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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랑은 분석의 방향이 다소 다르시긴 하지만,
또한 일리있고, 시각의 큰 틀을 비롯한 상당한 부분이 공감이 가서 옮겨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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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이 끝난지 200년이 넘도록 좌파니 우파니 하는 구분이 계속되는 이유는 사회가 본능적이라고 할 만큼 좌측 성향과 우측 성향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집합적 성향의 충돌을 끊임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최근 불거진 황우석 논란 역시 이런 좌우의 구분법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 애당초 자연과학계의 사건이었던 이 사건은 이제 사회과학사의 중대 사건이 되어버렸다.
내 생각으로는 2005년 겨울의 황우석 사건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전형적인 우파의 성립을 보여주고 있다. 즉 그동안 사회여론의 밑바닥에서 꾸준히 성장해온 한국우파의 대중적 성립이 이제 가시화 된 것이다.
사실 황우석 교수가 지금까지 오락가락했던 얘기들과 앞으로 오락가락할 얘기들을 모아보면 사건의 본질은 쉽게 정리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황우석 코드는 찌그러지기는 커녕 더욱 맹위를 떨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처음에 네티즌에게도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해석했다. 사실 아무리 얼굴없이 말만 과격하게 하는 속성의 네티즌 이라해도 자기가 이전에 취했던 입장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기에 아무리 상황이 180도 바뀐다해도 얼굴을 금방 바꾸진 못하는, 이른바 자기 일관성의 원리가 작동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볼 때 황우석 파문은 쉽게 사그라들 수 없는 근본적인 동력을 내장하고 있었다. 황우석 파문은 한국 우파의 성립기에 있어 우파의 중요한 코드를 모두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선 황우석 코드는 전체주의를 내장하고 있다. '황우석 코드를 지지하는 네티즌들' (이하 '황지네'라함)은 국익이니 미국과의 경쟁이니 하는 말들을 많이 한다. 종종 이 모든 것이 섀튼의 음모라는 주장도 펼친다. 반대파에 대해선 매국노라는 규정이 가해진다.
즉 황우석 열풍의 이면에는 국가 혹은 민족의 이익을 지켜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세계관이 전제되어있다. 황지네는 자발적 국가주의자의 집결체인 셈이다.
황우석교수가 황지네로 부터 존경받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미국이 했던 거액의 스카웃 제의를 거부했다는 점에 있다.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이 황우석 교수는 '과학에 국경은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라는 말을 했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던 마르크스의 어법을 대비시켜 연상케 하는 이말은 한마디로 불타는 우파의 심장에 기름을 부었다.
둘째 황우석 코드는 과정 보다는 목표를 중시여긴다. 이 역시 우파의 코드다. 황지네는 분명 "논문이 가짜라고 명백히 밝혀지더라도 ...!" 황우석을 지지할 것이 틀림없다. 중요한 것은 일단 그가 우리나라의 국가대표 선수라는 것이고 경쟁국을 이기려면 무조건 그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생명과학 부분에 대해 이 나라가 이 정도 사회적 관심과 투자가 실현된 사실 그 자체가 황우석 덕분이다.
여기에 논란의 과정에서 보여준 대단한 단결력과 눈꼽만큼의 내부 비판도 인정하지 않기 위해 광풍처럼 몰려다니는 고유한 행태도 우파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원래 우파는 논리 보다는 조직력을 중시여기기 때문에 이렇게 전체의 이익을 향한 성스러운 전진로 앞에서 딴소리 내는 꼴을 보지못한다. 결국 소수의견은 왕무시당하고 내부 비판에는 테러가 가해진다.
세째 황우석 코드는 전형적인 생산력 중심주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우파에게 생명윤리는 사실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일단 경쟁국들에 비해 뭔가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생산력 만능주의는 이른바 성장주의 세계관의 일환으로써 이 또한 좌파보다는 우파가 중시여기는 가치중 하나이다.
결국 이번 파문은 월드컵이후 가장 심하게 축구장 밖으로 튀어나온 민족주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황우석 파문이 폭발한 날을 일컬어 "한국과학계의 국치일"이라고 했지만 내가볼 땐 이 사건은 오히려 한국 사회의 성숙한 자기수정 능력을 보여준 측면이 크다. (인터넷이 황우석 열풍을 만들었지만 그 과학적 한계를 들춰낸 것도 '익명'이라는 아이디의 인터넷이었다.)
오히려 이 사건의 실제 역사적 의미는 정치적인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나중에 정치사의 분기점을 그릴때 한국우파의 대중적 성립 시점으로 오늘의 이 대목을 지목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세가지 코드가 본격적으로 제출된 시점이 곧 황우석 코드가 노출된 시점이며 그 시점이 바로 한국우파의 대중적 성립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잠재적으로 (꼭 황우석이 필요했다기 보다는) 무엇인가 새로운 우파의 아이콘을 열망해왔다. 그것이 황우석코드로 나타났을 뿐이다.
따라서 이제 황우석을 통해 드러난 이상 몇가지 우파의 기본코드는 사회전체적으로 장기에 걸쳐 작동할 것이다. 이 사회의 보이지 않는 우측 성향은 향후 매우 다양한 소재를 갖고 수시로 집결할 것이다. 한마디로 우파의 줄기세포가 만들어진 것이다.
황우석교수는 환자맞춤형 배아줄기세포의 복제는 몰라도 사회적으로 한국우파의 줄기세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자연과학 사건이 아니라 사회과학 사건이다.
나는 이 과정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 혹은 사회의식의 변화 발전 과정은 지배적 정치지형의 교체 과정과 긴밀하게 연관되어있다. 영남과 호남의 대립이라는 전근대적 지역대립구도에 갇혀있던 우리사회가 이제 본격적으로 좌우를 정립하고 서로간의 적절한 모순과 충돌을 통해 서로를 상호 정착시켜나가는 정치적 근대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물론 또 한편으로 이 사건은 한국우파의 불행한 탄생을 보여주기도 한다. 잘한부분과 잘못한 부분을 가려서 보는 분석적 대응 이전에 불필요한 감정 노출과 오사마빈라덴을 연상시키는 막말테러로 점철 되었던 2005년 겨울, 우파의 탄생은 향후 황우석 신드롬의 단계적 침몰과 함께 우파의 성장에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파는 줄기세포의 탄생 컨셉을 잘못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