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시연회의 주인공인 앰피온 아르곤 3LS 스탠딩 플로어 스피커]
신화의 세계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작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유한한 능력과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무한한 능력과 불멸의 존재를 그려내고 이를 동경하는 것은 인간이 문명을 개척해오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서양 문화의 예술, 철학과 문학의 분야에서 마르지 않은 샘물의 역할을 해온 그리스 신화에서도 불멸의 신의 가공할 능력과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운명과 싸워나가는 인간세계의 영웅이 등장한다.
올림포스의 신 중의 신인 제우스는 신계의 확장과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수 많은 님프와 인간 여인들과 교합하여 자신의 혈육을 세상에 내 놓는다.
제우스는 때로는 백조로 또는 황소로 또는 사티루스로 변신하여 인간계의 영웅을 낳아 과업을 이루도록 하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존재가 헤라클레스라 할 수 있다.
제우스의 자식들 중 테베의 왕족의 여인인 안티오페와 교합하여 태어난 암피온과 제토스 형제는 신화의 세계에서 신성을 가진 비범한 인간이 그렇듯 태어나자 마자 산속에 버려져 양치기의 손에 길러진다.
고난의 운명을 지닌 두 형제는 성인이 되어 비참한 속박의 굴레에 묶인 어머니를 구해내고 그 적들을 죽여 복수를 이룬다.
암피온과 제토스 형제는 아테네, 스파르타와 자웅을 겨루게 되는 테베의 지배자가 되었고 4현금을 개량하여 7현금의 리라를 만든 암피온은 난공불락의 7개의 성문을 가진 테베의 성을 축조할 때 리라를 타서 울려 퍼진 소리가 돌들을 저절로 움직이도록 하여 성벽을 쌓았다고 신화에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암피온과 더불어 음악의 명인인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타면서 부르는 노래로 산천초목과 맹수를 감화시키고 폭풍우를 잠재우며, 지옥의 신인 하데스로 부터 죽은 아내를 데리고 나온 이야기를 되짚어 보면 음악이 가진 힘은 마력과도 비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한다.
[핀란드 앰피온사의 CEO 및 테크니컬 엔지니어인 Anssi Hyvönen]
이렇듯 신화가 가진 상상력을 핀란드의 오디오 제조사인 앰피온의 CEO인 안씨 히뵈넨(Anssi Hyvonen)이 채용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라 할 수 있다.
히뵈넨씨는 아르곤 3LS의 쇼케이스 시연회를 진행하면서 앰피온(영어식 발음)을 사명으로 채택한 에피소드를 간략하게 설명하였는데, 첫 번째, 음악과 관련된 단어, 두 번째 발음이 쉽고 좋은 어감, 세 번째 A로 시작하여 브랜드 리스트 중 앞쪽에 있을 것을 기준으로 정했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대한 돌들을 저절로 움직이게 한 마력과 성을 쌓는 정교함이 아마도 히뵈넨씨가 의도한 작명 센스가 아닌 가 싶다.
이러한 배경을 짐작하였을 때, 앰피온과 Finnish Magic이란 단어를 스피커의 론칭 쇼케이스의 카피 타이틀로 정한 수입원인 디앤오의 기획자의 의도가 절묘하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앰피온의 스피커는 세가지 면에서 매직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는, 스피커의 물리적인 우퍼의 크기와 캐비닛의 체적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저음역대의 실현이다.
쇼케이스 당일 주 시연기기로 선정된 아르곤 3LS는 2-way, passive radiator 구성의 6.5인치의 우퍼와 1미터가 채 안 되는 키를 가진 아담한 사이즈의 플로어 스탠딩 스피커이다.
그런데 저역이 무려 22Hz까지 떨어져, 소위 컴퓨터 게임 유저들이 이야기하는 사기 캐릭터 같은 스펙을 갖고 있다.
시연회의 마지막 곡으로 선정된 아론 코플랜드의 교향곡 3번의 4악장에 등장하는 주주제인 “보통사람들을 위한 팡파레”를 좀더 강력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편곡한 곡에서 트럼펫과 어울린 타악기군의 바닥을 울리는 저음을 들을 수 있었다.
둘째는 어떠한 공간에 두어도 청자에 도달하는 음향적인 에너지가 균일함에 가깝게 실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히뵈넨씨는 스피커와 청자간의 황금률 같은 트라이앵글 구도로 실현되는 스윗 스팟존이 아니더라도 좋은 음향을 들을 수 있도록 많은 연구와 시도를 하였다고 한다.
그 이론적인 토대는 그들이 주장하는 U/D/D (Uniformly Directive Diffusion)에 녹아 있다.
