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부분에서 공감이 가는 의견입니다만, 몇 가지 異見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게시물 아래의 댓글 중 진현호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또한 제목의 "달도 차면 기우나? 하는 표현은 완전히 잘못된 비유라고 봅니다.
관련하여 제 의견을 좀 더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황교수의 연구에 대하여 정부는 제도/재정 양 차원에서 아주 큰 지원을 했으니
분명 문제삼을 수 있고 따질 것은 따지고 넘어갈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정치 엘리트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황교수의 비양심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황교수는 2005년 여름이 되어서야 겨우 관련 전공자들, 즉 생명공학 전문가들로부터
의혹과 비판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에 말입니다.
저는, 개혁적이든 아니든 정부관료나 국회의원 등 모든 정치 엘리트들이 이번 일을
생명윤리에 대한 자신들의 낡은 사고를 일대 혁신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대통령이나 정부에 책임을 따지더라도 문제삼을 것과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을
확실하게 가름하고 나서 "구체적으로" 문제삼고 책임을 따져야 한다고 봅니다.
보수적인 사람이든 진보적인 사람이든 이번 일을 두고도 또 "노통 탓" 해버린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의 모든 선진국들로부터 정치적으로까지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겁니다.
웃음거리가 되기 때문에 대통령과 정부를 문제삼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잘못 문제삼는 것이기 때문에 웃으거리가 될 수 있으니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번 일을 두고 좃선일보가 얼마나 말을 반대로 뒤집고 있는지는 이미 보셨을 겁니다.
지난 봄에는 정부가 황우석을 거의 지원하지 않는다고 썼던 조선일보가
사태가 이 지경이 되니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고 쓴 기사 비교를 말입니다.
이번 건도 정부탓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근본적으로는 다 정부탓입니다그려.
이런 모습에 관한 한, 수구나 진보세력중 일부나 별반 다를 게 없어보이는군요.
게다가 공공기관의 정치 엘리트들은 순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서만 행동하고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다면 그것이 오히려 문제입니다.
행정 관료든 선출된 대변인인 국회원이든, 정치 엘리트들은 개인적 성향과 함께
"정치적 고려"를 동시에 토대로 하여 판단을 내리고 정책결정에 관여합니다.
그리고 그것이이먈로 바로 공공기관의 관료나 정치인의 바람직한 존재 방식입니다.
특히 선출된 공무원은 개인적인 신념을 대중들에게 이렇다고 보여주고 나서
그것으로 얻은 지지를 기반으로 하여 공적인 결정에 참여하는 "대변인"입니다.
그들의 정치적 고려에는 각계 전문가들과 일반 여론 추이가 당연히 포함됩니다.
여론을 만들어서 퍼뜨리기도 하고 존재하는 여론을 반영하기도 하고 그렇지요.
따라서 정치가는 자연과학 중에서도 세부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대하여
전문가적 수준의 지식과 판단능력을 직접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어떤 정치인에게도 필수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플라톤의 철인정치론을 기대하거나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현대민주주의에서 정치는 바로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 중에서 의지가 더 강하고
관련 자원/정보를 보다 잘 동원/판단할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사람들이 합니다.
100%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그것이 정상적인 민주국가에서 정치의 본 모습입니다.
따라서 정치 엘리트들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올바로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무가 있다기보다는 존재하는 인적/정보적 자원들, 즉 전문가들을 얼마나 잘
활용하여 양심에 따라 올바른 방향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들은 개인임과 동시에 대변인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공인"이라 부릅니다.
좀 다른 이야기를 덧붙이겠습니다.
지지난주던가? 그렇습니다. PD수첩 사과와 관련하여 언론의 문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공익광고 비슷한 방송을 하는 것을 EBS에서 보았습니다. 완전히 넌센스였습니다.
국민들이 황우석을 그렇게 우상시하게 된 것이나 MBC가 사과를 하게 된 것이나
모두 언론이 잘못한 탓이라는 것이 요지였는데, 거기까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EBS 역시 황우석을 국민영웅시하는 공익광고 비슷한 방송을 실컷 해놓고는
MBC의 사과를 두고 자신들은 거기에서 예외인 양, 남의 일처럼 방송을 하더군요.
