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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을순에게 애국을 강요할 수 없다 !! 박을순의 선택!! 그것은 이제 서막에 불과하다 (펌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06-02-25 09:16:10
추천수 1
조회수   815

제목

박을순에게 애국을 강요할 수 없다 !! 박을순의 선택!! 그것은 이제 서막에 불과하다 (펌

글쓴이

김대중 [가입일자 : 2003-10-31]
내용
박을순에게 애국을 강요할 수 없다 !! 박을순의 선택!! 그것은 이제 서막에 불과하다 (펌)



번호 : 258053 글쓴이 : 가이드

조회 : 352 스크랩 : 5 날짜 : 2006.02.25 04:48





개인적으로는 이번 파문이 있고 나서 제 컴퓨터하드에 궁뎅이 두들겨 넣은 두번째 글입니다.



글을 쓰신 [신]칠복이동생 님께서도 퍼주기를 바라셨고, 봐도봐도 아깝지 않습니다.



우리가 왜 이 새벽에 잠 못드는지...



"황뽕" 소리 들어가며 "애국"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명쾌한 답이 있다고 봅니다.



이 명문을 다시 한번 감상하며....



(서프에 이글이 있나요? 요즘 안가서 모르겠습니다)



(만약에 없다면 좀 퍼주시겠습니까?)







=======이하 펌프질=======







박을순에게 애국을 강요할 수 없다 !! 박을순의 선택!! 그것은 이제 서막에 불과하다









박을순의 선택!! 그것은 이제 서막에 불과하다



[박을순에게 애국을 강요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번 한국인은 죽을 때까지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을순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질 수 있는 곳은 단 한곳 대한민국이지...외국에선 아무튼 얼굴 노란 이 여자는 한국여자일 뿐이다. 글쎄 노력도 많이 했으니 부귀영화누리며 잘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미국에 있는 당신의 위상은 그저 고급노예일 뿐이다!





애국심이라는 것







예전에 어떤 논객은 "애국은 하되 애국주의자는 경계한다"고 했다.

이 말은 국민 개개인의 사회와 국가에 대한 애국심에 있어서 자발성은 좋지만 권력자가 권력유지를 위해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주입식 애국심은 옳지않다는 말일게다.







이를테면 케네디의 유명한 말이었던,

“국가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생각하기 전에 당신이 국가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는지를 생각해 보라”..라는 권력자의 국민에 대한 무한희생의 강요성은 경계해야 된다는 거다.



십분 이해되는 말이지만 이런 얘기까지 나오는 거 보면 그 논객은 과거 국가주의자에게 어지간히 서러움을 당했나보다.







세월이 흘러 그 논객은 청와대의 핵심인사가 되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진보논객의 신분이 아니었고 국가의 중대사를 아우르는 권력의 실세가 되어 버렸다.







그 후 그는 공석에서 아주 우연히 이 문제에 대해 맞딱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는 즉답을 회피하며 얼버무렸다.







어느새부턴가 한국에서는 이상한 난기류가 발생했다.

이것은 하이텔,천리안 등 대한민국 1세대 인터넷통신부터 넷츠고라는 멀티미디어시대의 2세대 통신,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상에서 흘러왔던 패러다임을 겪어 본것에 대해 국한된 말이다.







이른바 얼치기 좌파 논객들이 뿜어내는 과거 국가주의자들에 의한 피해망상증이 뭇젊은이들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 화려한 수식어에 포장되어 들풀처럼 번져나갔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애국심이라는 추상명사는 분해되었고 그 의미가 변질되어 갔다.







이들 얼치기 좌파논객들이 규정하는 애국심은 이거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애국심은 주술을 걷어낸 참된 자의식속에 건강하게 자라난 이성에 의한 것이고, 대다수 민중들이 갖고 있는 그 애국심은 과거 국가주의자가 주술을 걸어 놓은 무지몽매함속의 불순한 애국심이라는 거다.







그래서 자신들의 군사정권시대 민주화투쟁은 고귀한 애국심의 발로이며 새마을 운동의 구호 아래 묵묵히 산업발전을 이뤄낸 민초들의 애국심은 저순도 무지몽매한 것으로 치부한다.







이런 시각은 현재 황우석박사 수난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함이 없다.



한 과학자의 눈물어린 노력의 산물이 분명 대한민국의 기술이요, 그것을 강탈해가려는 세력들의 뻘짓을 밝혀내려는 민중들의 피끓는 함성도 그 무지몽매함에서 나온다는 얘기다.





이들의 눈에는 월드컵4강시 광화문 앞에 모인 민중의 벅찬 감동도 아니꼽고 불순해보인다.







이렇게 개인에게 일어나는 자발성의 이타심 조차 작금의 국적불명 좌파논객들은 위험한 애국심으로 규정하는 뻘짓을 해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배타적 애국심인 쇼비니즘과 징고이즘으로 버전업되어 이들을 옭아매려하고 있다.







