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학을 운영하는 개신교·가톨릭 등 종교계 지도자들이 개방형 이사제가 이들 종교 사학의 건학 이념 구현을 막을 것이라며 개정 사립학교법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속에서 불교계가 개정 법을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고 강경한 반대 목소리 일색인 가톨릭과 개신교 안에서도 개정 사학법을 지지하는 차분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건학 이념 무너지나?=교육계에선 ‘건학 이념 구현 곤란’ 주장은 개방형 이사의 추천·선임 방법을 대통령령에 따라 학교법인 정관에서 정하도록 돼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한다. 정관 변경 요건도 까다롭다.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4분의 1인 개방형 이사로는 정관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는 종교계 등 의견을 수렴해 설립 목적에 어긋나지 않는 인사들이 (이사로) 선임될 수 있도록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종교 사학법인들의 개정 사학법에 대한 거부감은 초·중·고 교육이 보통교육화하면서 종교교육 비중이 줄어드는 것에 대한 반감의 표출로 보인다. 서울의 한 종교사학 교사는 “종교학교는 교육을 통한 선교가 목적인데, 지난해 종교의 자유 문제를 제기했던 대광고 강의석군의 경우가 또 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다”고 말했다.
현장 교사는 찬성론 많아=현장 교사들 사이에선 찬성론이 많다. 종교사학의 한 교사는 “사학법 반대 의견은 재단 이사장 등 관리자층의 반발이지 대부분의 종교사학 교사를 비롯해 대다수 관계자가 환영할 것”이라며 사학 이사장들의 황제적 권력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울 ㅇ여고의 한 교사도 “개정 사학법이 미진한 점도 많지만 일단 친인척 족벌로 학교장, 행정실장을 다 장악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학교 예산 운용의 투명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한 종교사학의 교사는 “제대로 된 사학도 있지만, 이사장 전횡 등으로 교장·교감은 들러리만 서고 학교 운영을 독단적으로 하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사학법 개정으로 그간 간간이 불거졌던 급식비·앨범비 횡령 의혹이나 교사 임용 과정의 금품수수 의혹 같은 문제가 없어지고 직접 교육활동에 쓰이는 예산이 늘어나 교사들은 환영하는 사람이 많다”고 덧붙였다.
종교 사학이라 해서 비리의 무풍지대는 아니다. 최근 한 신학대학에서는 ‘학위 장사’가 문제가 됐다. ㄱ여대에서는 회계비리 의혹 등으로 학내분규가 발생해 정부 감사 뒤 임시이사가 파견되기도 했다. 또 한 종교사학은 재단 쪽이 급식·앨범비를 횡령했다고 양심선언을 했던 재산관리인이 그 뒤 사망해 논란을 빚었다.
이 때문에 지난달 30일에는 종교사학에 근무하는 교사들이 전국 140여 종교계열 학교 교사 대표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사학법 개정을 가로막는 일부 종교인의 행동에 반대’하는 선언을 하기도 했다. 기독교 106개교, 천주교 28개교, 불교 5개교, 대순진리교 1개교, 원불교 1개교가 참여했다.
가톨릭·개신교, “강경파만 있는 게 아니다”=가톨릭과 개신교 일부에서 강경한 반대 목소리가 교단 전체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공동의장인 이근복 목사는 “사학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직전에 4대 종단 관계자들이 국회를 찾아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며 “사학법 개정안에 찬성하는 목소리도 교단 안에 있지만 부각되고 있지 않을 뿐”이라고 말했다.
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인 황필규 목사는 “사학 운영자들은 사학법이 태어날 수밖에 없었던 배경, 즉 비리와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노력해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소속 목사들과 실천불교승가회 소속 스님들, 원불교 사회개벽교무단 관계자들은 국회를 찾아 열린우리당 관계자 등을 면담하고 사학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불교계, 사학법 지지 선회 움직임=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은 15일 오전 개정 사학법에 대한 협조를 부탁하기 위해 조계사를 찾은 김진표 교육부총리에게 “개정 사립학교법이 통과된 만큼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가 전했다. 지관 스님은 이 자리에서 “법이 통과됐으니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는 사회 통합을 위해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 한 신문에는 내가 (사학법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는데 그런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허미경 이순혁 기자 carme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