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게 읽고 나서 같이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토방에도 퍼다가 옮겨놓습니다.
좀 깁니다만...
당연한 것이지만, 읽고 나서 어떤 평가를 내리고 무슨 생각을 해볼지는 여러분들의 몫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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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뉴라이트 강조되면 사회갈등 심해져…역사적 후퇴”
[쿠키뉴스 2005-11-08 19:42]
[쿠키정치] ○…이해찬 국무총리가 “최근 일고 있는 뉴라이트는 문화적 지체현상”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8일 오후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창립 40주년 기념 ‘사회학적 상상력과 한국사회’를 주제로 한 특강에서 “사회가 한꺼번에 발전하다보니 의식과 제도가 못 따라오는 영역이 있다”며 “뉴라이트가 강조되면 사회 갈등이 심해지고 역사적으로 후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총리는 또 “해방 이후 50여년 역사 중에 개혁적인 시대는 채 10년도 안 돼 아직은 고쳐야할 것이 더 많다”며 “공무원,교수 등 지식인은 향후 국가 발전을 위해 역사적 당면과제가 무엇인지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는 교원평가제도와 관련해 이 총리는 “외환위기 이후 외부 평가를 받지 않는 분야는 교육계 뿐이다”고 비판한 뒤 “교원 단체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어 제도 시행 초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지 몰라도 정책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총리는 “2018년이면 국민 누구나 연금을 받게된다”면서 “그때까지 13년 동안은 모든 부담을 감내해야 할 65세 이상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고 사회안전망을 확보하고 갈등을 관리해 나가는게 정부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이 총리는 학생들에게 “서울대는 여타 대학에 비해 지원을 받는 학교인만큼 국가와 사회발전에 필요한 중요한 인재 많이 육성할 책무를 가지고 있다”며 “개인이 이룬 성과가 국가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날 강연에는 200여명의 서울대 학생들과 교수 등이 참여해 강연 후 이 총리에게 ‘사회학과의 비전’, ‘이해찬 세대에 대한 평가’, ‘교육개혁에 대한 견해’ 등과 관련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다음은 이해찬 총리의 강연 전문
반갑습니다.
제가 72년 사회학과 입학했을 때 여학생이 1학년에 1명. 오늘 보니까 여학생이 절반 정도 되는거 보니까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진석 교수님이 저와 함께 사회학과에 입학한 유일한 여학생이었다. 별명이 프린세스 정이었다. 여기 앞에 한자리 비었으니 앉으세요.이제일 교수님이 총리실에 오셨다가 나온 말중에 “사회학과를 택한 게 서점에서 우연히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책을 본 거였다”고 말하며 “서울대 강연 부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말려들었다. 이동네 저동네 왔다갔다 많이 했다. 많이 돌아다니게 된 배경이 그 책이다. 처음 공과대학 입학했을 때는 건실한 엔지니어가 되려 했다.
그 때 71년은 시기적으로 매우 안 좋았다. 당시 교련반대 시위가 심했다. 대학 병영화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저는 공부 열심히 하려 들어왔는데, 학교에서 매일 데모만 하니까 학교를 잘 안 다녔다. 나혼자라도 공부하려 했다. 공과대학은 스텝 바이 스텝으로 따라가기 때문에 학교 잘 안 나오면 따라갈 수 없다. F가 나왔다. F가 4개 나오면 2학년 진학 못한다. 쌍권총. 진학 못할바에야 적성에 맞는 문과로 옮기는 게 낫겠다. 2학기에 다시 입학 시험 준비. 그 때 우연히 청계천에서 사서 읽은 책 중에 사회학 책 있었다. 사회 심리학 등. 그러다보니 경제학보다 사회학이 더 의미있겠다고 생각해 사회학과 왔다. 공부 열심히 해 교수 되려 했다.
72년 10월 유신이 났다. 학교가 휴교 돼 충청도 청양으로 내렸갔다. 고향. 저녁 먹는데 “너 친구들은 다 지방 내려갔느냐. 그럼 데모는 누가 하느냐”고 물었다. 그 때 충격 받았다. 그날 밤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다음날 데모하러 서울 올라왔다. 그때부터 공부보다 데모에 관심 가졌다. 사회학과는 사회발전보다 사회갈등을 가르쳤다. 데모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분야다. 공부겸 데모겸 학교를 다녔다. 결국 그 버릇 못버려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감옥 가고 퇴학 당했다. 다시 학교에 왔더니 후배가 교수 하고 있더라.
