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좋은생각" 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두께도 가볍고, 읽기 쉬우며, 좋은 얘기들이 가득차서
한달마다 전해지는 이책을 읽는 것이 저에게는 마음의 정화가
되어 즐겨하는 편입니다.
이번 6월호에 어빈 니레지하치의 이야기가 실렸습니다.
감동적인 내용이었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혹시 모르시는 분이 계시다면 한번쯤 읽어보실 만한 글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제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빈 니레지하치의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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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빈 니레지하치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샤인"의 실제 주인공 데이빗 헬프갓처럼 니레지하치 또한 오랜 세월동안 잊혀진 피아니스트였다.
연주회에서 그의 연주(전성기 때)를 실제로 들었던 사람이 아직까지 생존해 있을 확률은 아마도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어빈 니레지하치의 불행은 순전히 그의 천재적 재능 때문이었다. 10살 이전에 리스트의 난곡을 자유롭게 연주했으며 20살이 될 무렵에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 당시(1900년대 초반)에도 지금처럼 스타급 연주자에겐 매니저가 따라 붙었나보다.
어빈의 매니저는 이른바 악덕 흥행사였다. 돈벌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무대건 가리지 않고 어빈을 출연시켰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서커스에서 막간 연주를 하기도 했다.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마치 곡예하듯 연주하여 많은 찬사를 이끌어 내기도 했지만 어빈의 마음은 늘상 공허했다.
한때 어빈의 연주에 절대적인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비평가들과 암스테르담에서 베를린으로 그의 연주회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갔던 애호가들조차 이러한 어빈에 실망했음은 물론이다. 상업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어빈에게 돌아온 몫은 거의 없었으니 그가 회의를 느끼게 된것 또한 당연하다.
마침내 어빈 니레지하치는 다시는 피아노 앞에 앉지 않겠노라는 굳은 결심과 함께 어디론가 잠적하고 만다.
이때 그의 나이는 불과 열여덟이었다.
1970년대 중반으로 기억된다. 사업차 뉴욕에 들렀던 CBS(현재는 Sony에 인수됨)의 한 관계자는 허름한 선착장 곳곳에 붙어 있는 음악회 포스터를 보게된다. "어빈 니레지하치! 50년만의 연주회" 어디서 본듯한 이름이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었지만 호기심에 연주회에 참석하게 된다.
아주 초라한 홀에서 열린 작은 연주회였다. 등이 약간 굽은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백발의 노인이 무대위로 성큼 걸어 왔다. 연주곡목은 리스트의 "두개의 전설" 노인의 연주가 시작되자 그는 전율하듯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수없이 들어왔던 익숙한 곡에서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할 수 없었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맞아! 어빈 니레지하치!" 어렴풋이 과거의 기억이 떠오르는 듯 했다. 순간 그는 갖고 있던 포터블 녹음기의 버튼을 잽싸게 눌렀다. 어빈은 음악계를 떠난 후 뉴욕의 빈민가에 거주하며 주로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이렇게 사는게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했다. 누가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고 다가오는 이도 없었다.
그저 혼자였다.
이러한 어빈을 불쌍히 여긴 하숙집 주인의 딸은 어빈을 식사에 초대하기도 하고 빨래를 해주기도 하였다. 때로 외로울 때는 말동무가 되어 주었다. 어빈은 그녀에게 고마움과 함께 애뜻한 연정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그만치 10살이나 연상이었다. 유난히 수줍음을 탔던 어빈은 끝내 아무런 말도 못해보고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빈의 마음속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렇게 세월은 흘러 40년이 더 지났고 어빈은 70세의 노인이 되어 버렸다.
그녀를 생전에 다시 보게 될 줄은 어빈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녀는 80세의 노파가 되어 있었고 돌봐줄 사람도 모아둔 재산도 전혀 없었다. 그것은 어빈도 마찬가지였다. 더욱 불행한 것은 그녀가 불치의 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빈은 정식으로 그녀에게 청혼을 한다. 얼마남지 않은 그녀의 삶을 자신이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 몇몇 사람들만 참석한 가운데 70세 노인과 80세 할머니의 희안한 결혼식이 거행된다.
어빈은 결심한다.
그의 생에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콘서트를 열기로...
그녀의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한 연주회이다. 가능하다면 그녀의 생명을 더 연장시키고 싶어서였다. CBS 스튜디오로 돌아온 프로듀서는 슈라 체르카스키를 비롯한 저명한 피아니스트와 몇몇 사람들을 불러 자신이 녹음해 온 테이프를 들려 준다. 연주를 듣고 모두들 한결같이 경탄해마지 않는다. 드디어 CBS는 어빈을 불러 그날의 연주 레퍼토리를 정식으로 레코딩하기에 이른다.
