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수집하다 보면 신간이나 신곡, 혹은 최신녹음과 신포맷에 신경을 쓰게 되고 가급적 좋은 녹음의 음반을 모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반면 실제로 청음을 하게 되는 곡들은 오랫동안 손떼 묻어서 귀에 익숙하고 '감동'이라는 추억을 되새김하는 경향이 짙은듯 합니다. 그래서 신간은 많은 양이 들어오기는 하되 메이저 음반에 진입하기는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한동안 엘리 아멜링의 슈베르트 가곡집 SACD 버젼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제법 오래된 판임에도 복원을 잘한데다 SACD로서의 매력을 흠뻑 느꼈기 때문인데요. 가끔 시스템 자체가 여성보컬 위주의 시스템으로 가는 것에 대해 다소 반발감을 느껴 문득 남성보컬을 찾아보았습니다. 한동안 안들었던 판 중에 손에 남는 슈베르트 가곡집이 두개가 잡히더군요. '슈베르트 가곡 = 피셔 디스카우'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피셔 디스카우 버젼과 지금부터 써 내려가게 될 '분덜리히'인데요.
대부분 슈베르트 가곡집은 목에 힘을 가득 주고 바리톤이나 테너의 음성으로 굵직하게 부른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이게 피셔 디스카우의 영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분덜리히는 '미성'으로 승부를 걸고 있습니다. 지금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모르지만 한 십여년쯤 전, 안드레아 보첼리가 처음 등장했을때 쓰리테너의 뒤를 잇는 테너가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특징은 굵직은 테너 음성이 아니라 미성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개인적인 기호로는,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안드레아 보첼리나 최승원 같은 미성 테너가 조금 더 호소력을 띄게 되더군요.
그래서 슈베르트 가곡집을 미성으로 표현한 '분덜리히'가 눈에 더 띄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는데 겨울이 다 갈 무렵 문득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와 '겨울나그네'가 듣고 싶어 집어 본 이 음반을 끝까지 다 듣고 말았는데요. 아마도 슈베르트 가곡집에 대한 정서 자체가 굵고 힘찬 느낌보다는 약간 창백한 느낌의 선상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른 여섯에 요절.... 어찌보면 새로운 천재가 탄생하는것을 하늘이 시샘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예전엔 '서른 여섯'이란 나이가 참 많아보였는데 가끔 그들이 짧은 순간 남겼던 흔적들을 뒤쫓고 있는 나는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보람있게 살고 있는가를 뒤돌아보게 됩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