김대중 내란 사건에 연루 돼 다시 학교에서 제적됐다. 85년인가에 학교에서 억지로 졸업장 줬다. 법률상으로는 졸업. 하지만 사실상으로는 졸업 못했다.
지나고 보면 사회학적 상상력이 원죄라고 할 수 있다. 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감옥살이를 할 때 책을 봤다. 시간이 많으니까. 가장 인상깊었던 책이 이 책이다. 학교 다닐 때 영어강독을 좀 하기는 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감옥에서 가만히 읽어보니 참 의미있는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한 시대를 살아갈 때 역사적인 맥락, 사회적인 구조, 개인적인 삶이 삼각고리가 돼 결정이 된다는 내용을 썼다. 내 신세하고 비슷한 것 같더라. 왜 들어왔는 생각해보니 역사적 맥락에서 유신 아니면 안 들어왔다. 사회학과 안 갔으면 데모 안 했을수도 있다. 공과대에서 문리대로 옮겼을 땐 왠지 사회적 의식이 생겼다. 내란음모 교사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가만 생각해 보니까 사회학적 상상력이 원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 짧아 매우 어렵고 힘들었다.
학교 제적 돼 여기저기 다른 일 했다. 당시 창비인가에서 앞장 ‘약속’을 번역해 놓은 것을 봤다. 그걸 보니까 확실히 잘 알게 됐다.
용돈도 벌 겸 해서 번역을 해 보자고 했다. 혼자 번역할 자신이 없어 충북대 교수인 강인영과 함께 했다. 당사 대학원 다녔다. 얼마나 졸렬했느냐 하면 내가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활자화시키는 게 참 부끄러웠는데, 그때는 겁도 없이 그렇게 했다. 작년인가 이화여대 교수가 다시 꼼꼼히 번역했다. 내가 먼저 번역했으니까 나한테 원고료를 주더라. 라이트 밀즈(작가)가 활동했을 때가 1960년이었다. 그는 상당히 비판적인 사회학자, 고집도 쎘다. 더 인상깊었던 책은 ‘파워 엘리트’였다.
사회적인 문제를 포착하는 능력. 이것을 어떤 맥락에서 봐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서문에서 “말로는 사회학적 상상력이라고 하지만 한 사회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포착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그래서 사회학적 통찰력이라고 해도 되겠다”고 썼다.
요즘 가장 인상깊었던 것 중 하나. 한 사람의 개인적 삶도 시대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결정됨. 역사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매우 영향은 많이 미쳤다. 나는 순진한 공과대 학생이었다. 모든 자료도 다 샀다. 하지만 문리대로 옮겼다. 그때까지만 해도 민주화 투쟁을 하리라 전혀 생각도 안 했다. 이화여대까지 강의 들으러 갔다. 열심히 공부해 독일에서 유학하고 교수 되려 했다. 그걸 보면 역사적인 맥락은 참 중요하다. 유신이 났다고 해도 내가 데모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사회학에서 배운 사회 갈등론, 사회 계층론 등은 매우 개혁적인 내용이다. 유신이 났는데 그게 혼자 피해갈 수 없더라. 더구나 집에서 혼나고 왔다.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하자고 생각하고 써클 만들었다. 그게 원인이다. 유인태 의원, 이철 의원 등이 사형 선고를 받았던 민청학련 사건의 중심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선언문 썼다. 수유리 여관방에서. 옛날에는 먹지에 대고 쓰고, 인쇄를 하고, 운반 역할을 정진석 교수랑 같이 했다. 그 당시는 한 개인의 삶이자 역사적인 책무고 의식이었다. 그 때는 역사적으로 필수적인 과제라 생각했다.
그때부터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 형사보면 싸웠다. 민주화 어떻게 시킬지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출판사 차린 게 생계 수단이자 학생에 대한 의식화 작업이었다. 한 개인은 사회의 환경, 조건 속에서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하지만 주체적인 인간의 모습은 있다. 의식은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그 사회는 역사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민통련 등에서 민주화 운동 하고 나니까 재야가 아니라 제도적 틀 안에서 뭔가 해내야겠다는 생각에 출마까지 하게 됐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하면서 교육부 장관 하리라 전혀 생각못했다. 발표 아침에 내정자가 못하게 됐다. 내가 대타로 들어갔다.
