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렇게 흘러가리라 애초부터 짐작했더랬습니다.
물론, 나름대로 분별력있고 개혁적이라 자부하는 분들조차 밑도끝도 없는 종교적 애국심에 함몰되어 있다는 것을 폭로시킨 점이 이번 사태가 까발겨 준 의의라고 평가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사태가 급반전되면서 대개의 '나름대로 분별력있고 개혁적이라 자부하는 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스스로에게 경악하면서 태도를 바꿨습니다. 아래에서도 말씀하신 서프라이즈나 딴지 등은 말아먹고 있긴 하지만(이것도 다 분석이 가능하리라 봅니다)...
지금까지 남아서 무대포로 일관하는 아직도 엄청나게 많은 분들,,,
저는, 2천년대 들어 급속화된 한국 사회의 보수화 풍조와도 맥이 통한다고 봅니다.
얼마 전, 문화일보던가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가운데 어느 게 중요하냐는, 도대체 말도 되지 않는 설문을 했었지요(문화일보가 조중동 뺨치는 건 다들 아실테고). 그런데 더 대경실색할 노릇은, 경제발전이 더 중요하다는 응답이 85%였다는 거죠.
이같은 맥락을 놓고 볼 때 작금의 한국 사회에 있어 보수화란 결국 천민자본주의와 물신풍조에 기반한 천박함으로의 함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께 저녁에도 모 게시판 어떤 분께서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재벌의 무사평안함을 걱정해 주는, 참 희한한 나라다"라고 비꼬셨던데, 소수의 깨인 분들의 투쟁의 결과인 민주화로 예전의 권위는 무너지고, 사람들은 그 민주화의 성과에 무임승차하고 예전보다 풍요해진 물질적 환경을 누리면서 이제는 시민 스스로가 과거 기득권(정치권력)의 후예인 자본권력(삼성으로 대표되는)을 자신들의 지상의 가치로 섬기게 되었고, 시민 스스로 독재자로 옹립하는 물신주의에 빠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시민에 의한 자발적 파시즘이지요.
맑스도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했더랬습니다만, ㅎㅎ, 경제적 가치보다 상부구조에 놓이는 가치들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수구보수의 경제적 가치관인 물신숭배의 천민자본주의를 신봉하게 되면 정치사회적 가치인, 기득권 체제에 이의를 제기하는 성가신 존재들을 입막음하는 데 가장 좋은 도구인 '반공'이라는 전가의 보도 또한 다시금 설득력을 얻어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 것이고, 게다가 그동안 세뇌되어 온, 그리고 우리나라의 여건상 갖게 된 주입된 애국심 내지 감정적 민족주의 등등도 다 따라오게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민 스스로 과거 기득권의 연장선상에 놓이는 자본권력을 추종하며, 기득권의 방어 논리인 '빨갱이, 친북좌파'등의 모함에 귀가 솔깃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경제 제일주의의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서, 이에 훼방을 놓는(실제로 그렇다는 게 아니라 대중들과 그들에게 주술을 거는 자본, 권력들이 그렇게 느낀다는 거지요) 비주류적 사회구성원들에 대하여 개혁이라는 이름 대신 좌파 딱지로 말빨을 죽여 버리니 기존 기득권의 후예인 현재의 기득권의 입장에서는 참 편리하고, 과거부터 세뇌되어 온 다수 대중들이 듣기에도 귀에 착착 감길 겁니다.
반면, 이른바 진보개혁 쪽에 서 계신 분들 가운데서도 너무나 당연히! 황씨의 편에 서게 된 분들의 경우는, 민족주의라는 가치를 놓고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민족주의는 우리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고, 민주세력들의 가장 큰 정신적 토대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사회적 민주화와 더불어 다수 대중들에게 가장 큰 설득력을 갖고 파급된 이념이기도 합니다. 한편 민족주의는 보수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지요(우리나라 보수주의의 반민족적 특수성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결국 그 민족주의적 에너지가 황씨라는 사람 하나를 밀어주는 데 집중되어 도덕도, 사회적 책임과 합의도 다 필요없다는 천민자본주의와 결탁하여 결과적으로 반민주적이고 반민족적인 자본권력과 기득권 세력들의 지배적 입지만 공고하게 해 주는 최악의 악순환(이런 아이러니가 없지요)을 유발하고 만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황씨 스캔들은 민주화에 무임승차한 다수 대중들과, 그리고 민주세력 가운데 얼마간의 분들이 스스로 그 민주화를 기반으로 과거 독재자의 후신인 자본권력을 옹립한 경악스런 모습을 까발긴 단적인 사례로 역사에 길이 남으리라 생각합니다.
즉, 민주화는 절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과거의 투쟁 대상보다 더한 '우리 안의 적'의 정체가 이번에 확연히 드러났다고 저는 평가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한나라당과 조선일보는 승승장구할 것이며 MBC를 비롯한 곧은 소리를 하는 언론은 시민 스스로에 의해 냉대받을 것입니다. 생각하기 귀찮아하고 알기 싫어하는 사람들(아마 대부분인 듯 하군요-.-)은 자기 듣고 싶은 말만 듣습니다. 저질상업언론들은 앞으로도 잘 팔릴 겁니다.
정론을 펴려는 언론, 정의와 공동선을 위해 일하려는 사람들은 앞으로 단단히 마음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과거 독재정권 시절보다 더 험난할 듯 싶습니다.. 너무 비관적으로 보는 의견일지 모르겠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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