 확대가 한 방법이고 노동시장내 이동의 유연성 확대가 한 방법입니다. 기업 내 이동은 작업장을 바꾼다든지 부서를 바꾼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노동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보다 쉬운 방법으로 노동시장 자체의 유연성을 확대하는 방법을 썼지요. 이것이 비정규직입니다. 언제든지 뽑을 수 있고, 언제든지 자를 수 있으며 더군다나 급여, 처우 등도 정규직보다 훨씬 낮은 조건이 허용되니 기업 입장에서는 대환영이었죠.
기업내 이동은 일단 기업이 재교육의 책임이 있고, 노동자들은 새로운 작업을 배워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기업도 귀찮아했었고, 노동자들도 무관심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노동자들이 기업이나 정부를 믿지 않았지요. 그러니 결과적으로 기업 내 이동 방식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진행되지 못한채 날치기로 노동법 개악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업이나 정부의 잘못을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노동자들, 보다 확대해서 노동운동진영 역시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책임을 떠밀다 차선책이 있었음에도 결국은 가장 않좋은 선택을 유도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동운동진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어느 분의 표현을 빌리면 최대강령과 원칙을 혼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속되게 표현하면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필요없다는 식의 투쟁방식이 당연시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운동의 최대강령은 결국 노동의 유연성 확대 반대였습니다. 그것이 투쟁과 협상의 원칙이 되었으니 뒤로 물러날 수 없었죠. 그러나 원칙을 보다 낮게 잡았다면 협상의 여지가 생겼을 것이고, 충분이 보다 낳은 선택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봅니다.
기업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기업내 이동은 기업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데 그러한 믿음을 기업들이 못주었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막다른 선택으로 이끌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도 장기적으로 비정규직문제는 독이 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기업의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질 수도 있기때문입니다.
기업에 대한 충성도가 없는 직원들을 데리고 얼마나 성과를 이끌어낼 수있겠습까? 과거 무역상사에 다니던 선배들의 얘기를 들으면 자기집을 담보잡혀 회사 접대비를 마련해 계약을 성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회식비도 그렇게 자기돈을 써가며 직원들 사기를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고도 합니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일도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충성심은 이 회사가 내회사다라는 자부심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희생하는 만큼 회사가 나를 책임져 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과거 일본의 기업들이 이렇게 움직였고, 우리 기업도 이런 방식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기업과 노동자는 그저 계약관계일 뿐입니다. 지금 다니는 곳을 그저 경력관리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후배들도 많이 봤습니다. 그것을 그 친구들의 잘못만으로 폄하할 수있을까요? 기업이 적은 비용으로 큰 성과를 내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인데 사람에게 인색하면서 그런 생산성을 요구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정치권 역시 빨른 성과를 위해 최악의 선택을 했습니다. 어찌 보면 한국민주주의의 폐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짧은 임기내에 성과를 내기위해서는 장기적 과제보다는 단기적으로 성과가 날 수 있는 선택을 선호할 수 밖에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중임제 등의 개헌이 가치를 가질 수있다고 봅니다.
결과적으로 정치권이나 기업이나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선호하다 최악의 선택을 했고, 노동운동진영 역시 조금도 뒤로 밀리지 않겠다는 선명성에만 매몰되어 최악의 선택을 방조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온국민이 고통받는 상황에 내몰려 있습니다. 이제는 다른 방법을 찾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것이 사회협약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과 노동자가 자신들의 이익을 조금 양보하고 정부가 이것을 지킬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주는 구조말입니다. 그러나 아직 각 주체의 준비정도나 인식, 의지는 이러한 합의를 이끌어내기에 한참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조금 답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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