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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날, 광화문에 갔다.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06-01-17 10:50:07
추천수 1
조회수   1,768

제목

토요일 날, 광화문에 갔다.

글쓴이

여명수 [가입일자 : 2002-02-16]
내용
자주 들리지는 못했지만 그 동안 시게를 주욱 지켜 본 바로는 소위 황빠 입장을 보이면

아직도 사깃꾼의 술수에 비몽사몽하는 한참 모자란 인간 축으로 보는 판이어서 겁먹고

눈팅만 하고 있었습니다. ^^



탄핵 사태 당시에는 동지였던 분들이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을 계기로 둘로 갈라지는

것은 제가 자주 찾아가는 서프라이즈와 다를 바가 없군요.

하기야 뭐 탄핵사태 당시 같이 광화문에 나가 촛불을 밝히던 옆사람과도 이 문제로

티걱태걱 하고 있으니 무리도 아니겠습니다.

하여간 그래서 지난 주 토요일 황우석 연구재개를 위한 촛불집회에는 저 혼자 나갔습니다.

어린아이들 손 잡고 나온 가족들도 많았지만 저 처럼 혼자 나온듯한 중년 부인들, 남자들도

제법 눈에 많이 뜨여 고소롭기도한 한편 위안이 되더군요.

실제로 그 날 연단에 서서 황우석 연구재개를 부르짖던 어떤 가정주부는 남편에게

장보러 간다고 해 놓고 여기 나왔다며 장보따리를 들어 보이기도 했죠



이쯤해서...그럼 넌 무슨 생각으로 촛불집회에 나갔느냐고 물으시겠지요?

마침 서프라이즈 노짱게시판에 집회에 나가 폐회가 될 때까지 촛불을 밝히고 섰던

제 마음을 읽은듯이 어느 분이 쓴 글이 있어 대신 합니다.



(이런 저를 보고 옛 노랑방 동지들...특히 영록님이 경악하시것 군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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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날, 광화문에 갔다.



등록 : 솔트 (sung4567) 조회 : 1033 점수 : 840 날짜 : 2006년1월16일 23시40분





난 명확하지 않았다. 난 황우석 박사가 사기꾼이든 결백자이든 명확히 판단이 된다는

분들이 신기했다. 솔직히 이 과정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기도 별로 쉽지 않을텐데

명확히 판단할 근거가 있음에 놀라웠다. 사실 그를 사기꾼이라고 쉽게 표현하는 분들에

대해 더 당혹스럽다. 까는 빠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지녀야 한다. 왜 그래야 하냐고 묻지

말자. 혹시 오늘 택시타면 기사님께 물어보라.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그냥 외우자.



명확히 판단을 하지 못함에도 발걸음은 광화문으로 향했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이 사건이 음모까지는 잘 모르겠고 일종의 공모가 있었음은 틀림없다는거다. 경험칙에

의해 공모가 얽힌 사건은 그들 공모자들의 의도대로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대처이자 올바른 사회적 정의라 생각했다. 그것이 내 유일한 확신이었다.



덧붙이면 게시판에서 황우석 지지에 대해 박수를 보태고 집회를 외면하는 행태도 내가

싫어하는 먹물들의 전용이 아니던가. 발걸음은 약간 더디고 약간 어색해하며 광화문을 향했다.



집회장에서 태극기를 나눠 주었다. 대나무에 달린 종이 태극기. 초딩 시절 전두환 부부

일가가 방문할 때(세번이던가)마다 열심히 흔들어대던 태극기와 모양이 같았고 조금

어색했다. 갑갑한 마음에 밤새 야근하고 기차를 타고 올라온 대구 서프앙을 만났다.

그 분을 꽉 움직이게 한 힘도 나처럼 사건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었기보다 우리 사회의

이중성에 대한 분노였을까.(부디 그 분의 사업이 더 번창하길 바랍니다.)