“왜 나를 임명했느냐”고 물으니까 “구조개혁을 해야 하는데 너가 가장 적임자이다”고 했다. 겁도 없이 교원 정년제 손대서 욕은 많이 먹었지만 65세에서 60으로 낮추는 어려운 일 했다. BK21 사업도 했다.
IMF 외환위기의 수습 일환으로 갔다. 내가 원한 것 아니다. 가보니까 향후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갈 것이냐. 미국, 영국, 독일 다니면서 자문 들어보니 앞으로 지식기반 정보화사회로 간다. 그 속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력 개발, R&D, 특히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분야에서의 R&D였다. 이 결론을 가지고 만든 게 그 두가지다. 미국가서 스탠포드 학장과 대화해 보니 서울에서 온 학생은 어두워지면 다 잔다고 하더라.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더라. “어려서부터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고 교육받았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교수가 “실험은 계속되는 것이다. 안 잘 때는 20일까지 안 자야 한다. 체력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 학생은 체력과 끈기가 약하더라”고 했다.
가만히 보니 기숙사가 없으면 못한다. 한국 대학은 졸속으로 만들다보니 거의 기숙사가 없다. 서울 공대 기숙사용으로 예산 배정을 많이 했다. 비난 많이 받았다. 그것은 서울대 지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R&D 인프라를 까는 것이었다.
총리도 내가 맡으려고 했던 게 아니다. 지난해 5월 총선 끝나고 내가 당 일을 좀 하려 했다. 내가 5선으로 가장 다선이다. 원내총무하려 했는데 선거에서 떨어졌다. 그럼 책이나 읽고 좀 편하게 있으려고 했는데 대통령이 “총리 맡으라”고 하시더라.
왜 맡았는지 대통령과 이야기가 통하고 정책적 내용 좀 알아야 하고 그랬다. 정책위원장 3번이나 맡았다. 총리는 대통령 보좌. 거기에는 정책위원장 많이 한 사람이 맞다. 벌써 1년 반 다 됐다.
힘들었지만 사회학과 입학이 매우 도움이 됐다. 사회학 문제를 포착하는 데 있어 심리학, 경제학 등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다. 만약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면 매우 좋다. 옛날에는 4만, 40만명 실업자라고 하면 개인의 적응 능력이 잘못된 것이라고 해서 심리적 접근이 좋다. 독일처럼 7000만 중 500만명이 실업자면 아래에서부터 저항이 나온다. 이것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 구조의 문제다. 같은 실업이지만 성격은 전혀 다르다.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의미가 전혀 다르다. 이 점은 다른 과가 알기 힘들다.
지금 마찬가지. 평균 실업률은 3. 몇 프로라고 한다. 하지만 청년, 노인 실업자 늘어난다. 아이 안 낳는다. 포괄적으로 볼 때 사회학적으로 보는 게 가장 좋다. 항아리형이라고 하면 사회학 공부한 사람은 금방 알아듣지만 문학 공부한 사람은 잘 모른다.
인구 사회학적인 안목을 가지면 저출산 고령화사회 정책을 입안하는데 빨리 포착하는 눈이 생긴다. 희망 21도 그 관점에서 만들고 있다. 지금 시작해 국가가 보육을 책임지는 것으로 가야 한다. 이걸 개인 문제로 다루는 게 아니라 소셜 이슈로 다뤄야 한다. 예산, 제도, 취업 환경 등이 필요하다. 여성 취업하면 GDP가 더 커진다. 보육이 활성화되면 또 경제활동이 된다. 제가 아무것도 안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장관들이 깜짝 놀란다. 그러면 “내가 사회학과 출신이니까 그렇다”고 하면 다 정리된다. 사회 전체의 맥략을 개인 차원, 국가 차원, 역사 차원으로 볼 것인지 상상력을 넣어주는 게 사회학이다. 사회학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다른 과를 조금 폄하하는 차원에서 이야기하면, 경제학 한 선수들은 경제 결정론을 많이 믿는다. 계급 결정론도 강하다. 역사 공부한 사람은 역사 결정론적으로 이야기한다. 정치학과 사람은 주로 정치행태를 이야기한다. 연설 잘한다. 옷을 잘 입었다. 행태주의적 정치학이 미국에 있지 않느냐. 하지만 사회학과 사람은 역사적 맥락과 경제 체계의 영향력, 정치 현상, 인간의 주체적인 능력 등을 결합해서 볼 줄 안다. 훨씬 풍부하게 본다. 경중, 완급, 선후가 잘 갈라진다.
