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ul Wilbur Klipsch
조화롭지만 가혹한 지구의 생태계에서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경이로운 생명체가 있다.
우주에서 현재까지 유일한 녹색의 행성인 지구에서 생명의 씨앗이 잉태되어 다양한 종으로 분화하여 살아왔지만 5차례의 대량 절멸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고등생명체는 자기 종을 유지하지 못하고 생태계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예외도 있는 법, 4억 년 전에 최초의 조상이 등장한 상어는 이러한 시련의 시기를 넘기고 현재도 건재하게 살아있다.
이들의 존립을 위협하는 유일한 존재는 생태계의 이단아인 인간뿐이다.
이러한 자연의 법칙은 하이파이의 세계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길지 않은 오디오 시장에서 하이 피델리티의 신조를 표방한 많은 제조사들이 생겨났지만 시장의 경쟁에서 도태되어 사라져가거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이름뿐인 명맥을 이어가는 브랜드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1946년 미국 아칸사스 주의 호프에서 폴 윌버 클립쉬(Paul Wilbur Klipsch)가 창립한 클립쉬는 지구의 생태계로 따지면 거의 고생대 수준이라 할 수 있는 시기에 생겨나 7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살아있는 화석으로 여겨도 이상하지 않은 제조사라 할 수 있다.
클립쉬는 단지 생명력만을 유지한 제조사가 아닌 자기 정체성을 뚜렷하게 지켜온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현대적인 하이파이 세계에서는 이미 구식으로 치부되는 혼형 스피커를 뚝심 있게 지켜온 것이다.
클립쉬의 창업자인 동명의 폴 클립쉬는 소리에 대한 자기 철학을 고집스럽게 지켜왔고 이상적인 사운드를 스피커가 만들어내는 데 있어 혼은 매우 뛰어난 요소라고 생각해왔다고 여겨진다.
폴 클립쉬가 생각한 혼형 스피커가 가진 장점은
첫째, 매우 능률이 좋은 유닛 성능으로 인해 고출력의 앰프가 필수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며
둘째, 웨이브 가이드 역할을 하는 혼 형태의 구조는 소리의 지향성을 조절하기가 쉽다는 점과
셋째, 금관악기의 혼 구조를 모방한 형태는 악기와 같이 왜곡이 적은 자연스러운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에 더해
넷째, 작은 소리와 큰 소리 모두 정확하게 재현이 가능한 다이내믹 레인지가 높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폴 클립쉬의 이론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결과물이 플래그쉽인 클립쉬혼(The Klipschorn)으로 야구장처럼 생긴 스피커의 형태뿐만이 아닌 공간을 스피커의 일부로 사용하여 벽의 코너에 설치하도록 만들어졌다.
이러한 사운드에 대한 자기주장을 폴 클립쉬는 “Big Sound, No Bullshit.”이란 한마디 말로 표현하여 경쟁자들에게 도발하는 과격함을 보여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