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제게 물어본 적이 있는 질문이 무심코 떠올랐습니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하이파이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었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전 바로 대답을 했죠. 헤드폰으로 즐기라고.
소스를 핸드폰 스트리밍으로 하던 파일로 하던 CD로 하던, 헤드폰을 이용한 하이파이는 가장 적은 투자로 가장 확실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저처럼 수험생을 둔 아빠로서 불가피하게 헤드폰에 빠진 경우도 있지만, 이미 헤드폰을 이용한 음악감상은 상당히 보편화된 방법 중 하나죠.
단돈 몇만원부터 기백만원대까지 다양한 가격의 헤드폰 중에서 어떤 제품을 선택하는지도 개인차가 크겠습니다만, 고가의 헤드폰일수록 소위 '돈값'을 하는 제품에 대한 호불호 역시 상당히 편차가 큰게 현실입니다.
들어보기 시작한 지 이제 2주밖엔 안되었지만, 데논 AH-D7200은 레퍼런스 헤드폰이 주는 감동이 무었인지와 좋은 헤드폰이 줄 수 있는 만족감이 어떤 것인지를 확실히 느끼게 해 준 제품입니다.
현재 이 제품은 80만원대에 구매가 가능한 제품입니다. 예전에야 몇십만원대만 하더라도 엄청 고가로 여겨질 때가 있었습니다만, 작금의 헤드폰 시장은 100만원대 이상의 제품군이 레퍼런스 제품의 주종을 이루는 상황입니다.
기백만원대의 더 비싼 제품도 많이 있겠습니다만,이 100-200만원대 가격에서의 레퍼런스 제품의 경쟁이 각 브랜드가 내놓는 하이앤드 헤드폰의 가장 치열한 시장이라 생각합니다.
AH-D7200의 특징은 가격은 100만원 이하임에도 불구하고 체감상 200만원대 이상의 제품이 주는 완성도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과연 어떤 부분이 이러한 '가성비'를 만들 수 있는지 하나 하나 따져보겠습니다.
일단, AH-D7200의 첫 인상은 원형의 원목소재 이어컵입니다. 스피커에서 인클로져에 따라 다른 소리와 함께 그 제품의 특성을 만들어 주는만큼, 헤드폰에서 이어컵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입니다. 소위 말하는 '통울림'의 근간은 헤드폰에서 바로 이 이어컵에서 비롯되니 말입니다.
나무 느낌의 도장을 한 제품과 AH-D7200처럼 원목을 이용한 제품의 소리결의 차이는 큽니다. 당연한 이치이겠으나 플라스틱이 원목을 따라갈 수는 없는 부분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 아닐까요?
저역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보다 더 향상된 댐핑을 만들어주는 효과도 효과이지만, 원목이 주는 그 고급스러운 느낌과 오랜 기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스타일은 단언코 최고입니다. 특히 손으로 느껴지는 원목의 감촉은 이 제품이 주는 만족감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처음 눈에 띄는 이어컵의 원목 재질에 감탄했다면, 그 다음은 머리에 닿는 헤드밴드에 사용된 천연가죽 재질에 눈이 갑니다. 손으로 느껴지는 가죽의 느낌. PVC나 폴리로 만들어진 인조가죽이나 레쟈가 아무리 좋아도 천연가죽이 주는 그 느낌은 절대 따라올 수 없을것입니다.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스티치는 아니겠지만, 가죽부분에 들어간 바느질땀은 그저 고급스럽다는 말 밖에는 안나옵니다.
헤어밴드와 금속부분이 닿는 부분에서 어느 부분 하나도 고급스러움을 놓치지 않는 부분이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알루미늄 다이캐스팅 소재가 들어간 구조도 고급스럽고, 사이즈를 늘리고 줄이면서 확인할 수 있는 수치 역시 디테일의 섬세함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한가지 더 탄성을 자아내게 한 부분은 바로 이어패드입니다. 귀에 닿는 이어패드의 느낌은 제가 이제까지 사용해 본 그 어떤 제품보다도 착용감이 좋았습니다. 귀부분에 맞게 각도를 준 부분도 그렇고 귀를 편안하게 감싸주는 느낌 역시 좋습니다.
밀폐형이고 오버사이즈 제품이니만큼 이어패드의 차음성 기능도 만족스러운 부분입니다. 하이앤드를 표방하는 제품이니만큼 제품의 무게는 가볍지는 않으나, 이어패드와 헤드밴드에서 주는 편안한 착용감은 무게감을 어느 정도 완충시켜 주는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무겁지는 않은데라는 생각이 드는건 저만의 착각은 아니리라 봅니다.
AH-D7200의 구성품으로 제공되는 케이블은 일본에서 제작된 7N급 무산소동선 선재로 만들어진 제품입니다. 밀페형에 오버사이즈 제품이니만큼 인도어용으로 제작된 제품 특성 상 63mm단자가 채용되었습니다. 35mm단자가 들어간 젠더가 아예 포함되지 않은 부분은 제조사에서 음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한 자신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구매시 사은품으로 제공되는 별도의 케이블은 단자의 아쉬움을 잊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하이앤드급 제품의 헤드폰은 별도의 케이블 튜닝을 많이 하곤 합니다만, 기본으로 제공되는 이 선재는 굳이 튜닝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만족도가 높습니다. 개인차가 있겠습니다만, 전 앞으로도 이 AH-D7200에 별도의 케이블 튜닝은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AH-D7200의 디자인과 스타일, 손에 닿는 하나 하나 작은 느낌까지 주는 디테일의 완성도는 이 가격의 제품을 능가하는 부분이라는건 확실합니다. 중요한건 소리의 완성도죠.
