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Auralic 이라는 업체는, 짧은 연혁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중화권 업체가 그렇듯, 우리나라에는 잘 알려진 편은 아닙니다. 저도 이 업체 이름은 근래 들어서야 들었으니 말입니다.
제가 Auralic 오라릭 Vega 베가, 라는 제품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근래 들어 DAC 관련해서 Stereophile紙를 참고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 종종 언급하는 제품이 바로 오라릭 베가 (이하 베가) 였기 때문입니다.
2014년 스테레오파일에서 리뷰한 이후로 스테레오파일 추천 A클래스, 나중에는 A+클래스에 빠짐 없이 등장하는 제품인 베가. 무엇이 이 DAC를 그렇게 칭송하도록 만들었을까요.
셋업
제품을 인수한 이후 일주일 가량을 셋업에 신경 썼습니다. 볼륨 조절 기능이 있어 파워앰프 직결이 가능한 제품들의 경우 대부분 이렇게 어느정도 시간이 소요됩니다. 파워앰프 직결과 프리앰프를 거치는 차이는, 파워앰프나 프리앰프와의 궁합에 따라 적은 경우도 있고 꽤 큰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음질보다는 편의성 때문에, 그리고 뮤지컬피델리티 V90 DAC (이하 V90) 와의 비교 때문에 프리앰프를 사용했습니다.
프리앰프: 오디오 리서치 LS15
파워앰프: 프라이메어 A33.2 (입력: 트랜스페어런트 뮤직링크 수퍼 XLR)
DAC: 뮤지컬 피델리티 V90 (링코어 리니어전원 업그레이드) 네오텍 3001 RCA
네트워크 플레이어: 블루사운드 Node2
스피커: 다인오디오 C3 (케이블: 트랜스페어런트 뮤직웨이브 플러스)
케이블: 네오텍 3001 XLR (베가), 네오텍 3001 RCA (V90), 트랜스페이런트 뮤직링크 수퍼 XLR (프리파워), 트랜스페어런트 뮤직웨이브 플러스 스피커 케이블, 체르노프 클래식 XS mk2 스피커 케이블, 체르노프 클래식 XS 파워케이블, 오야이데 츠나미 V2 파워케이블, 체르노프 클래식 USB 케이블.
사운드
베가의 소리는 필터 설정에 따라 다릅니다. PCM 필터는 4종, DSD 필터는 2종이 탑재되어 있습니다. DSD필터는 논외로 하더라도 PCM 필터 4종은 각기 약간씩 차이가 있습니다.
Mode 1번은 정통 리니어 페이즈 (Linear Phase) 필터, Mode 2번과 3번은 고음역대를 조금씩 롤오프 시킨 필터들이며, Mode 4번은 미니멈 페이즈 (Minimum Phase) 필터 입니다.
미니멈 페이즈 필터는 간단하게 말하자면, 소위 디지털적인 소리의 주범이라 지목되는 Pre-ringing을 가능한 제거하여 아날로그적인 소리에 가깝게 구현하려고 설계된 필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리디안의 Apodizing Filter도 넓게 보면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리뷰어들이 사용하였으며, 베가의 제작사에서도 개발 중에 직원들에게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고 한 4번 필터를 저도 주로 사용하였습니다. 4번 필터를 적용시킨 베가를 기준으로 아래 리뷰를 작성합니다.
미니멈 페이즈 필터의 특징적인 고음 특성이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옵니다. 고음의 끝이 동그맣게 말려 자극 없이 음을 풀어줍니다. 하지만 그간 들어 본 다른 기기들의 그것과는 음색만 비슷할 뿐, 해상력에서 차원을 달리 합니다.
레가 DAC, 캠브리지 오디오 851N으로 듣는 미니멈 페이즈 필터는 부드러운 음색은 좋지만 음상이 흐릿해지고 해상도가 떨어집니다. 특히 음상에서 많은 손해가 느껴지는데, 초점이 잘 안맞거나 흔들려서 흐릿한 사진마냥 뿌옇고 흐릿해집니다. 베가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음의 음 하나하나에 살집이 붙고 윤택해지지만 해상도가 눈에 띄게 떨어지거나 하지 않습니다. 분명 매뉴얼에는 44.1kHz대의 PCM 음원들에서는 청감상 해상력이 떨어지게 들릴 수도 있다고 되어 있지만, 기본 해상력이 워낙 출중한 상태에서 약간 누그러진, 부드럽게 다듬어진 고음으로 바뀌는 정도이기 때문에 해상력에서 손해를 본다는 생각은 거의 들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높은 고음대를 제외한 나머지 대역에서는 그야말로 레코딩을 남김 없이 긁어낸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해상력이 좋기 때문에 아쉽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중역대에서도 남김 없이 긁어내는 해상력이 빛을 발합니다. 볼륨을 올릴수록 무대가 커지고 내보내는 정보량도 커집니다. 대편성 오케스트라부터 어쿠스틱 보컬에 이르기까지 한오라기의 정보량도 놓치지 않고 풀어냅니다.