황우석 박사를 생각했다. 그는 애초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언론이 줄기세포 신화를

한참 만들 때, 난 그를 비웃곤 했다. 신문 쪼가리를 비웃었다. 마케팅 한번 거창하게

한다고 혀를 끌끌 차며 이 황망한 구라들이 언제까지 통할지 보겠다고 했다. 사람들이

노벨상에 왜 그렇게 목메는지도 이해하기 힘들고 모당이 H2O프로젝트란 황망한 계획을

발표할 때 그 절정을 이루었다. 그즈음 지인을 통해 오늘 오마이가 기사로 다룬 2000년

수업시간에 문제의 발언을 했다는 사실을 귀너머로 들었다. 좋게 보일리 만무했다.



또한 내가 젠장할 국부 33조에 대해 알게 뭔가. 더 논리적으로 접근하면 GDP와 국부에

대한 개념까지도 혼용하며 줄기세포 신화를 만드는데 여념없는 언론들을 보며 참 지랄

맞다고 생각했다. 한편 우리 역사상 거의 최초의 과학경영자의 탄생은 긍정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그랬던 내가 다소 어색한 태극기를 흔들기 위해 광화문에 섰다. 공모자들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길 바라며. 그 최선의 방법은 황우석 박사가 공모자들의 의도를 밝히도록

힘을 모아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전에 난 어느 때부터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기 시작한거 같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이미 엎어질 때가 되었음에도 그는 의지가 강했다. 기자의 질문에 헤어진 부인에

대해 이야기하며 순간 멈췄던 장면에서 그가 인간에 대한 예의가 무엇인지 안다고 느꼈다.

헛기침 하듯 내뱉은 불광불급 한마디에 화려해 보이면서도 사실은 외로운 그의 과거가

투영되었다. 화려한 아미가 호텔 일식 정찬장과 값 나가는 골프장에 가보시라.

정말 즐거워서 먹고 즐거워서 플레이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살기위해

그 자리에 서는 미약한 존재들이다.



시사저널에서 그를 까기 위해 올렸던 "100억대 재산가 황우석" 기사의 이면에 그가

연구자로서 훌륭한 마인드를 갖추었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미국의 타임지가 그를 표지 모델로 선정한 건 돈 33조의 가치를 때문이 아니다.

그의 꿈은 국경을 넘어 인류의 꿈이 아니었던가.



무엇보다 줄기세포가 대한민국의 기술임을 확인하게 될 것이며, 자신이 아니더라도

이 기술이 전수되도록 도와달라는 그의 절박한 호소를 보며, 혹자는 희대의 사기꾼의

모습이라며 비난하고 어떤 언론은 대한민국을 8번 연호했다며 비아냥거렸지만, 난 그의

말이 진실이라면 우리 비극적 역사가 끊임없이 반복했던 것처럼 모두가 해피하기 위해

하나는 죽임을 당하는걸 다시 목도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대한민국이 쓰러진 영웅의

절규 하나 품지 못하나.



한편 혹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의 말이 완전 거짓일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큰 나라다.

당신들에게 기쁨을 주었던 영웅에게 한번 속아주는게 뭐 그렇게 대수란 말인가.

황우석을 질시했던 나같은 이도 기다리며 그에게 힘을 실어준다.



이제 기다림을 넘어 그를 주저 앉히지 못해 안달난 이들과 언론들을 보며 과연 그들이

진실에 관심이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그 때로 부터 이틀이 지났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지금 난 그 자리에 나간게

더욱 다행이라 생각한다.







p.S 이 사건이 어떻게 결론나든, 마무리가 될 즈음 난 이런 글을 올리고 싶었다.



생명 공학 분야의 선구자는 황우석 박사다.(이미 증명된 것 아닌가. 시비걸지 마시라.)

혹시 그가 이 땅에 넘치고 넘치는 윤리교도와 진실이란 미명하에 광기어린 언론들에 의해

넘어지더라도,,,, 시간이 많이 흘러 내 자식이 내 핏줄이 생명 공학의 축복을 받는다면

황우석 박사님을 꼭 떠올리며 그 분이 선구자임을 말해줄 것이라고 남기고 싶었다.





-- 제가 토요일날 광화문에 나가 촛불 밝히던 심정을 더 간단히 요약하라면

(물론 경우는 같지 않지만) 탄핵 당시와 같이 <이럴 수는 없다>는 마음에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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