리스트의 "두개의 전설"을 비롯한 몇몇 작품이 어빈에 의해 비로소 빛을 보게 된 것이다.
CBS는 더 많은 녹음을 그와 함께 하기를 원했지만 더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어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얼마후 숨졌으며, 어빈은 다시 잠적하고 만다.
어빈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된건 아주 근래의 일이다.
어빈 니레지하치의 그 전설적인 음반을 찾아 서울의 음반점을 죄다 뒤졌지만 아직 찾지 못하였다. 국내에는 소량 수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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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 속으로 사라진 니레지하치의 레코딩"
Ervin Nyiregyhazi: At The Opera
어빈 니레지하치(Ervin Nyiregyhazi).
그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어느 음악서적을 통해서였다.
도서관에서 빌려든 한 권의 책...아마도 음악평론가인 이순열의 책으로 기억되는데 그 책에서, 잊혀진 피아니스트 니레지하치에 대한 글을 만났던 것이다.
불운한 인생여정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애정을 담은 평론가의 글 때문이였는지, 나는 목이 메이는 심정으로 글을 읽었고 그의 음악에 대한 알 수 없는 그리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 책을 읽고, 기억하기 위해 적어둔 그날의 일기, 그러니까 95년 내 일기장의 한 페이지는 니레지하치의 이름이 눈물자국처럼 번져 있다.
.......어릴 때부터 모차르트에 비견되는 신동으로 찬사를 받아온 그는, 그러나 서른 안팎의 나이에 무대를 떠나고 만다. 욕심이 많았던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돈을 노리는 여자들, 그 속에서 정처없이 방황하던 그는 자취를 감추고, 그후 40년을 부두의 하역노동자로 생활한다.
'리스트 이래의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라 칭송을 받던 그가 자신의 예술혼을 접어둔 채 육체노동에 기대어 연명해 나가면서 그가 씹었을 좌절과 고뇌에 나는 가슴이 아파온다......(95.6.1)
결국 니레지하치는 아내의 병구완을 위해 40여년을 외면했던 무대에 오르게 된다.
작은 콘서트장...그곳에서 그는 마지막 천재혼을 불사르는데 그 때 녹음된 앨범이 <두개의 전설>...
그렇게 마지막 연주를 하고는 표표히 사라져 87년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는 스폿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했다가 너무 일찍, 너무 빨리 좌절 속에 묻혀 버렸다.
현실감각이 없어 늘 돌부리에 채이듯 그렇게 절뚝이는 삶을 보낸 사람.
살면서도 그리고 후대에 이르러서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잊혀져 가는 한 음악천재....
그의 신산스러운 삶과 미처 다 쏟아지지 못한 음악적인 볼륨이 강력한 자장이 되어 나를 끌어당겼다.
우연히 한 통신동호회에서 그에 대한 그리움, 사실 그리움이라고 하지만 아직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이 글에서 느꼈던 막연한 그리움을 잠깐 내비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어떤 분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내게 그의 앨범을 하나 선물하겠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 나는 고정희의 시집과 함께 바로 이 앨범 At the Opera를 받아들었다.
그 앨범을 데크에 걸고 소파에 몸을 묻었을 때, 나는 그의 타건 하나하나에서, 고달픈 삶으로 굳어진 손가락마디를 놀리며 연주하는 그의 고독을 만나는 기분이었다.
그의 강렬한 연주는 내 마음의 현을 건드리고 공명시켰다.
아쉽게도 이 앨범으로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그러기 때문에 내게는 아직 유예된 그리움이 남아있다.
<두개의 전설>과 만나고 싶은......
이 앨범에는 바그너의 <리엔치 Rienzi>와 <로엔그린 Lohengrin>,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Un Ballo in Maschera>와 <일 트로바토레 Il Trovatore>, <오델로 Othello>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오이겐 오네긴 Eugene Onegin>과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Pagliacci>등 모두 7개의 오페라에 대한 니레지하치의 6곡의 paraphrases가 실려있다.
그의 앨범을 다시 펼쳐들며 고정희의 시집을 읽는다.
니레지하치가 스스로를 유폐시켰던 그 절망 속으로 나는 가라앉는다. (2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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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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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의 사연을 보더라도 곡 듣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혹시 위 음반을 소장하고 계신 분이 있으시다면 리플 부탁드립니다. 꼭 들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