스피커에서 발산되는 음향의 에너지가 균일하게 방사되어 확산된다는 것인데 이날 시연회에 늦게 도착하여 뒤쪽의 한쪽으로 치우친 위치에 자리잡은 탓에 음향의 포커싱이 안 맞는 음악을 들을 것이란 생각을 하였는데, 히뵈넨씨의 목소리는 잘 안 들릴 때가 있어도 음악은 집중해서 듣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또한 아르곤 3LS는 베이스 리플렉스 구조를 대체한 패시브 라디에이터로 인해 벽에 가깝게 붙일 수 있는 설치의 자유도로 높아 생활공간에 어울리는 스피커란 생각이 들었다.
세째는 비싸지 않은 범용성이 높은 소재를 채택하여 제조 원가를 낮추고 좀더 많은 음악 애호가들에게 양질의 음향을 만들어내는 스피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현시점에서 스피커의 제조 트렌드는 첨단 소재의 채택에 있다.
스피커 유닛의 재료로 유독성이 강한 희귀 금속인 베릴륨, 보석중의 최고 보석인 다이아몬드, 도자기 성분의 세라믹 등이 고음역을 내는 트위터의 재질로 사용되고 있으며, 미드레인지와 우퍼에는 질긴 섬유의 대명사인 케블라를 넘어 방탄 섬유인 자일론,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의 수여와 관련 있는 꿈의 나노 물질인 그래핀 같은 첨단 소재가 유닛의 다이어프램으로 사용되고 있다.
훌륭한 소리를 내는 첨단 소재를 오디오 업계에서 마다할 이유는 없다.
다만 제조 공정이 까다롭고, 소재의 희소성에 따른 가격 상승에 의해 제조 단가가 올라가는 이유로 인해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소수의 오디오파일에게만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이와는 달리 앰피온은 좀더 보편성을 띄고, 소재의 가격이 합리적인 수준인 티타늄 (트위터)과 알루미늄 (미드 우퍼)을 채택하였고 전통적인 소재인 우드 베니어로 캐비닛을 제작하였다.
삼림과 호수의 나라인 핀란드는 풍부한 임산자원을 잘 활용한 걸출한 건축가이면서 공예 분야에서도 뛰어난 산업 디자이너인 알바 알토의 영향으로 나무를 활용한 가구 공예품들이 매우 뛰어난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자작나무 적층목을 트레이드 마크로 각인시킨 펜오디오와 함께 후발 주자인 앰피온은 평범한 각진 직육면체의 캐비닛을 만들지만 트위터와 미드 우퍼간의 절묘한 크로스오버 설정과 트위터와 결합한 웨이브 가이드를 통해 직진성이 강한 고음을 넓게 확산시키는 방법을 통해 룸 어쿠스틱의 한계를 극복하는 입체적인 음향을 선사한다.
또한 각 모델 별로 캐비닛과 그릴의 컬러를 8~10개의 베리에이션을 제공하여 공간에 어울리는 인테리어 측면을 제고하고 개인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옵션을 제공하며, 이를 위해 모든 공정을 핀란드에서 수작업으로 수행한다고 각종 브로셔에 공개하고 있다.
그리고 앰피온을 주목해야 할 한가지 이유가 더 있다.
앰피온의 CEO이자 테크니컬 엔지니어인 히뵈넨씨는 단순한 사업가를 넘어 자기만의 철학을 가진 음악의 전도사임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Music is Everyman´s right." 즉 음악은 모든 이들의 권리라는 것이다.
백야와 흑야가 번갈아 찾아오는 핀란드에서는 추운 겨울에 집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 수 밖에 없다.
인간의 풍부한 감성을 가꾸는 영양소인 음악은 핀란드 사람들에게는 각별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런 이유로 좋은 음향기기는 생활의 필수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히뵈넨씨에 따르면 핀란드의 청정한 숲은 대부분 사유지이나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음악은 자연환경과 같으며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속해 있다는 것이다.
공공재에 대한 공유의 정신과 모든 사람들이 차별 없이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차원에서 앰피온의 스피커는 이러한 이상에 걸맞게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있으며 가격 이상의 품질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Devialet Expert Pro 440 + Shunyata Research Anaconda Speaker Cable + Amphion Argon 3LS]
이날 시연회는 히뵈넨씨가 직접 진행하였으며 차분하면서도 앰피온 스피커가 가진 장점을 조리있게 설명하였다.
특히, 여성 참석자를 의식하여 복잡한 기술적인 설명을 대신해 오디오가 설치된 거실 공간과 떨어진 부엌에서도 음악을 잘 들리도록 스피커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어 이해를 돕는 제스처를 취하였다.
아르곤 3LS를 구동한 기기는 신형으로 완전한 재설계가 이루어져 약 10%의 출력이 오른 드비알레의 엑스퍼트 프로 440, 션야타 리서치의 아나콘다 스피커 케이블로 구성되었고 맥북의 음원을 플레이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Beck, Sea Change 중 “Paper Tiger”]
첫 번째 곡은 포스트 모던한 느낌이 드는 Beck의 2002년작 Sea Change의 수록 곡인 “Paper Tiger”로 시작하였다.
