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글을 함께 읽고 싶어서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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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는 이라크를 소련치하 동유럽처럼 만들려 해"
새해 인터뷰 노엄 촘스키
“자체정부 세워 미군은 빼내고 종속국화
중동 연대·아시아 블록, 미국에겐 악몽”
▲ 미 보스턴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의 언어학과 교수연구실에서 만난 노엄 촘스키 교수는 70대 후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질문 하나하나에 자신의 혜안과 열정을 듬뿍 실어 답변했다. 비서가 보여준 그의 일정은 시간 단위로 빼곡이 채워져 있었다.
겨울비가 내리던 지난 12월 하순 아침, 미 보스턴 매사추세츠공과대학의 언어학과 교수연구실을 들어서는 노엄 촘스키는 77살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우선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지난 10월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와 영국 시사잡지 <프로스펙트>가 공동으로 실시한 ‘세계 최고의 지성은 누구인가’를 뽑는 인터넷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로 1위로 오른 점을 얘기한 것이다. 그는 “그런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70대 후반 나이에도 불구하고 비서가 보여준 그의 일정은 시간 단위로 빼곡이 채워져 있었다. 수많은 인터뷰와 기고, 강연, 화상대화에 응하는 게 요즘 그의 일상의 거의 전부인 듯 했다. 제한된 시간 속에 그와의 대화는 지금 미국의 최대 현안인 이라크 문제에 집중됐다. 그러나 그의 답변은 역사와 지역을 넘나들며 막힘 없이 풀려나왔다. 북한에 대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당신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줄곧 반대해왔다. 미국이 침공 명분으로 든 것은 대량살상무기 제거였는데 이것은 거짓말로 드러났다. 개전 3년이 가까워오는 지금, 조지 부시 행정부는 무엇 때문에 이라크에 저렇게 매달리고 있다고 보나.
=그 문제에서 서구 견해는 이라크 민주화라는 측면에 너무 편향돼 있다. 경직된 원칙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에서 서구는 북한과 흡사하다. 요즘 서구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은 이라크 침공이유에 관심을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이라크가 인도양에 떠있는 섬나라였거나, 상추나 오이를 생산하는 나라였더라도 침공했을까. 이걸 벌써 잊고 있다. 침공을 합리화하려는 광기는 뉴욕과 보스턴, 런던과 베를린, 파리 어디서나 맞닥뜨릴 수 있다.
머리 세포의 한부분만이라도 제대로 작동하는 사람이라면, 이라크가 세계에서 석유 매장량이 두번째로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침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라크는 세계의 가장 중요한 석유 생산지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미국에선 아무도 이런 얘기를 하려 하지 않는다. 그 점을 지적하면, “그건 음모이론이다”란 소리를 듣기 쉽다. 미국은 그런 점에서 북한과 매우 닮았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세계 에너지 공급체계에 대한 장악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라크는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하다. 이라크는 세계에서 아직 석유자원이 풍부하게 남아 있는 거의 유일한 지역이다. 아마 거의 사우디아라비아에 비견될 것이다. 그리고 석유 생산지역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만약 미국이 이라크 통제를 유지한다면 그것은 전세계 에너지를 통제할 수 잇는 지렛대를 갖는 것이다. 이라크를 지배하는 건 미국이 중국과 같은 경쟁자나 유럽의 동맹국들에 비해 매우 중요한 지렛대를 갖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순히 이라크에 접근한다는 것보다 지배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지금과지 과정을 통해서, 미국은 이라크와, 더 나아가 중동의 에너지 자원을 지배하기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 점이 우리에게, 미국이 왜 그렇게 이라크 민주주의를 반대해왔는지를 설명해준다.
지난 12월 이라크에선 총선이 실시됐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이것을 이라크 민주주의의 진일보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명분이야 어떻든 이라크 민주주의 진전은 미국과 이라크 양쪽에 모두 이득이 아닐까.
=이라크 총선은 조지 부시 대통령으로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대중적 저항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 때문이다. 부시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이라크의 이런 정치과정을 피하려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결국 선거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선거를 허용했기에 다음 과제는 이라크를 중앙아메리카 나라들이나 과거 소련 치하의 동유럽처럼 만드는 일이다. 아니면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치하의 유럽에 비유하는 게 더 적절할 지 모른다. 이 나라들은 모두 자치권을 갖고 있었다. 자기 군대를 갖고 있었고 치안을 스스로 유지했다. 주권이 있었다. 그러나 제국주의가 그 뒤에서 이들을 떠받치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가령 옛 소련 시절의 동유럽을 보자.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국내적으로 스스로를 통치했고 이것은 중앙아메리카 많은 나라들이 하는 방식과 흡사하다. 대영제국 시절에 인도 역시 자치권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전형적인 식민지 형태다. 우리는 이제 자립적이고 주권을 갖고 있고 어느 정도 민주화된 이라크를 상상할 수 있다. 꽤 그럴 듯하긴 하다.