그런 점에서 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것은 매우 함축적인 의미가 있는 용어다. 나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큰 연못이라고 생각한다. 안에 다 있지 않느냐. 그 중에 우리가 퍼서 사용하면 된다.
이런 것을 가지고 사회 나와서 일을 할 때 어떻게 도움이 되느냐. 사실 사회학과 사람은 불행하다. 옛날에 선보면 사회학과 출신은 중매가 잘 안 된다. 데모하는 과니까. 연애하면 잘 된다. 말주변도 좋고, 교양이 풍부하니까.
취직도 잘 안 됐다. 사회학과 사람은 다루기가 힘들다고 인식. 유수 경영 회사는 취직 잘 안 된다. 공무원, 시험보는 곳, 언론사 등으로 많이 나갔다. 선배님 보면 언론사에 많았다. 요즘은 조금 줄었다. 한때 방송, 신문 편집국장 보도국장은 사회학과 출신이 모두 다였을 때도 있었다. 언론사라는 게 모든 걸 다같이 하는 거 아니냐.
공직도 매우 좋은 분야다. 보건복지부, 노동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청와대 경제수석보좌관도 사회학과다. 사회학과 출신이 다른 영역 공부하면 매우 시너지효과 난다. 매우 폭넓은 시각. 고위 공직 세계에서 매우 유능한 사람이 된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자격증이 없다. 그래서 취업이 잘 안 된다. 결혼중매사 자격증 정도 딸 수 있을 것이다.
미국 보면 학부에서 사회학 한 사람 많다. 이후 경제학 의학 등을 한다. 얼마 전에 외교부 장관을 접견했는데, 자기도 사회학했더라. 나도 사회학 공부는 안했지만 입학했다고 하니 좋아하더라.
총리 해 보니까 총리 하려면 사회학과가 좋다. 한국이 땅덩어리 좁고, 인구 많고, 경제 규모 크고, 온갖 사회 문제가 어울려 있다. 농업사회의 식민지, 농업사회의 독재권력 및 분단시대, 65-90년대 산업사회이면서 권위주의 시대, 분단 고착화 시대. 95년-지금은 정치적으로 민주화된 시대, 지식정보 사회, 공존 교류로 가고 있다. 2010년 되면 GDP 1조 달러, 1인당 GDP 2만불 될 것 같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된다. 정치적으로는 더 민주화 정착될 것이다. 냉전체제의 상황은 연합국가 수준으로 더 발전돼 나갈 것이다. 농업사회에서 지식기반 사회로 넘어오기까지가 60년이 채 안 걸렸다. 그 역사 속에 경제사회 단계가 3개가 있다 .분단이 깔려 있다. 정치체계도 독재, 군부권력, 민주화까지 있다. 한상진 교수가 45년생이신데, 한 교수 머리 속에는 3가지가 다 있다. 성장은 농업사회 가치관, 머리는 지식기반 사회다. 이 복잡 다단한 사회에서 생기는 문제가 계속 생긴다. 총리가 하나씩 정리하면서 방향 잡고 결정해 줘야 한다. 그래서 하루 큰 회의를 보통 4개, 1달에 100개 정도 한다. 지금까지 1500회 정도 했을 것이다.
논의 거쳐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판단해야 한다. 상대방 설득시키려면 논리적 자료를 줘야 한다. 오늘 결정 내리면 구조에 어떤 영향, 향후 어떤 영향, 타부에 어떤 영향을 파악해야 한다. 어떤 때는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논리적으로 승복해도 심정적으로 승복 안 할 때가 많다. 그럴때면 그 사람이 주장하는 다른 걸 들어줘야 한다. 보통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른 분야 공부한 사람은 잘 못할 것 같다.
