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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다른동호회에서 유독 포크 좋아하시던분이 계셨는데 lp메니아이기도 했습니다.그분이 어느날 소개해주었던 앨범입니다.얼마전에야 시디로 발매되어 구입했습니다.
링크된 곡이 타이틀인데 그외 수록곡이모두 좋습니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이젠 새벽에는 들리는데 이럴땐 순수한 포크음악이 좋을듯해서 소개합니다.
다음글은 퍼왔습니다.
수록곡
1. Dominique (도미니크) 2:57
2. Soeur Adele(아델 수녀) 4:29
3. Fleur de Cactus (선인장 꽃) 1:51
4. Complainte de Marie-Jacques (마리-자크를 위한 슬픈 노래) 2:28
5. Je Voudrais (내가 되고 싶은 것) 1:55
6. Tous Les Chemins (모든 길) 2:41
7. Plume de Radis (플륌 드 라디) 2:00
8. Mets ton Joli Jupon (예쁜 스커트를 입어라) 1:28
9. Resurrection (부활) 3:50
10. Alleluia (알렐루야) 2:53
11. Jai Trouve Le Seigneur (나는 주님을 발견했네) 2:59
12. Entre Les Etioles (별들 사이에서) 3:16
13. Je Ne Suis Pas Une Vedette (나는 고속정이 아니예요) 4:09 (Bonus Track)
14. Bain De Soleil (일광욕) 2:39 (Bonus Track)
15. Avec Toi (그대와 함께) 3:50 (Bonus Track)
16. Te Voir (그대를 보면) 3:00 (Bonus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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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Review
노래 잘 하던 한 수녀의 가슴 아픈 사연 담긴 베스트셀러! 70년대 번안가요로 큰 인기를 얻었던 타이틀곡 'Dominique'!
발매 당시 엘비스 프레슬리의 인기를 위협할 정도로 베스트셀러였던 그 음반 국내 최초 정식 앨범으로 발매!
방송에 나오면 문의가 쇄도했던 노래들. 하지만 정작 구할 수는 없었던 음반. 4곡이 보너스 트랙으로 추가되어 CD화!
노래만큼이나 아름다운 재킷. 프랑스어 가사와 한글 번역 포함. 수녀의 생활모습을 그린 여러 스케치들.
한평생 깨끗하게 살고 싶은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브뤼셀의 음악상점에서 가진 돈 모두 주고 기타 하나를 구입해 수녀원에 들어갔다. 수녀원에서 그녀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고 동료들은 그걸 너무도 좋아했다. 수녀원에서 만들어진 티 없이 맑은 영혼의 노래들이 음반으로 제작되었다. 그녀의 음반은 곧 빌보드 차트를 석권했고, 그것은 한때 엘비스 프레슬리의 인기를 능가할 정도로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 음반이 바로 ‘The Singing Nun', 즉 ’노래하는 수녀’다... 그러나 그녀의 종말은 불행했다. 평생 무관심하려고 했던 돈 때문에...
노래 잘 하던 한 수녀
벨기에 도미니크회 피셰몽(Fichermont)수녀원에 한 수녀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자닌 데케르(Jeanine Deckers). 그녀는 노래를 좋아했다. 수녀원에서 노래를 만들고 그것을 기타로 반주하며 동료들한테 들려주었는데, 꽤 인기가 높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녀의 노래에 완전히 매료된 동료 수녀들은 그녀의 아름다운 노래를 많은 사람들한테 들려주고 싶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수녀원에서는 그녀의 노래가 해외 선교활동에도 커다란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하고, 그녀에게 앨범을 내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해서 그 수녀는 1963년에 한 앨범을 내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노래하는 수녀(The Singing Nun)’였다. 녹음은 1961년 브뤼셀에 있는 필립스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필립스 기술진은 그녀의 순결하면서 강렬한 흡인력을 가진 음성을 듣고 잠시 어안이 벙벙해졌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2년 후에 발매될 그 한 장의 LP가 세상을 그렇게 떠들썩하게 만들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음반에 실린 그녀의 노래들은 미국인들의 감성을 단번에 휘어잡았다. 특히 한곡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그것이 바로 ‘도미니크’였다. 독특하게 명랑하고 묘한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그 노래는 미국 빌보드 차트를 금세 석권했다. 수녀의 노래라는 사실은 홍보에 분명한 도움이 되었고, 그녀 노래의 독특한 감성과 빛깔은 미국인들이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던 것이었다. 앨범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명성은 전 세계적인 것이 되었다. 평범한 ‘노래하는 수녀’가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스타덤에 올랐던 것이다. 이때 앨범에서 썼던 그녀의 이름은 ‘미소를 지닌 수녀’라는 뜻의 ‘수에르 수리르(Seour Sourire)'였다. 그녀의 노래가 전 미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자, 그 주인공을 불러오려는 세속의 손길이 수도원까지 뻗쳐왔다.