2주라는 시간이 길면 길고 짧으면 짧겠습니다만, 어느 정도 에이징도 마친 상태라 몸은 확실히 푼 상태라는 판단이 들었고 소리가 주는 느낌을 글로 표현해 볼까 합니다.
이 제품은 모니터용 제품이 아닙니다. 그 브랜드가 가진 기술력과 노하우를 동원해 그 브랜드의 하이앤드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게 바로 해당 브랜드의 레퍼런스 제품이고, 바로 그 소리의 차이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착색'입니다.
어. 착색이 있는게 좋은게 아니지 않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으실 겁니다.
저가형 제품들이 보여주곤 하는 특정 대역대를 인위적으로 부풀려 만드는 그 착색의 개념과 달리 하이앤드 제품의 착색은 제작사에서 만들어 내는 그들만의 하이앤드를 지향하는 아이덴티티가 바로 레퍼런스 제품의 착색이 아닌가 합니다.
스피커에서는 사용하는 유닛과 인클로져, 회로의 설계에 따라 같은 유닛을 사용하는 제품도 각 브랜드마다 소리가 다른게 바로 그 이유일 것입니다. 그 소리의 차이. 브랜드가 만든 그 차이는 바로 착색의 결과물이고, 그 착색의 차이는 그 제품의 가치를 평가하게 만드는 근간이 아닐까요?
헤드폰을 만든지 50년이 넘었다는 판매사의 광고에서 보듯 데논은 그저 만만한 브랜드는 아닙니다. 하이파이에서도 인정을 받고 방송장비에도 흔히 볼 수 있듯, 그들의 기술력과 노하우는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니 말입니다.
AH-D7200에 사용된 드라이버 유닛은 판매사에서 자신 있게 광고하듯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드라이버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은 자연스러운 밸런스로 귀결됩니다.
자. 고역도 최고고 중역도 최고고 저역도 최고라고 하면 어떤 소리가 날까요? 아마도 이퀄라이져에서 모든 부분을 끝까지 올린 소리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 의미 없죠.
대역대의 특성에 맞춰 올린건 올리고 뺄 건 빼면서 맞추는 밸런스는 우리가 인정하는 레퍼런스 사운드입니다.하이앤드를 지향한다면 무었보다도 소리의 디테일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고역은 부드러우면서 거칠지 않게 편안하게 귀를 자극합니다. 귀를 거슬리게 만드는 치찰음이나 초고역대를 부스팅하거나 하는 피곤함은 아예 없습니다. 소리의 왜곡을 찾기 힘든 잘 정돈된 밸런스의 차이. 이래야 하이앤드 고역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소리입니다.
AH-D7200의 매력은 바로 감미로운 중역대가 일품입니다. 이 제품을 구매하고 가장 많이 손이 가는 곡들은 여성보컬곡들이었습니다. 촉촉한 느낌이 묻어나는 중역대는 그 어떤 이도 들어보면 탄성을 지를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저역의 양은 약간 풍성한 정도지만 그 양감에 비해 단단하게 조여주는 타격감이 일품입니다. 퍼지거나 뭉퉁그려지지 않으면서 상당히 스피디한 응답성을 보여줍니다. 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저역대는 이 제품이 만들어내는 밸런스의 기둥이 아닌가 싶더군요.
전체적으로 중역대와 저역대를 약간 강조하면서 차분하고 부드러운 고역대로 디테일을 강조하는 사운드. 데논이 만들어낸 하이앤드 사운드는 상당한 매력을 어필한다고 봅니다. 어둡거나 무겁지 않으면서 적당한 무게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컬이 가진 사운드의 깊이를 보다 더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뮤지션의 감성을 더 가깝게 느껴지게 만들어줍니다. 몇시간을 들어도 귀를 피곤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왜 레퍼런스 제품인지. 이 브랜드가 만들어내는 하이앤드 사운드의 맛은 이런거다라고 느낄 때면 AH-D7200은 더더욱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무었보다 이 제품이 가진 퍼포먼스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이 가격은 그저 그뤠잇입니다. 장점을 너무나도 남발하였으나 특별한 단점을 찾기 힘든 부분 역시 이 제품이 가진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러다 보니 80만원대의 이 가격은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100만원대를 상회하는 제품들 여러가지를 사용해 보았고 500만원대의 제품도 잠깐이나마 청음해 보았습니다만, 제 경험치에서 이 제품이 주는 가성비는 단언코 압권입니다.
보다 완성도 높은 하이앤드 사운드를 비교적 저렴하게 경험할 수 있는 제품이란게 AH-D7200의 가장 큰 강점입니다.
제품의 마감이나 사운드의 디테일은 음악이 주는 질감을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주게 만드니 말이죠.
AH-D7200은 어떤 제품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1년 후. 아니,10년 후도 이 제품이 제 곁을 지켜주지 않을까 하는게 이 제품을 사용하고 느낀 가장 솔직한 사용기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