사회학 공부한 사람은 종합적인 시각, 역사적 맥락에서 판단, 인간 중심에 놓고 판단, 사회 통합적인 관점에서 볼 줄 안다. 저출산 고령화를 2007년부터 4년간 추진하는 데 약 10조원 든다. 세입 5조, 예산 전환해 5조
장관들이 지침을 달라고 한다. 그럼 제가 지침을 줘야 한다. 오늘도 지침 줬다. 세출 분야에서는 선후를 가려라. 지금까지 타성적으로 비중을 많이 뒀던 것 중에 효용성 없는 것 줄여라. 나중에 할 수 있는 것은 선후 바꿔라. 그러니까 5조 예산 중에서 4조6000억 정도 나왔다.
세입 분야에서는 20년간 무의식적으로 해 온 게 있다. 당연히 고쳐야 하지만 그렇지 않는 것들 있다. 출산율 1.17로 떨어졌다. 하지만 아직도 산하제한 예산이 있다. 세제도 그런 방향 있다. 옛날에 A기관이 어떤 일을 맡아 하다가 시대가 바뀌었으니 없어져야 하지만 변형된 형태로 계속 일하고 있다. 이럴 때는 세원을 바꿔야 한다. 그건 거의 다 만들었다. 오늘 아침 보고 받아보니 얼굴 펴진다. 세입 쪽은 대략 다 확보했다. 세출도 4000억원만 더 확보하면 될 것 같다.
2007년부터 보육, 노령사회 대폭 강화할 수 있을 것 같다. 65세 노인들은 굉장히 고생하신 분이다. 그런데 연금도 안 나온다. 65세 돼 좀 편하게 여생 즐겨야 하는데 외손자 친손자 봐야 하는 경우 많지 않느냐. 얼마나 힘들겠느냐.
WTO 체제가 되고 세계화가 되면 제품 가격은 큰 차이 안 난다. 그 나라 소득 수준이 높아지느냐 아니냐는 서비스 요금에 달려 있다. 선진국일수록 서비스 인건비가 비싸다. R&D 개발해 고급 서비스를 많이 개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 거쳐 지식사회로 왔지만 미분화돼 있는 분야가 아직 많다. 이런 분야들을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좋은 제도를 2007-2010년까지 도입한다. 2018년이 되면 누구나 연금을 받는다. 지금부터 2018년까지 가장 어려운 시대다. 특히 65세 이상인 분들. 13년 동안 사회안전망 어떻게 만들거냐, 그 갈등을 어떻게 관리해 나갈 것이냐가 우리 사회의 과제다. 사회학적 관점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설득시킬 수 있다.
과거 세제 특혜 받은 사람들은 양보해라, 과거 농업사회 요소는 비용 줄여라 등처럼 조정할 수 있다. 이런 것을 관계장관 회의에서 죽 설명했다. 자기 돈 내놓으라는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 설득했다.
그래서 이제 이행하라고 했다. 2단계다. 하지만 잘 안 됐다. 강제 이행 단계에 들어갔다. 동의 받은 단계고, 마무리 짓는 단계다. 한국 사회가 한꺼번에 발전되다보니 의식, 제도 등 못 따라오는 영역이 있다. 사회학에서는 cultural lag이다. 국회 답변에서 사용했더니 “의원들 교육시키려 하느냐”며 호되게 당했다.
뉴라이트 등도 지체 현상 중의 하나다. 라이트는 지키는 것. 레프트는 개혁하자는 것. 뉴라이트라는 것을 정치학에서 뭐라고 표현하나. 교과서에서는 못 본 것 같다. 즉, 한국 사회는 개혁해야 할 게 훨씬 더 많다. 외환 위기 때 강제적으로 구조조정 당하면서 한국 사회가 조금 개혁적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것을 뉴라이트로 하면 갈등 더 심해지고 역사적으로 더 후퇴하게 된다. 행태주의적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구조적으로 접근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특히 남북 관계에서 퍼주기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한다. 제가 평양에 다녀와 느꼈다. 흡수통일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느꼈다. 독일도 그 내홍을 치르고 있다. 연간 1000억 달러를 동독 지역에 지원한다. 650억 달러 정도를 실업수당으로 준다. 지금까지 1조5000억 달러를 통일비용으로 지원했다. 흡수통일을 했기 때문에 그랬다. 그걸 한국이 어떻게 감당하겠나.
한국은 국민이 그걸 수용하지 않을뿐더러 능력도 없다. 따라서 북쪽 개방개혁 통해 북측의 수준을 높여놓는 게 결국 우리한테도 더 이익이다. 그걸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가 안 간다고 한다.