이게 그나마 수준있는 방송이라는 EBS의 현 주소입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더 우스웠던 것은 그 언론의 반성이 필요하다는 방송 직후에 나온 공익광고입니다.
박지성을 대한민국의 국민 우상으로 묘사한 공익광고를 내보내더군요.
얼마나 모순적이던지... 황우석이 박지성으로 바뀐 것 말고는 똑같습니다.
EBS는 가능한 한 높은 수준의 사회문화적 교양과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즉
비교적 건전한 학부모들이나 젊은 세대가 많이 보는 교양 채널입니다.
그런 채널이 시청율에 의존하는 여타의 방송과 전혀 다를 바 없는 공익광고를...
바로 이것이 그나마 우리나라에서 좀 노력한다는 사람들이나 집단의 수준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은 이것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고민을 이런 차원으로까지 보다 끌어올려서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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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1) 우리는 바로 "자본주의체제"에서 "대중민주주의"를 가지고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을 가하고
대중민주주의의 한계와 보완책 등을 고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P.S.2) 물론 저 개인적으로는 이번 사태와 무관하게 아주 오래 전부터 유전자변형식품이나
체세포복제나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 등에 대해 기본적으로 매우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황우석 교수 등의 연구에 대해서도 과학적 연구로서의 가치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난치병의 극복에 이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식의 긍정적인 장밋빛 기대의 한편에는
그 과정과 결과에 있어 인간 생명윤리 등에 심각하게 배치되는 문제가 엄존하고 있으며
즉, 앞으로도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성과가 좋다 하더라도
곧바로 장미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란 점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 분야에 대하여 더 많이 알아갈수록 긍정적인 기대보다는 회의나 비판이 더 커집니다.
저는 비록 무신론자지만 자연과 생명에 관해서는 인간이 함부로 다뤄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즉, 인간의 생명과 자연현상은 오만한 인간이 함부로 손대면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신(神)만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점을 아주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는 종교나 인문학, 사회과학 등은 인간 공동체의 안정적인 지속을 위한 윤리적 판단준거를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에, 앞으로 그 역할이 더 강조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어떤 대선배님(해외 거주 목사님이십니다.)의 한국 기독교 비판이 떠오릅니다.
"우리나라 교회의 설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낡은 유교적 통념을 기독교의 이름으로 반복하는,
다시 말해서 보수적인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하느님 팔아 인습을 지속하자는..."
불교도 크게 다를 바 없을 겁니다. 물론 모든 종교인/신앙인들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우리 국민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하여 보다 높은 윤리의식과 이성적 판단력을 갖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과학도 그만큼 높은 윤리적 수준에서 보다 훌륭한 성과를 내리라고 봅니다.
수준높은 국민들이 많이 있어야 과학도 정치도 그 수준이 높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러워 하고자 한다면, 뛰어난 정치인, 과학자가 나타나서
올바른 정치를 실현시켜 주고 국익을 실현시켜 주리라는 기대만 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 개개인이 스스로 높은 이성적 교양 수준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고
또한 보다 높은 윤리적인 기준을 세워놓고 추구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모든 국민들이 영웅의 수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아닌 영웅에게만 기대는 것은...
예컨대 미국으로 건너간 박찬호가 몇 승을 거두는 것은 동족으로서는 큰 즐거움이지만,
그것이 우리 국민들의 능력이 뛰어남을 보증해주는 징표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박찬호의 승패는 어디까지나 박찬호라는 개인의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제가 이같은 비유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충분히 이해하시리라 봅니다.
내 친구가 뛰어나면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자신이 뛰어나고 수준이 높은 것이 더 좋겠지요.
국익이라는 가치가 내세워지면 윤리나 인권 등의 다른 가치들은 가볍게 밀려나버리는 일도
앞으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경제력은 선진국의 필요조건 중 하나일 뿐입니다.
물질적 발전은 그에 상응하는 질 높은 정신적 가치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오히려 해악이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증명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일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앞으로 크게 진전되어 뜻밖의 인체에 대한 부작용 등의 생물학적
난제들까지 극복될 정도로 그 성과가 일반화된다고 하더라도, 최근 우리사회의 대중들이
가볍게 휩쓸리는 모습에서 확인된 것처럼 낮은 윤리의식이 만연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난치병 극복 등 선한 목적에 제한되지 못하고 인간욕망에 의한 악용사례가 범람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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