수녀는 더 이상 수녀원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서둘러 콘서트를 열어야 했고 1964년에는 인기 텔레비전 버라이어티 쇼로 23년간이나 장수하게 되는 에드 셜리번 쇼(Ed Sullivan Show)에까지 출연해서 대중들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어야 했다. 1965년에는 그녀에 관한 이야기를 토대로 한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그녀와 비슷한 연배의 여배우 데비 레이놀즈(Debbie Reynolds)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영화의 제목 역시 ‘노래하는 수녀(The Singing Nun)'였다. 이 즈음 그녀의 인기는 너무도 높이 치솟아 엘비스 프레슬리의 그것을 능가할 정도였다. 이제 그녀의 이미지는 확실히 대중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엄연히 성직의 길을 걷던 사람. 자신의 이야기가 대중매체에 그렇게까지 많이 회자되는 일이 그리 달가울 수만은 없었다.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어진 영화에는 호기심이 당겼지만, 정작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그녀는 스토리가 너무 가공적이라는 이유로 그것 역시 탐탁해 하지 않았다. 그녀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지만 노래하는 수녀는 자신이 점점 예측하지 못한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자신의 모습은 엄격한 수녀원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던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는 반성을 하고 그녀는 공연활동을 접었다. 그리고 1965년 다시 수녀원에 들어가 신앙생활에 몰두했다. 글쎄 이야기가 여기까지로 끝났으면 어땠을까?
나는 대중적 스타가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운명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불길이 있는 곳인데, 환하게 비치는 빛만 보고 따라갔던 나비의 그것 같았다고나 할까? 물론 그녀 안에는 그 환한 빛을 좇게 만든 근원적인 힘이 있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신앙생활과 계속 공존해왔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었다. 성직에 대한 신실한 열망 외에 ‘애초부터’ 하나 더 갖고 있었던 그녀의 열정은 당시 LP에 동봉된 해설 책자의 첫 단락에서 쉽게 그리고 충분히 가늠된다.
“오래 전 한 어린 소녀가 브뤼셀의 한 음악 상점 밖에서, 쇼 윈도우에 있는 기타를 쳐다보며 몹시 갖고 싶어 하고 있었다. 그녀는 충동적으로 그 안으로 들어갔다. 손에 남은 것 몇 페니를 가지고 그녀는 그 악기를 사버렸다”
열정은 결국 그녀로 하여금 수도원을 떠나게 만들었다. 대신 콘서트를 열어 벌어들이는 수입은 대부분 수도원에 기증했고, 그녀는 즐겁게 노래만 했다. 그런데 더 크고 긴 성공을 하기 위해서 가수는 대중의 취향이나 요구에 계속 귀를 기울여야 했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데 적극적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좋아했던 것은 노래뿐, 명성이나 인기도 아니었고, 돈은 더군다나 아니었다. 물론 대중적 취향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면 되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수녀가 얼마나 비대중적인 인물이며 대중적 시선을 원천 차단하면서 노래했는가는 1967년 두 번째로 내놓은 그녀의 앨범제목을 봐도 감지할 수 있는데, 그것은 ‘I am not a Star', 즉 ’나는 스타가 아니에요‘였다. 이것이 빅 히트 음반을 낸 가수가 그 후속으로 내놓은 앨범의 제목이었다. 대중 앞에 선 가수의 그런 태도는 당연히 달리는 말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부하가 걸린 말은 이내 속도가 떨어졌고 결국 멈춰서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그녀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것이었는지 정확히 판단하기란 어렵지만, 두 번째 앨범이 나온 후 그녀의 이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사라졌다. 그녀는 은근히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수녀원 생활로 복귀하지는 않았다.
가슴 아픈 이야기
당시 교회의 보수주의에 대해서 점점 회의를 느끼고 있었던 그녀는 수녀원에 들어가는 대신 10년 지기였던 아니 페셰(Annie Pescher)와 함께 자폐증 아이를 위한 학교를 설립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부터 그녀는 심각한 고뇌에 싸이게 되었다. 세금문제로 벨기에 정부는 그녀와 싸움을 걸었고, 수녀는 번 돈을 거의 수도원에 보냈기 때문에 자신에게 부과된 세금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정부의 지속적인 압박에 시달리며 고통 받던 수녀는 어느 날 친구 페셰와 동반자살을 한다. 1985년의 일. 당시 그녀의 나이는 52세였다. 인기, 명성,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래가 좋아서 가수로 활동했던 수녀. 환하게 미소 띤 얼굴로 노래만 하고 싶었던 한 순수한 영혼이 속세의 사건에 연루되어, 그것도 어릴 때부터 평생 무관심하기로 결심했던 돈 때문에 어처구니없이 스러진 실화다. 그리 길지 않았던 그녀의 일생을 돌아보면, 순수하고 맑은 이미지의 ‘도미니크’란 노래가 그리 밝게만 들리지 않는다. 그녀가 세상을 하직하며 남긴 유서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영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막다른 골목에 와있다. 이제 우리는 하느님께 간다. 하느님만이 우리를 파산에서 구원해 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잘 산다는 것의 의미가 뭔지, 가슴 한 구석을 다시 아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