5000억 원을 남북협력기금으로 산정하려 한다. 국민 1인당 1만원씩만 부담하면 된다. 1달에 800원이면 된다. 상대방은 “그정도는 부담할 수 있지”라고 했다. 그래서 4750억 원 예산을 냈다. 5000억원을 가지고 퍼주기라고 하는데, 이는 국민 1인당 1만원이다. 이 비용이 향후 통일 비용을 얼마나 절감시켜 주겠느냐.
이 정도를 판단할 수 있는 가치관, 의식, 판단력, 지식을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총리, 언론사 편집국장, 9시 뉴스 앵커, 해설 쓰는 이, 기획자는 사회학과가 좋다. 기획도 사회학과 출신이 잘 해야 한다. 내가 대선 선거기획을 여러번 했다. 캠페인 등을 잘 해야 한다. 예전에는 사회학과가 유일하게 선거조사를 가르쳤다. 92년부터 여론조사 도입됐다. 지금은 전문 기관이 많이 생겨났다. 사회학을 통해 상상력을 갖고, 통찰력을 갖고, 그 다음에 전문영역에 들어가면 역량을 훨씬 더 잘 발휘할 수 있다. 지식, 기능 보다 의식과 안목,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 서울대는 국비 지원 많이 하는 학교다. 옛날에는 가난한 집 애들이 많이 다녔다. 지금은 부유한 집 애들이 많이 다닌다. 그러면서 국비 많이 지원한다. 그만큼 국가사회발전에 필요한 중요한 인재를 발굴할 책무가 있다. 여러분도 국가적 관점에서 전공, 삶, 사회 개혁 등을 하나로 할 수 있는 삶이 돼야 온전한 삶이다. 개인과 국가의 성과가 일치하는 게 좋은 거 아니냐. 그런쪽으로 더 상상력을 발휘해 달라.
<질의응답>- (현재까지 인생 중에서 자신의 주체적인 인생 아니라 각 시대의 책무에 따른 인생 같다. 뭔가 아쉬운 점 없나.) 대학 교수가 되고 싶었다. 얼마 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이 있어 괴테 대학에 갔다. 한국 통일에 대한 제 구상을 발표했다. 우뢰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괴테 대학 총장에게 말했다. 내가 한국에서는 교수되기 어려운데 독일에서는 되겠느냐고 물었다. 아, 좋다고 하더라. 아쉬운 점은 역시 교수 되는 것이다. 한국정치사회학 강의를 좀 했으면 좋겠다. 국내는 대학 변변히 나오지 않아 힘들고, 다른 나라 알아볼까..
- (회의 든 점) 지금까지 같이 민주화는 사람들 중에 좌절하는 사람이 많았다. 과격주의로 가는 경우도 많다. 대중사회운동 쪽으로 민주화운동 했다. 전두환 정권 때 또 감옥 가서 벽을 쳐다보니 ‘과연 역사는 발전하는 것인가’ 의문 들었다. 더 나쁜 사람이 왔다. 그때 절망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길게 보면 역사는 발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가 든 적은 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한다.
- (데모 하며 잃은 점, 얻은 점) 많다. 수지타산으로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총리까지 했는데 잃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 않나. 오히려 과분한 혜택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책무도 많다.
- (사회학의 광범위함은 잡학이 될 수 있지도 않나.) 제가 이론을 잘 모르니까 말씀드리기 어렵다. 다양성이 있기 때문에 잘못하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관점, 가치관을 가지고 정리해 볼 수 있다.
- (사회학의 탁월함이 귀납적으로 증명 가능한지) 저를 보면 되지 않느냐. 사회학적 관점이 없으면 쇼셜 데모크라시를 어떻게 논하겠느냐, 남도 어떻게 설득시키겠느냐. 한때 방송사의 보도국장, 주요 신문사의 편집국장을 모두 사회학과가 차지한 적이 있었다.
-(사회학은 취업 시장에서 배제됐다. 그렇다고 언론계 들어갈 수 없는 거 아니냐) 사회학 취업 안 된다는 것은 여러번 말하지 않았느냐. 여기에서 생기는 상상력을 가지고 다른 분야로 갈 때 밑거름이 되는 학문이다. 가장 좋은 것은 자격증을 하나 만들면 좋다. 마땅한 자격증이 없어 한계가 좀 있겠다 싶다.