이라크 민주주의 진전에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그 과정과 결과에 대해선 여러 다양한 분선과 전망이 나온다. 당신이 말한 대로, 미국이 진정 그런 민주화를 원하는지도 불확실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라크의 미래 모습은 어떤 건가?
=만약 이라크가 완전히 민주화되지 않는다면, 이라크는 이슬람 시아 다수파에 의해 통치될 것이다. 이슬람 시아파는 이란과 더 좋은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 사실상 그들은 지금도 이란과 그런 관계에 있다. 우리는 앞으로 이란과 이라크의 지속적인 연결을 예상할 수 있다. 더구나 이라크 국경 바로 옆으론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다. 이곳에도 역시 시아파들이 있다. 자, 이제 여기서 상상할 수 있는 건 미국에겐 끔찍한 악몽이 될 것이다. 이란과 이라크와 북동부 사우디아라비아 시아파의 연대가 그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석유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지역이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스스로 서는 것이다.
미국에 더욱 우려스런 일은, 이 지역이 이미 점점 더 동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자기들만의 블럭을 형성하려 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그렇고 여기에 인도와 한국, 일본까지 포함될 수 있다. 이런 블럭이 형성되면 그건 매우 강력한 경제·군사적 공동체가 될 것이다. 아시아 지역은 에너지 자원의 공급로를 보유한, 매우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이다. 나는 이란이 이 동쪽 블럭에 경도되기 매우 쉬울 것으로 본다. 이란은 미국에 정나미가 떨어졌을 수 있다. 또 유럽을 미국 압력에 굴복하는 겁장이로 볼 수 있다. 이란은 “그렇다면 좋다. 우리는 아시아 에너지 안보블럭에 가담하겠다”고 나올 수 있다. 이것이 현실화한다면 어디 이란 뿐이겠는가. 그것은 곧 시아파 연대, 곧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까지 그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이것은 미래엔 아시아 블럭이 석유를 통제하리란 걸 뜻한다.
그렇게 되면 미국의 이라크정책은 완전한 실패가 될텐데, 부시 행정부로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부시 행정부가 바라는 이라크에서의 현실적인 정책목표는 무엇이라고 보나. 그것은 달성될 수 있을까.
=우리가 과거를 좀 돌아본다면, 18세기에 세계 상업과 산업, 교역의 중심은 중국과 인도였다. 북서유럽은 미개한 지역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우연찮게 군사력과 야만성에서 강점을 갖고 있었고 세계를 정복했다. 역사적 사건은 언제나 비슷한 형태를 반복한다. 지금 이라크가 자주적이고 주권을 갖고 민주적 발전을 거듭해 나간다면, 이것은 미국에겐 끔찍한 결과가 될 수 있다. 이라크에서의 실패는 곧 미국에겐 세계 지배권의 상실로 귀결될 수 있다. 이제 이런 문제를 미국내에선 제기할 수 없다. 서구의 지식인들은 너무 깊게 기존관념에 사로잡혀 있고, 이런 문제는 제기조차되지 않는다.
사실 미국에서 이라크 민주주의를 논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민주주의란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체제를 뜻한다. 지금 이라크국민의 절대 다수는 점령군이 떠나기를 원하고 있다. 영국 국방부 여론조사를 보면, 80% 이상이 점령군의 철수를 원한다. 그리고 거의 절반이 이라크 침공은 불법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도 부시와 블레어는 단지 “이라크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지킬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것이 미국이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이건 마치 (냉전시대에) 소련이 동유럽의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주둔시켰던 것과 같다. 소련 역시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불렀다.
지금 부시와 블레어는 선거(12월 이라크 총선)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라크를 종속국으로 확실하게 묶어두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병력을 이라크에 주둔시키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옛 소련 역시 동유럽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싶어하지 않았다. 2차대전 때 독일 역시 프랑스에 병력을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제국주의 국가도 군대를 다른 나라에 주둔시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가능하다면 그 지역의 자체정부가 수립되기를 바란다. 이것이 지금 이라크에서 미국이 원하는 바다. 미국이 원하는 건, 옛 소련 시절의 폴란드를 이라크에 건설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미군을 이라크에서 빼낼 수 있다. 이것이 부시 행정부의 궁극적 목표라고 본다.
