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의 세계에서 기술의 진화에 가장 열성적인 브랜드를 손꼽아보면 포칼은 항상 순위권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는 제조사라 할 수 있다.
베릴륨과 유리섬유의 복합물질을 유닛의 소재로 채택한 과감성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포커스 타이밍을 위해 적용한 아방가르드 한 스피커 캐비닛의 디자인을 통해 예술적인 미적 감각을 보여준다.
또한 드라이브 유닛의 제조에 대한 개념을 선도하여 플라워 마그넷이나 일렉트로 마그넷을 적용하고 다이어프램 콘의 안정적인 동작을 위해 엣지의 댐핑을 개선하는 등의 많은 시도를 통해 남다른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모든 노력의 결정이 아로새겨진 것이 포칼에서 최상위의 라인업을 형성한 유토피아 라인으로, 최초 개발로부터 이제 3차례의 진화를 거쳐왔다.
그중에서도 마에스트로와 스칼라 그리고 디아블로는 evo라는 이름을 추가로 붙여 기술의 진보를 적극적으로 어필하고 있다.
디아블로 유토피아의 성격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vivid”라 할 수 있다.
생생함, 선명함, 강렬함 이런 느낌을 아우르는 단어라면 vivid가 가장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디오의 세계에서 vivid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다. Vivid를 사명으로 한 로렌스 디키의 Vivid Audio 도 있지 않은가?
이처럼 오디오가 가진 성격 중에서 맥 빠지고 두루뭉수리한 소리를 내지 않게 하기 위해 하이엔드 제조사들은 많은 노력을 해왔고 포칼은 그중에서도 가장 선두에 서있는 브랜드라 할 수 있다.
북쉘프 스피커의 세계에서 디아블로 유토피아는 지금까지 지존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2웨이 구성의 북쉘프 스피커에서 미드 레인지와 베이스를 맡게 되는 미드 우퍼는 저역을 거의 포기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디아블로는 제원상 44Hz의 저역대 주파수 응답 특성으로 인해 허약한 경량급 톨보이 스피커들을 제칠 만큼 수준급의 저역 드라이빙 능력을 갖고 있으며 40kHz의 고음역을 토해내는 베릴륨의 성능은 광활한 음장감을 형성하는 데 일조를 하여 북쉘프 스피커로는 예를 찾기 힘들 정도의 커다란 무대를 그려준다.
Diablo Utopia + Aurender N10 + Goldmund Metis 7
그러한 디아블로 유토피아는 절대 뒤로 빼는 수줍은 스타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음을 쏟아내고 멀리 내던지는 괴력을 보여주는 마성을 갖고 있다.
비교할 만한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의 디아블로의 유전자는 오디오파일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섣불리 소유를 결정하기 힘들게 하는 높은 가격은 더욱더 디아블로의 마성에 대한 갈망을 배가 시켰던 것 같다.
그동안 북쉘프 스피커의 자리에서 왕좌를 지켜왔던 디아블로는 마에스트로, 스칼라와 함께 Evo 마크를 달고 새롭게 변신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소개하기 위한 포칼 디아블로 유토피아의 신 구형 모델의 시연회가 11월 17일 와인오디오 메인 시청실에서 열렸다.
이날 시연회를 진행한 와인오디오의 치프 매니저는 일체 Evo의 변화에 대해 소개를 하지 않았고 청감상으로 각각 신구형의 성격을 느껴봐 달라는 주문을 하였다.
이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현재 포칼의 홈페이지에는 디아블로 유토피아 III Evo에 대한 일체의 내용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섣불리 신구형의 변화에 대한 언급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와인오디오의 디아블로 유토피아 III Evo의 소개는 무척이나 이른 쇼케이스가 아닐 수 없다는 점이 이날 시연회가 갖는 남다른 의미라 할 수 있겠다.
좌측이 Diablo Utopia III Evo, 우측이 구형 Diablo
시연회는 소스 기기에 오렌더 N10이 사용되었고 레드북 규격의 음원을 다이달의 네트워크 스트리밍을 통해 디지털 인티앰프인 골드문트 메티스 7에 의해 이루어졌다.
오렌더 N10에는 XLO의 레퍼런스 3, 메티스 7에는 체르노프의 레퍼런스 파워 케이블이 연결되었고 AB 테스트로 진행된 스피커에는 XLO 울트라 플러스 스피커 케이블이 연결되었다.
신구형이 나란히 배치된 디아블로 유토피아는 육안상 외형의 제원을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미드 우퍼 유닛의 드라이브 바스켓이 달라졌고 배플의 색상을 달리한 구형과 달리 Evo는 트위터와 미드 우퍼의 캐비닛의 색상이 각각 단색으로 마감 처리되었다.