뮤지컬 피델리티 V90에 비해 음장감이 커진 느낌, 무대가 커진 느낌에는 든든한 저역대도 한몫을 합니다.
무엇 하나 아쉬운 부분이 없습니다. 냇 킹 콜, 샘 쿡, 프랭크 시나트라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약간의 살집이 붙어 나옵니다. 빈티지 성향과는 거리가 멀지만 분석적인 현대적인 성향과는 더욱 더 거리가 멉니다. 음악성을 중시한다고 대편성에서 해상력을 잃지도 않으며 뭉치거나 둔하고 느리지 않습니다.
전대역이 낼 소리 다 내주면서 온도감을 잃지 않고, 중립적이면서도 음악성을 놓치 않는다는게 절대 쉽지 않은데 그걸 해냅니다.
VS 뮤지컬 피델리티 V90
V90만 해도 중역대와 고음쪽에 강점이 있고 특히 음악의 뉘앙스를 전달하는데 대단한 능력을 발휘합니다. 업샘플링을 한다고 하지만, 디지털스러움은 없고 자연스러움만 남겨서 음악적으로 내줍니다. 그러나 베가와 비교했을 때 해상력에서 한끝이 아쉽습니다.
제 청취 환경이 니어필드와 3~4미터 가량 떨어진 침대로 나뉘어 지는데 V90은 니어필드에서 강점을 발휘합니다. V90의 가장 큰 강점은 음상의 정위감과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고음과 중역대의 표현력이라 할 수 있는데, 이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때가 니어필드에서 입니다. V90으로 스펜더 SP1과 케인 KT88 진공관 앰프로 들었던 김광석은 아무리 베가에 오디오리서치 프리, 프라이메어 파워에 다인오디오 C3 라 해도 따라올 수가 없는 부분입니다.
한편 음장감과 저음이 제대로 나오는 3~4미터 거리에서는 베가의 전대역을 아우르는 해상력과 무대 표현력이 우위를 보입니다. V90만 들어서는 V90의 스테이징이 좁다고 느끼기 어렵지만, 같은 곡을 베가로 듣다가 V90을 듣게 되면 이게 차이가 납니다. 앞뒤로 형성되는 이미징은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할수 있지만, 스피커를 둘러싸는 너비로 보면 V90이 베가에 비해 아쉽습니다.
V90과의 비교는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출력이 차이가 나서 (2.2V vs 4V) 볼륨 매칭도 어려웠을 뿐더러, 애시당초에 XLR 연결과 RCA단의 비교였으니 전혀 쉽지 않았습니다.
확연한 차이가 보이는 듯 하다가도 조악하나마 스맛폰앱을 동원해서 볼륨 미터 앱으로 볼륨 매칭을 한 후 들어보면 그 차이가 급격히 줄어들곤 했으니까요. 그 차이가 해상력이든 스테이징이든 말입니다.
총평
오라릭 베가로 음악을 듣다 보면 여기서 더 업그레이드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음색이 단정하고 어디 모난데 없고 모자란 부분이 없으며, 튀거나 도드라지는 부분도 없습니다. 묵직한 저음이 나오지만, 무겁지 않고, 투명한 고음이 나오지만 가볍지 않습니다. 편안하지만 어둡지 않고, 밝음을 유지하되 디지털의 차가움은 찾기 어렵고 빈티지스럽지도 않습니다. 두툼하진 않지만, 가느다란 소리는 더더욱 아닙니다. 모범생 같이 재미없지 않지만, 과장된 음악적인 뉘앙스를 내주지도 않습니다. 모니터적이라고 하기에는 음악적이고, 따뜻하다고 하기에는 정확합니다. 부드럽다고 하기에는 섬세하고, 진공관처럼 촉촉하지는 않습니다만, 드라이 하지 않습니다.
취향에만 맞는다면 이보다 더 나은 DAC를 찾기는 가격대를 막론하고 지난한 일일 것입니다.
V90에서 비로소 업그레이드라는 느낌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