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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좋았던 시절은 간다.. (검사들 얘기 있음)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05-10-18 18:18:21
추천수 0
조회수   794

제목

(펌) 좋았던 시절은 간다.. (검사들 얘기 있음)

글쓴이

이정복 [가입일자 : 2002-06-01]
내용




http://www.mediamob.co.kr/MediaMob/Article/ArticleView.aspx?PKId=13726



XX하기 좋은 시절은 갔다

산하 [ 2005-10-18 오전 8:03:56 ]



10년쯤 전, 저는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그 특산물이나 풍광을 소개하던 프로그램의 조연출 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팀 전체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가 오가는 와중에 사무실 '데스크'를 지키고 계셨던 윗분께서 둘러앉은 PD들에게 짜증을 냈습니다. "야 너희들은 왜 군수부터 안 만나는 거냐. 무조건 군수 방 문부터 차고 들어가! 나 서울 모 방송국에서 왔소 하면서 일단 군수부터 휘어잡아야 된단 말이야."



왕년에는 공중파 방송사 마크를 달고 지방으로 왕림하면 지역의 수령방백들이 설설 기는 시절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호시절을 당연하게 누렸던 윗분에게 군수 방 문을 뻥 차기는커녕 공보과장 명함 하나 제대로 못 받아내지 못하는 PD들이란 실로 게으르기 짝이 없으며 배짱 하나 부릴 줄 모르는 소심한 군상으로 비쳐졌던 겁니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지도 수 년이 지났을 때였고, 군사 정권이 문민정부로 바뀐 지도 또 몇 년이 흐른 시기였지만, 그 윗분의 상식으로는 방송 PD가 지방 촬영 가서 군수 하나 '휘어잡지' 못한다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한 PD가 조리 있게 그 동안 세상이 바뀌어도 많이 바뀌었음을, 군수가 아니라 군청의 공보과장도 맘대로 알현(?)하기 어렵게 되었음을 설명했을 때 그 윗분께서 끙 헛기침을 한 뒤 하셨던 말씀을 저는 쓰디쓰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방송하기 좋은 시절은 갔구만."



달리 생각해 보면 '방송하기 좋은 시절'이란 당연히 가야 할 일인지도 모릅니다. '방송하기 좋았던 시절'이란 방송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아니꼽고 짜증나며 두려웠던 시절의 이음동의어(異音同意語)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방송하기 좋은 시절'은 가을 바람과 함께 거의 사라진 듯하고 그 한탄조차 좀체 듣기 어려워진 요즘,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하기 좋았던 시절"이라는 관용어구를 별안간 자주 접하게 되어 사뭇 얼떨떨한 기분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얼마 전 만났던 한 사업가께서는 "기업하기 좋았던 시절"에 대해 절절한 회고를 토로하시면서 그때가 다시 와야 대한민국이 산다고 열변을 토하셨지요. 그 열띤 호소를 건성으로 들어 넘겼던 이유는 바로 그분이 말씀하시는 "기업하기 좋았던 시절"에 대한 의문의 여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값싼 노동력이 흘러 넘쳐서 주면 주는 대로 받고, 맘에 들지 않으면 수시로 사람을 '짜를' 수도 있었고, '강경 노조'같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던, 그리고 노동법이나 근로기준법 따위는 신경 꺼도 좋았던 시절과 그분의 "좋았던 시절"이 오버랩되는 것은, 그리고 그 사장님과 "군수 방 문을 차고 들어가라"고 하던 제 윗분이 겹쳐 보였던 것은 저의 착시 탓이었을까요.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에게 수사 지휘권을 행사하고, 이에 맞서서 검찰총장이 사퇴를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요 며칠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검찰의 위기"라며 비분강개하는 검사님들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법에 관한한 문외한인 자로서 법무부장관의 수사 지휘권에 대해서 뭐라 할 처지는 아닙니다만, "검찰의 위기"를 말씀하시는 검사님들께 여쭈어 보고픈 말은 있었습니다.



도대체 지금이 위기라고 한다면 도대체 검찰이 '좋았던 시절'은 언제였냐고 말입니다.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든 없든 그를 따지지 않고 사람을 잡아 가두고 자기 마음 내킬 때 "불러서 조졌던" 시절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는 것인지, 소설 ‘태백산맥’조차 국기를 흔드는 위태로운 이적표현물로 몰아세웠던 열정이 그리운 것인지 측량하기 어렵지만, 그분들의 "좋았던 시절"이 한없는 두려움으로 기억되는 저로서는 그분들의 '위기'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법무부장관의 불구속 지휘에 검찰의 '위기'를 부르짖는 분들이 바로 멀지 않은 과거에 상부의 구형량 지시를 꼬박꼬박 이행했던 이들이며, 하늘 나는 새들을 대공포로 쏘아 떨어뜨리던 위세로 수많은 인신을 자의적으로 구속하는 위세를 부렸던 바로 그분들임을 저는 알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형사소송법 70조는 인신의 구속 요건을 3가지로 규정합니다. 주거가 일정치 않거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거나 도주 우려가 있는 경우로 말입니다. 사상 초유의 법무부장관의 '불구속 지휘'는 바로 문제의 인물 강정구 교수님의 행적이 위 3가지와 해당사항이 없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거니와, 적어도 앞으로 구속 요건을 충족하지 않고는 제아무리 어려운 사법고시에 패스한 검사 영감님들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인신을 구속할 수 없다는 경종일 것입니다. 즉 법보다는 맘 내키는 대로 사람을 붙들어 매고 죄인을 만들 수도 자유를 줄 수도 있었던 검사들의 "좋았던 시절"이 가고 있으며, 다시 오기 어렵다는 이야기이겠지요.



빛나는 왕년을 추억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빛의 발치에서 아늑한 삶을 즐긴 이들이라면, 그 빛을 밝히기 위해 존재했던 어둠의 기억을 되짚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또 누구에게든, 어떤 특권 집단에게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는”세월은 결코 다시 오지 않음을 깨닫는 것 또한 “**하기 좋은 시절”을 목놓아 추억하는 이들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숙제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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