그리고 시연을 통해 들은 소리의 특성도 구형과는 어느 정도 비교가 될 정도로 달라졌는데, 그 첫 느낌은 소리를 내지르는 최강자의 고집스러운 자부심에서 벗어나 서두르지 않는 여유가 느껴졌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소감이기 때문에 다른 오디오파일에게 적극적으로 주장할 만한 내용이 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Evo는 소리를 풀어내는 데 있어 무대를 여유롭게 바라보는 관록의 연주자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를 시각적인 표현으로 들자면 매우 선명하고 쨍 한 사진에서 주제가 부각되고 보케가 그려지면서 자연스러운 원근감이 느껴지는 사진을 보는 듯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를 통해 무대의 좌우 넓이에 더해 앞뒤의 거리감이 조금 더 잘 느껴지고 약간 뒤로 물러서 소리를 펼쳐낸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포칼이 의도한 진화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디아블로가 갖고 있는 마성의 매력에 더해 최강자의 자신감과 여유가 느껴졌다.
이날 청음 한 곡들 중 디아블로 유토피아 Evo를 느끼기 좋았던 곡을 꼽아보면
Tchaikovsky, Serenade for strings in C major, LSO String Ensemble, Roman Simovic
북쉘프 스피커의 레퍼토리로 보자면 세레나데는 매우 좋은 장르의 곡이다.
세레나데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창밖에서 부르는 소야곡(小夜曲)으로 번역되는 것에 비추어 현악이 중심이 된 소규모의 실내악이면서 템포가 급격하지 않은 부드러운 음악이기 때문이다. Evo로 들은 1악장의 도입부의 바이올린 소리는 보잉의 완급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뒤를 잇는 첼로의 굵은 소리의 배음이 깊이 있게 느껴졌다.
디아블로 유토피아의 자기주장이 강한 소리는 뒤이어 구형으로 바꿔 들었을 때 느낌이 왔는데, 아무래도 Evo와의 미묘하게 다른 점은 현을 긁어내리는 보잉의 동작이 무척이나 큰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이다.
이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 같이 구형 디아블로의 약간은 앞서나가려는 소리의 경향을 비교하는 곡이 되었다.
Whitney Houston, I"m Every Woman
이제는 고인이 된 팝 솔의 여왕, 휘트니 휴스턴의 “보디가드” OST의 수록곡으로 오르간 건반과 함께 시작하는 휘트니의 허밍이 무척이나 부드럽고 달콤한 크림처럼 표현되었고 어린 소녀의 하이톤의 소프라노로 이어받는 백 코러스가 휘트니의 몇 미터 정도 뒤에서 울려 퍼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 일 분여의 도입부 부분이 Evo를 구형과 느끼기에 좋은 부분이었고 일렉트릭 비트로 시작되는 메인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렇게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여기서 Evo는 구형에 비해 어쿠스틱 음향에 대해 좀 더 자연스러운 펼쳐짐이 느껴졌는데, 강함의 일변도에서 어느 정도 유연성을 가지는 방향으로 튜닝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하는 추정을 해본다.
Carl Orff, Richard Hickox, London Symphony Orchestra
칼 오르프의 세속 칸타타인 카르미나 부라나는 오디오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무시무시한 곡이다.
즉, 제대로 된 오디오 시스템이 아니라면 이 곡이 갖고 있는 웅대한 음향과 거침없이 변화하는 다이나믹스의 역동성을 표현하지 못하고 매가리 풀린 소음만 들려주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규모로 확장된 오케스트라와 함께 정규 코러스와 소년 합창단과 어울리는 소프라노, 테너, 바리톤의 솔리스트들의 색채감이 다른 소리들이 뭉뚱그려져 원근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카르미나 부라나의 두 번째 곡인 Fortune Plango Vulnera(운명의 상처를 탄식하노라!)는 남성 합창단의 이끌어가는 파트로 비장한 느낌의 남성 합창에 이어 모든 합창단 주자의 합주가 오케스트라의 박진감 넘치는 연주와 함께 이어진다.
빈약한 사운드 스테이지를 펼치는 오디오 시스템에서는 금관악기들의 화려한 금속성 음향과 어우러지는 심벌즈와 팀파니의 하모니는 자칫 소란스럽게 들릴 수 있는 소지가 많은 곡이라 할 수 있다. Evo로 듣는 이 곡은 박진감을 제대로 표현하면서도 유연하게 소리를 펼쳐내 커다란 무대를 선사해준다.
포칼은 잘 나가는 것은 바꾸지 않는 보수적인 브랜드가 아니다.
탄탄한 기본기 위에 매우 공격적인 R&D를 구사하는 전략을 취하면서 끊임없이 혁신을 입에 달고 사는 브랜드라 할 수 있다.
이는 신형 디아블로 유토피아 Evo와 첫 대면을 하면서 더욱 강하게 각인되었다.
구형과 달라진 변화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음악적으로는 더욱 성숙한 마성을 뿜어내는 아우라를 이번 시연회를 통해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