이들 스스로는 사상의 자유를 논하면서 자신이 짜놓은 정형화된 사고의 영역에서 단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발버둥친다.







그럼 도대체 애국심이라는 것은 뭘까?

뭔데 이 얼치기 좌파들이 이 지랄들일까?



먼저 그것을 사전적 풀이외에 더 정확히 무엇이다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은 추상명사의 한계일 것이다.







어쨌건, 이 애국심의 시발점은 분명 이타심이다.

나만 잘먹고 나만 잘살자라고 생각한다면 절대 애국을 논할 수 없다.

이런 개인의 이타심이 그 대상을 이웃과 사회와 나아가 국가로 이어지는 과정에 자아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욕구 충족과 집단에 소속됨으로써 인간의 본능적 심리기저인 소속감과 안정감을 충족시켜준다.







어쨌건 좋다. 규정도 맘대로고 뻘짓도 맘대루다.

그러나 작금 세계는 자의적이던 타의적이건 각자 소속된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응집되어 자국이기주의 상태로 국가간 대처하고 있고 세계자유시장경제는 이 논리에 귀속된다. 이거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청와대의 해외인재발굴







2005년 10월 23일 청와대는 문신용의 처제로 알려져 있는 정영애 균형인사비서관과 중앙인사위 관계자를 각각 미국과 유럽에 파견하여 현지에서 인재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한 자료 확보와 해외에 있는 인재들과 접촉하여 정부 고위직 및 정부 투자기관, 산하기관장 등의 충원 대상을 해외에서 활동중인 인재들로까지 넓히기 위해 나선다고 밝혔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자.

현재 외국에서 활동중인 유능한 한국인 또는 그의 2세나 3세들을 대한민국의 인재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즉, 당신은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므로 조국을 위해서 일해주십시오라며 애국심으로 러브콜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지 않고선 현재 한국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그들을 데려올 구실이 없다. 그렇다고 외국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공해 줄것인가?







여기서 또 나오는 단어가 바로 "애국심"이다.

현재 국내보다 훨씬 대우도 좋고 근무환경도 좋은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이 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열악한 국내로 들어오는 일부 Think Tank 들의 동기는 분명 애국심이다.







그런데 이 해외인재들로부터 이 애국심을 작동시켜 러브콜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상태는 다음과 같다.







1. 타인과 사회에 대한 이타심이 유지되는 순수한 심리상태.

2. 비록 1의 이타심은 아니지지만 국내에서 제시하는 조건이 더 좋다라고 계산된 일타쌍피의 심리상태.

3. 국가가 절체절명의 상태에 빠져 구국의 사명감이 벅차오른 심리상태.

4. 인생사 용두사미인걸 알고 '용미'보다는 '사두'의 '꿈을 안고 좀더 만만한 국내에서 한자리 쟁취하고자 하는 타협적 심리상태.







뭐 위에 열거한 상황 말고도 따져본다면 부지기수일거다.



그런데 다른 경우의 수는 허접으로 치고 1의 예만 보자.



즉, 타인과 사회에 대한 이타심이 유지되는 순수한 심리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사회나 국가가 그 개인에게 반드시 보장해주어야 할 의무사항이 있다.





그것은 그 개인이 소속된 사회에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했을 경우 사회는 그에 걸맞는 대우와 보호는 당연히 해주어야 하는 사회 구성원과의 기본적인 약속이다.



만약 사회안에 이런 기본 시스템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1의 심리적 상태는 유지하기 힘들다.







그런데 작금의 황우석박사 수난사건에서는 이런 기본시스템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황우석박사가 논문을 과장 또는 조작했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황까든 황빠든 다음의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 못한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이제껏 험난한 길을 달려온게 아니라는 거. 이것은 이제껏 그의 행보가 확실히 증명한다.



그는 자신의 시가 100억짜리 땅도, 자신의 1조원 스카웃제의도, 자신의 연구산물인 그 기술의 특허권도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이용하지 않았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연구분야에 미치고 싶어했던 고리타분할 만큼 천부적인 학자였고 그 연구산물을 이 사회와 대한민국의 것으로 귀속시키고 싶어했다.



이것만으로도 천민자본주의가 팽배한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황우석이라는 분은 존경받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그러나 사회는 그를 철저히 매장하고 있고 국가는 철저히 방치하고 있다.



논문조작? 데이터 과장?

그것에 대한 사회적 형벌은 이미 이성을 잃은 "광기" 그 자체다.







이 사건은 발달된 통신기술로 인해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있다.

해외에 있는 그 인재들을 포함한 동포들에게도 생생히 전달되고 있다.

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적어도 대한민국이 국가와 개인간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시스템이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래서 청와대의 해외인재 영입정책은 결국 헛수고라는 얘기다.

해외에서 찾을게 아니라 국내에 있는 인재 관리조차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해외인재들에게 무엇으로 동기부여를 시킬것인가?