짧은 퍼커션 전주와 함께 나른하면서도 스토리텔링을 하듯 가라앉은 벡의 보컬은 평면적인데 반해 리버브가 걸린 일렉 기타의 끌림음과 일렉 바이올린의 하모니가 입체적으로 펼쳐져 자연스럽게 시연룸에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이 곡은 중간 간주 부분에서 일렉 기타의 깡글거리는 소리와 일렉 바이올린의 선을 그려가는 듯한 하모니가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데 공간감과 포커싱이 준수한 수준으로 느껴졌다.
[Kraftwerk, Tour de France 중 “Aero Dynamik”]
두 번째 곡은 전자음의 신세계를 개척한 독일의 Kraftwerk의 마지막 앨범이자 OST로 만들어진
2003년 작 “Tour de France”의 수록 곡인 “Aero Dynamik”이었다.
강한 비트가 걸린 신세사이저의 전자음과 하이햇의 착착 거리는 효과음에 더해 높낮이를 억제한 단조로운 보컬이 양념처럼 내레이션 되는 이 곡은 공간감을 극대화한 인위적인 전자음의 향연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지극히 디지털적이지만 결국 소리의 최종 출력은 아날로그 소자인 스피커를 통해 이루어진다.
앰피온의 아르곤 3LS는 어느 특정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올 라운드 플레이어의 면모를 들려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김윤아, 315360 중 “Going Home”]
세 번째 곡은 자우림의 멤버인 김윤아의 2010년작 솔로앨범인 “315360”에 수록된 “Going Home”이었다.
전주 없이 보컬로 시작하는 이 곡은 피아노와 보컬만으로 1분 40여초를 끌고 가는데 의외로 스피커로 내기 어렵다고 알려진 피아노 소리와 여성 보컬이 잘 어우러진 하모니를 들려주고 있는데, 음향뿐만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가사의 전달로 인해 곡에 집중하면서 청음 할 수 있었다.
[Trentemøller, The Last Resort, “Evil Dub”]
네 번째 곡은 덴마크의 일렉트로닉 뮤직 플레이어인 Trentemøller가 2006년에 발표한 획기적인 데뷔 앨범인 “The Last Resort”에 수록된 “Evil Dub”이었다.
음산하게 깔리는 배경음과 심장박동 소리 같은 비트음에 더해 간결하게 액센트를 주는 멀티 음향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을 들게 한다.
곡이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의 믹싱된 합성음이 차창에 흘러가는 풍경처럼 지나가는데, 인위적인 전자음향은 공간감을 확인하기 좋은 음향이라 선정한 것으로 생각해보았다.
다섯 번째 곡은 아론 코플랜드의 교향곡 3번, 4악장의 유명한 주제부인 “보통사람들을 위한 팡파레”를 트럼펫과 팀파니의 인상적인 하모니를 극대화하여 편곡한 곡이다.
이 곡의 대형 공(Gong, 징과 같은 타악기)과 거대한 베이스 드럼, 팀파니의 3 연타로 시작되어 지면을 울리는 거대한 음향의 압도적인 에너지를 느끼게 한 후, 4~5대의 트럼펫이 단순하지만 호소력 있는 주제부를 연주하면 호른에 이어서 트럼본이 합류하면서 타악기 군과 함께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가는 대중 친화력이 높은 곡이다.
보통 시연회에서 극단적인 다이나믹 레인지를 갖는 이 곡을 선정하여 초저음역과 관악기의 최고 음역을 동시에 펼쳐내 스피커와 앰프의 능력을 어필한다.
여기서 1미터도 채 안 되는 아르곤 3LS가 22Hz까지 떨어지는 저음역의 음향을 구사하는 마술 같은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연된 곡은 5곡이었지만 너무 짧지 않게 끊어 음악을 감상하면서 앰피온과 드비알레 콤비로 이루어진 기기의 진가를 판단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드비알레의 기기는 오디오랙이 아닌 월마운트나 스탠드 마운트도 가능한 디자인 컨셉을 갖고 있기 때문에 룸 어쿠스틱의 제한을 극복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앰피온의 스피커의 조합은 가정의 거실 공간뿐만이 아니라 대중이 모이는 라운지나 적당한 규모의 컨벤션 홀에도 어울리는 음향과 디자인 특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보았다.
음악이란 공공재를 즐기는 데 있어 경제적인 문턱을 낮추려는 히뵈넨씨가 이끌어가는 앰피온 같은 브랜드의 존재는 음악 애호가에게 있어서 다행스런 일이며, 골수 오디오파일에게도 설득력 있는 대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