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정 모르는 어릴 때 이야기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소위
‘캡짱
’이라는 친구들이 있었다
.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 그저 학교 친구들 중 소위 제일 싸움 잘하는 친구들을 그렇게 불렀었는데 아직 머리가 여물지도 않은 기껏해야 중학생들 눈에 멋져 보일 친구가 뭐 달리 있겠나
. 애들끼리 투닥투닥거리는 수준에서 힘 좀 세고 하면 캡장이니 뭐니 하면서 우루루루 몰려 다니곤 했었다
. 당연히 캡장이라 불리던 친구들은 어깨에 힘을 팍팍 주고 소위
‘꼬붕
’들을 데리고 다니곤 했는데 어느 하루 이변이 일어났다
.
키도 그냥 평균 키에
, 공부는 반에서 적당하게 상위권, 뭐
여러 가지로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는 온화한 친구였는데 소위 캡장과 시비가 붙은거다
. 캡장이란 놈이 그 친구를 손으로 툭 툭 밀어대면서 교실 뒷벽으로 밀어붙이더니 계속 욕을 했던 걸로 기억한다
. 그냥 거기서 끝냈으면 괜찮았을 텐데 하필이면 부모님 욕을
, 요샛말로 패드립을 시전했던 듯
.
난 사람이 날라다니는걸 그때 처음 봤다
.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발을
180도 위로 올려 차더니 턱 붙드는 캡장 멱살을 잡아 던지더라
. --;;; 말릴 틈도 없이 순식간에 교실은 난장판이 되었고 그거 뒷정리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
오렌더
A10을 듣다가 진짜 뜬금없이 그 친구가 떠올랐다
.
크기는 랙마운트식으로 말하자면 풀사이즈 1U사이즈에 가깝다. 얼핏 보면 깔끔하고 가벼워 보이는데 직접 들어보면 의외로 정말 무거운 편이다. 내부 사진을 보고 납득했는데 트랜스가 4개나 들어간다. 사진으로 봐서는 디지털부에 하나, 아날로그부에 3개가 들어가는걸로 보이는데 디지털 노이즈 차폐에 많은 신경을 쓴 걸로 보인다.
시스템을 연결하고 첫 곡을 틀었다. 첫 곡을 듣는 순간 주위가 조용해지는걸 느꼈다. 비슷한 가격대의 다른 기기들도 들어 봤지만 소위 하이엔드스러운 소리라는 측면에서는 오렌더를 따라갈 기기가 정말 흔치 않겠다는 느낌이다. 어떤 소스기기는 리듬감이 각별하고, 어떤 소스기기는 차가운 해상도가 좋고, 어떤 소스기기는 또 따뜻한 중역의 느낌이 일품이지만 오렌더는 이 중 어느 쪽게도 해당되지 않는다. 오디오 소스기기의 노이즈를 극한까지 제어해서 주변 잡음을 흡수하는 느낌까지 든다. 노이즈를 잘 제어하는 기기들이 자칫 차가운 소리를 내기 십상인데 오렌더는 그렇지도 않다. 하늘하늘한 고역을 낼 때는 너무나 부드럽게 요조숙녀같은 고역을 내주고 그런 대역이 음악에 없을 때에는 마치 대역폭이 애초부터 좁은 기기였던 것처럼 소스 파일에 수록되 있는 음만을 충실히 재생한다. 저역도 마찬가지다. 나는 내 오디오가 이렇게 퉁 하고 떨어지는 저역을 내 줄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오케스트라의 총주가 시작되기 전 악기의 독주가 연주될때는 마치 이 소스기의 대역폭이 저 악기의 대역폭인 것처럼 느껴지다가 총주가 울려퍼질 때 대역폭이 휙 하고 확장되어 공간을 지배한 뒤 총주가 끝나면 거짓말인 것처럼 그 소리들은 사라진다. 마치 그 사단을 내놓고 교실을 정리하다가 주변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던 그때 그시절 내 친구를 보는 느낌이었다.
‘정확하고 섬세한 소리’가 뭔지, 하이엔드 소스기의 미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오렌더. N10과 N100을 써보고 그 음질과 편리함에 이미 감탄했었지만 그에 이어 DAC를 포함하고 있는 A10역시 미사여구가 과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맥프로에 맥미니, 이런 저런 DIVX플레이어들에 PC를 튜닝해가며 PCFI를 꽤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했었는데 오렌더 기기들을 접할 때마다 ‘아 헛수고했구나 그동안’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용하시는 시스템이 하이엔드 초입정도 되신다면, PCFI의 불편함과 음악을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를 신경곤두섬에 지친 분이 계신다면 오렌더를 한번 만나보시라 권유드리고 싶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다니다 포닥 형태로 미국으로 떠나 지금은 미국에서 자리를 잡은 내 친구같은 매력적인 기기를 만나실 수 있을 것이다. 가격이 좀 되는 편이지만 최소한 한번 청음해볼 가치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