이라크 침공과 관련해 가장 극적인 사실 중 하나는 이것이 역사상 가장 재앙스런 군사전술의 하나라는 점이다. 어디에도 이런 사례가 없었다. 이라크처럼 손쉬운 군사적 목표도 없었을텐데, 미국은 이라크를 거의 완전히 파괴했다. 이라크는 세계에서 가장 약한 나라 중 하나였다. 겨우 생존해가고 있었을 뿐이다. 이미 전쟁을 겪었고, 십여년간의 (유엔) 제재를 통해 어떤 대량살상무기에 의해서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것은 이라크 사회를 파괴했고 사담 후세인 체제를 강화시켰고 사회 전체가 생존을 위해 더욱 후세인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이런 면에서 두가지 야수적인 체제, 곧 사담 후세인 체제와 (유엔) 제재라는 두개의 체제를 제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은 저항에 창조해냈다. 이라크는 침공 전보다 훨씬 더 많이 파괴됐다. 취재에 너무 많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그 실상이 제대로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을 뿐이다. 서구에선 이런 얘기를 자유롭게 토론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북한처럼 서구의 사람들도 세뇌되어 있다.
부시 정권의 이라크 정책은 미 의회에서 초당적 지지를 받았다. 또 요즘 보면 리크게이트를 비롯한 각종 부패사건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견제와 균형’은 없고 당파적 싸움과 휩쓸리기, 무관심만 커지는 것 같다. 일부에선 1970년대 초 워터게이트 사건 직후를 연상시킨다고 말한다. 세게에서 가장 세련됐다는 미국의 정치시스템에 근본적 문제가 있는 것인가.
=미국 정치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단지 존재할 뿐이라는 점이다. 지금 조지 부시 행정부는 잇따라 재앙을 만났다. 누구나 부시 행정부가 재앙에 직면해 있다는 걸 부인하지 않는다. 이라크는 더욱 나빠지고 부패 스캔들은 계속 터지고 있다. 매일 공화당에 타격을 주는 일들이 벌어진다. 만약 미국에 야당이 있다면, 이것은 야당에겐 매우 유리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공화당은 지지기반이 무너진다고 아우성치지만, 민주당이 얻는 건 없다. 민주당이 얻는 유일한 이득은 공화당이 쓰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 이유는 민주당이 더이상 진정한 야당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공화당과 같은 정강정책을 가진, 기업들과 가까운 또다른 정당에 불과하다. 그러니 민주당이 이라크정책 실패를 말할 때 부시가 “당신들도 전쟁을 지지했다”고 대꾸해도 별로 할 말이 없다. 진정한 야당이 없다는 게 미국 정치시스템을 약화시키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다.
민주주의란 국민 의견을 정치에 수렴하는 제도다. 미국은 제도적 측면에서 그런 점이 잘 이뤄져 있을 것 같은데 왜 작동하지 않는가.
=가령 미국은 세계의 선진국 가운데 가장 비효율적인 의료 시스템을 갖고 있는 나라 중 하나다. 의료비가 계속 치솟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민영 체제이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의료보험을 공영 체제로 바꾸길 바라지만, 이 문제는 정당의 정강정책에 올라가지도 않는다. 의료와 보험업계에서 그걸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진정한 정치시스템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걸 보여준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정치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건 허상일 뿐이다. 미국은 실패한 국가다. 미국은 제도화된 정치제도를 갖고 있지만 그건 작동하지 않는다. 공공정책을 수립하는 데 여론은 반영되지 않는다. 더욱 큰 문제는 국민들이 그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2월에 미 행정부는 (다음 회계년도의) 예산규모와 항목을 공개한다. 지난해엔 미국의 유수한 전문기관들이 이 예산안을 분석해 3월에 자료를 내놓았다. 그 결과는 놀랍다. 국민들이 증액을 원한 항목들은 예산이 삭감되고, 예산이 삭감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은 증액됐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사회보장 부문과 의료보험, 평화유지 비용 등은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대답이 다수다. 제대로 된 정치체제 아래서라면 예산안을 둘러싼 이런 모순이 신문 1면에 보도되어야 하는데, 이런 문제를 1면에 보도하는 신문은 한곳도 없다. 대중은 이런 정보를 접할 기회도 박탈당하고 있다.
국민들의 바람을 정치에 반영하기 위해 선거라는 제도가 있는 게 아닌가.
=물론 우리는 선거라는 제도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선거란 게 텔레비전에서 광고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마치 치약 광고를 보면서 어느 치약을 살까 망설이듯, 미국 선거는 유권자들을 현혹한다. 광고는 시장을 약화시킨다. 시장은 정상적 판단능력을 가진, 정보를 제대로 아는 소비자들에 기반해야 한다. 그러나 광고는 소비자들을 현혹시켜 비이성적인 판단을 하도록 한다. 선거 후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기 입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유권자들에게 주기 보다는, 이미지만을 형성하려 한다. 전체 유권자의 10% 정도만이 그 후보가 주요 현안에 어떤 입장인지를 안다. 이것이 미국의 정치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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