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사업으로 인기가 수직상승하더니 다시 경부운하 건설 구상을 내놨다. 노들섬 오페라하우스까지 포함하면, 청계천 한강 낙동강에 토목·건축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 청와대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겠다는 심산인 듯하다. 이 시장은 “대선주자들 공약 경쟁이 시작됐다”는 식의 언론보도에서 단연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국토 훼손’과 ‘민의 왜곡’의 우리 선거사가 일찌감치 재발하고 있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그로서는 “선거에서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해 국민적 동의를 받는 게 뭐가 잘못됐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함께 대통령 선거사를 한번 뒤돌아보자. 1987년 민주화 항쟁의 민의가 선거에서 뒤집힌 데는 ‘양김 분열’의 책임이 컸지만, 노태우 후보가 팽팽한 삼파전의 승자가 된 것은 경부고속철도와 새만금 간척사업 등 전국적으로 쏟아부은 장밋빛 개발공약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업 타당성과 재원을 따져보는 일은 오로지 ‘대권 쟁취’라는 구호 앞에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설령 타당성이 있다 하더라도 공약으로 조기 발표되는 국책사업은 땅값과 사업비 상승으로 종종 사업 자체를 빚더미에 올려놓는다. 선거 때마다 말이 되건 안되건 개발공약을 내놓는 후보들이 판치는 것은 선거쟁점 한가운데 서게 되는 ‘이슈 선점 효과’로 인지도가 급상승하기 때문이다.
공약으로 제시된 사업은 추진 과정에서 곧잘 더 많은 저항에 부닥친다. 선거 앙금으로 ‘무조건 반대 세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몇몇 선거참모에 의해 급히 삽입된 노무현 후보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국토 균형개발 명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도 한 사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 사회 더 큰 이슈들이 선거라는 가장 큰 정치행사에서도 국가적 의제로 떠오르지 않고 묻혀버린다는 점이다. 유권자들을 현혹하는 개발공약에 가려 빈부격차 해소나 사회복지체제 강화, 조세체계 개편처럼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이슈들이 선거쟁점이 되지 못해 선거를 통한 국민의 정책참여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현대건설 사장을 하면서 독일 라인강 운하를 보고 경부운하를 구상했다”며, “파내는 모래와 자갈로 공사비 50%를 충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필자도 라인강변을 드라이브하면서 꼬리를 물고 오르내리는 바지선들을 곁눈질하며 부러워한 적이 있다. “수레 백 대가 배 한 척보다 못하다”고 하던 실학자 박제가의 식견이 독일에서 실현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그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영국에서였다. 배의 나라인 영국에도 거미줄처럼 운하가 연결돼 있지만, 관광용 정도로 이용될 뿐 산업동맥으로는 기능이 정지됐다. 대륙에서 발원하는 긴 강이 없고, 국내 물동량이 있어도 육로나 바다를 이용하는 게 더 편리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교통수단 발달로 섬나라와 반도국은, 중국이나 유럽 대륙과 달리, 내륙수운의 이점이 사라졌음을 말해준다. 잉글랜드는 평탄하기나 하지만, 한국은 수많은 댐과 갑문을 설치해야 한다.
‘하면 된다’는 개발 연대 사고방식으로는 ‘개발은 개선’이고 ‘그대로 두는 건 방치’다. 조개들 숨쉬는 고운 모래톱도 조약돌 깔린 여울도 골재 채취장으로 보인다. 경부운하가 건설된다면, 먼 훗날 ‘한강-낙동강 복원사업’을 공약으로 내거는 대통령 후보가 나올지 모른다. 개발 연대에 상처난 국토를 보듬어주는 데 힘쓰겠다는 후보, 화려하지 않더라도 전임자 공약 뒤치다꺼리하겠다는 후보, 큰 토목사업 벌이는 대신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적자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는 후보. 그런 대통령 후보 어디 없나? 이봉수/런던대 박사과정·경제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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