-(사회과학, 인문과학,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이 위기에 빠졌다는 말이 많다. 개선책은) 사회가 계속 경쟁이 심해지니까 응용 학문쪽은 취직 잘 되고, 돈 많이 받고, 사회적 평가도 높다. 문사철, 자연과학 등을 잘 안하려 한다. 그건 국가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분야다. 그 부분은 국가가 별도로 양성해야 한다. 그 쪽은 취업과 관련 없이 필수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그 분야는 외롭고 어려운 분야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안하려 한다. 학문이라는 게 외로운 분야다. 이런 것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박사후 과정까지 진로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해찬 세대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고 책임감 느끼나) 여기 이해찬 세대 있겠군요. 제가 했던 게 정년 단축, 특기 적성 비중 높이기, 사지선다보다 심층면접 등을 통해 특기적성을 양성하자고 했다. 초기 적응 못하던 중3, 중2 등이 있었다. 우리 교육은 너무 오래 사지선다였다. 학생 잠재력과 상상력이 빈곤해지는 문제가 있었다. 7차 교육과정에 반영했다. 전환기에 따른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교육 방향은 맞았다. 사실 제 이름으로 만든 게 아니라 95년 5.31 개혁안을 제가 있을 때 시행했다. 나름대로 잘 만들어진 안이다.
-(교육부 장관과 총리로서의 역할 하시며 교육 개혁을 어떻게 평가하나) 제일 어려운 분야가 교육분야다. 학생이 1000만 명. 모든 가정에 다 교육생이 있다. 성인 50명 중 1명이 교육자다. 모두 대학 이상 학력 아니냐. 글 잘 쓰고, 말 잘 쓰고, 토론 잘 하는 분이 40만명이다. 한국 사회에서 유일하게 계층 상승할 수 있는 통로가 교육이다. 평가를 유일하게 안 받겠다는 게 교육계다. 그만큼 교육계는 개혁적인 정책에 대해 매우 갈등이 심하다. 현 교육개혁에 대해 방향은 잘 잡혔다. 하지만 이해관계자에 대한 충분한 동의절차, 설득이 더 필요하다. 방폐장 처리 문제를 봐라. 중저준위는 해롭지 않다. 하지만 그거 해결하는 데 18년 걸렸다. 그만큼 인식 바꾸는 게 힘들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볼 때 방향은 잘 잡혔다. 하지만 실천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제도권 정치로 들어갔다. 현재 상황에서 제도권 정치와 시민사회 일반의 영역이 어느정도 잘 소통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요즘 협치란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옛날에는 통치였다. 국민과 대화하는 과정에 국회, 시민사회가 있다. 시민단체와의 대화도 매우 많이 하는 편이다. 요구도 많다. 요즘 제가 추진하는 게 국민대통합 연석회의를 만들자는 것이다. 시민단체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정부 정책과 시민단체 사이 격차가 큰 점도 있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풀어가자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신뢰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실태를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아직 신뢰가 쌓인 것 같지는 않다. 서구와 비교해도 현재 한국 시민단체가 밀리지 않는다. 숫자와 이론적 수준 모든 면에서. 관점과 요구수준의 차이는 있어도 대화는 많이 한다.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 양육비용 감소를 통해 풀어야 하지 않나) 비용 문제도 있고 제도 문제도 있다. 보육을 가정에서 죽 해오던 문화적인 풍토를 가지고 왔다. 산업사회 핵가족화 된 가정의 문제로 바뀌었다. 직장생활과 보육을 겸하기 어려워졌다. 비용도 많이 늘어나 자기 소득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지금 2개를 같이 보고 있다. 제도상 보육 시설을 많이 늘려야 한다. 비용도 지원해야 한다.
-(노사관계에서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갈등 해소 방안은) 비정규직 비율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쪽으로 가고 있다. 그러면서 정규직 노조는 가장 경직된 나라다. 두 개가 모순이다. 차별을 시정하는 데 역점을 두되 시장 유연성을 높여나가려 한다. 노사 선진화법. 노동 시장 내 양극화도 해소해 나가면서 전체적으로 생산성 높여나가는 쪽으로 방향 잡아야 한다. 비정규직 차별 시정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그 방향으로 입법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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