그나마 이런 얘기 안들으면 다행이다.







애국심? 그게뭔데?

그거하면 뭐 보장돼?

그런 기본시스템이 작동하는 사회야?

이 사회를 위해 일해봤자 누구처럼 매장 안당하리라는 보장있어?

그렇다고 외국보다 조건이 좋아?









인재들의 대규모 엑소더스







국가에서 가장 귀중한 자원은 두말할 나위없이 지하자원이나 천연자원등도 아닌 바로 인재이다.

비단 한 국가만이 아닌 전 인류의 최고의 부가가치는 바로 인류이며 뛰어난 인재이다.



이 인재들을 양성하고 선별해 사회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견실한 인적인프라망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가 선진으로 가느냐 후진으로 가느냐가 판가름난다.





더군다나 몇몇의 뛰어난 천재가 수만, 수십만을 먹여 살릴수 있는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이다.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당당히 1위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분야가 몇개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바로 극성스러운 교육열이다.





교육시스템의 부재와 모순이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데도 이 교육열만큼은 절대 식지 않는다.

그 교육열에 비례하여 교육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소요된다.

국가적으로 따진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이 극성스러운 교육열에 소비되고 있다.

막대한 사회적 손실이 일어나고 있는 거다.







그러면 어쨌건 사회가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인재로 키워냈다면 그 인재들은 이 사회의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그 역량을 발휘하게끔 해야만 사회적 비용손실에 대하여 그나마 수지타산이 맞는거다.





만약 우리가 천문학적인 시회비용을 지불하면서 키워낸 인재들이 다른 사회 다른 국가로 귀속된다면 우리 사회는 think tank 인프라망이 엉망이 되고 고갈되어 갈 것이다. 한 마디로 “죽써서 개 주는 꼴이다.”







사회를 위해 헌신한 자는 그 사회가 더더욱 철저히 보호해줘야 하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구성원은 그 사회에 자긍심을 갖는다.







그저 일가의 범부에 지나지 않는 나같은 소시민도 착취에 가까운 세금을 내는것 만큼 사회로부터 서비스를 원한다.



이렇게 구성원은 의무를 지불하는 대신 사회로부터 그에 걸맞는 서비스를 원한다.







그러나 서비스가 안좋으면 머물지를 않는다.





지금의 시대에는 개인의 의지에 따라 그 구성원이 되는 국가나 사회를 선택할 수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해외이민 현상이 이를 잘 말해준다.

수많은 기업들도 보다 풍부한 인적자원과 낮은 세금 등 제도상 혜택이 많은 국가로 옮기는 세상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이런 기본적인 룰이 무참히 깨져버렸다.

그래서 정말 심각한거다.







숱한 세월동안 오로지 자신의 연구분야에 미쳤었고 그럼으로써 소중한 연구산물을 이 사회와 대한민국의 것으로 귀속시키고 싶어했던 그를 우리사회는 무참히 짓밟고 있으며 국가는 이를 철저하게 방관하고 있다.







혹자는 뭐 우리 사회에 그외엔 인재가 없는가?로 반문할 수 있겠다.

남은 연구원들 추려 다른 사람이 지휘하여 꾸려가면 된다고들 말하고 있다.

그걸 이번 사건의 수습이라고 공공연히 내뱉고 있다.







물론 있다. 그러나 애국심과 자긍심이 도려내어져 가슴이 뻥뚤린 그들은 이제 철저한 자본론의 법칙에 따라 보다 조건이 좋고 대우가 좋으며 보다 더 자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곳을 선택한다.







애국심과 자긍심이 도려진 채 이런 철저한 자본론의 게임에서 과연 현재의 한국이 선진국보다 더 좋은 위치를 선점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그나마 그 인재들을 열악한 우리 사회에 귀속시키는 것은 분명 “사회”와 “국가”를 생각하는 애국심과 자긍심이다.





현재의 대통령이 누구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러나 한 국가의 수장이 이런 기본 룰이 무시되는 사회 시스템을 방치한다면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제일 큰 직무유기에 속한다.



조직의 리더는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함으로써 자발성을 이끌어낼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동기부여는 커녕 동기제거에 동조할 경우 그것은 최악의 리더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의 이득을 배제한 채, 사회에 헌신한 사람을 하루아침에 완전히 매장시키는 지금의 사건을 전세계의 모든 코리안들이 생생히 목격하고 있으며 이는 이들의 가슴에 남아있는 애국심과 자긍심을 도려내는 행위이다.







이런 사회의 기본적인 룰이 무참히 깨진 현재의 사회에 희망이 있을리 없다.

누가 이런 기본 룰이 무시되는 사회에서 살려고 하겠는가?







현재 이 상황에서 박을순의 선택..이것에 대해 야속한 사람 많을거다.

그러나 이제 이것은 서막에 불과하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이제 대한민국은 인재들의 대규모 엑소더스를 경험하게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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