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S150L 사용기를 쓰기에 앞서 저의 옛날 얘기 좀 할까요?
제가 턴테이블을 난생 처음 본 때는 국민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이었습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기 때문에 예배 시간을 알리는 차임벨 대신 캐럴을 틀어달라는 목사님의 부탁으로 제가 교회의 오디오방송 기기를 처음 만져보게 된 것이죠.
목사님께서 알려주신 순서대로 기기를 조작해서 카셋트덱크로 캐럴을 틀고 곡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처음보는 오디오 기기들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 중에 가장 호기심이 일었던 기기는 턴테이블이었습니다.
어떤 회사의 무슨 모델이었는지는 모르나, 나무로 된 플린스에 S자형 톤암의 달려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무슨 이유인지 전축바늘(카트리지)이 달려있지 않아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텐테이블랙 밑에는 크리스마스 캐럴 음반과 찬송가 음반이 10여장 정도 있었던 듯 합니다.
캐럴 음반 재킷을 살펴보다보니 마을에 울려퍼지는 캐럴이 마치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방송되는 캐럴이 그 음반을 녹음한 것이었겠지요.
제가 다니던 교회는 그 옛날의 교회 대부분이 그러했듯이 고딕양식을 흉내낸 뾰족한 첨탑과 스텐인드글래스가 있어야 어울릴 듯한 아치형의 창문, 그리고 빨간 지붕과 하얀 벽을 한, 마을 중심의 언덕 위에 있던 작은 시골교회였습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밤에, 언덕위의 작은 교회에서 밤하늘에 울려퍼지던 아름다운 캐럴...
턴테이블을 처음 만난 날 이러한 이미지가 낙인처럼 제 뇌리에 박혀버리게 되고, 이후 턴테이블에 대한 로망이 제 마음 깊은 속에 자리 잡게 됩니다.
나중에 진짜 턴테이블 소리를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몰래 오디오실에 들어가 LP를 플레이 시켜놓고 전축바늘이 아닌 옷과 이불을 꿰메는 바늘로 소리골에 대보는 무지막지한 만행을 저질러 보기도 합니다. (철없는 사고뭉치 사내아이들은 가끔 엉뚱한 사고를 저지르기도 하지요...)
어쨌든 이 때 처음 본 턴테이블의 영향인지 턴테이블은 반드시 나무로 된 플린스에 톤암은 S자 형태여야 한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 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턴테이블을 한동안 잊고 지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들어간 하숙집에서 인켈 오디오로 다시 재회하게 됩니다. 어릴 때 상상만 하던 LP소리를 직접 처음 듣게 된 것이죠.
2층 집 전체에 울려퍼지던 ABBA의 ‘Move on’의 아름다운 소리는 그 때까지 모노스피커의 카셋트 플레이어로만 듣던 제게 큰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이 때 내가 돈을 벌게 되면 턴테이블을 꼭 사야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합니다.
그러나 하숙과 자취를 전전하던 가난한 고학생에게는 그 날이 너무나 멀기만 합니다.
돈이 없어 하숙을 나와 다시 자취를 하다 힘들어서 다시 들어간 하숙집에도 전축이 있었습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눈치도 없이 그 턴테이블에 함부로 손을 대는, 이번엔 매우 무례한 만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나중에 하숙집 친구로부터 턴테이블에 함부로 손을 대서 미움받고 있다는 조용한 충고를 받고, 두 번 다시 다른 사람의 오디오에 손대지 않게 되는 큰 교훈을 얻습니다.
그 때부터 언젠가는 내 오디오를 사고야 말겠다는 희망과 의지를 다지다가 음악이 듣고 싶을 땐 점심값을 아껴 음반을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모은 음반들은 리어카로 하숙집과 자취집을 전전하면서 이사할 때 제일 먼저 소중하게 챙기는 보물들이 되지요. 오디오가 없어서 음악을 듣지 못하면서도 하나씩 늘어나는 음반쟈켓을 보면서 행복했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음반만 사모으다가 10여 년 후에 드디어 나만의 오디오를 사게 됩니다.
첫 월급으로 부모님께 빨간 내복을 사 드린 이후 다음 월급을 모아 첫 번째로 스피커를 사고, 다음 월급 모아 앰프를 사고, 다음 월급 모아 CDP를 사고.... 또 다음 월급으로 튜너 사고....그 다음에 스피커케이블과 인터케이블 사고 나서야 비로소 음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턴테이블은 왜 안 샀냐구요?
턴테이블을 사기에는 돈이 너무 모자랐습니다.
알고보니 턴테이블만 사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원하는 모델들은 톤암을 따로 사야되는 것들이었고, 게다가 카트리지, 포노앰프, 승압트랜스, 포노전용케이블 그 외에 LP액세사리 등등 사야할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게다가 괜찮은 것들은 하나하나 값이 만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턴테이블 구입은 또 다시 미루어졌고 나중에 록산 XERXES 턴테이블을 할부로 구입했으나.... 구입한 날 파워서플라이를 태워먹어 하루도 써보지 못하는 비극을 경험합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LP에서 CD로 전환하는 시기를 맞아 싸게 나온 LP12를 구입해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리고 사용의 편의성에 따라 CD나 무손실 음원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LP를 멀리하게 됩니다.
포노앰프 사용기에 쓸데없는 개인의 옛날 얘기를 왜 이리 구질구질하게 늘어 놓았냐구요?
그 이유는 VAS150L 포노앰프가 아날로그에 대한 저의 향수를 자극하는 소리를 내준다는 말 한 마디를 해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제가 턴테이블에 대한 꿈을 키우면서 음반을 하나하나 모으던, 고생스러웠지만 아련한 옛추억을 떠올리면서 그 음반을 다시 듣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고 말입니다.
우선 모양새를 보면요.
외관 사진은 아답터를 포함해서 간단히 찍었습니다.
외관사진은 와싸다 관리자께서 기막히게 찍으신 게 있으니 더 자세한 사진은 판매페이지를 보시면 좋겠습니다. ^^;
집성목 재질의 목재케이스에 들어가 있는 모습입니다.
크기는 가로172×높이113×깊이192mm입니다.
집성목은 멀바우(merbau)입니다. 조직이 약간 거칠기는 하나 절삭공구를 무디게 할 정도로 단단하고 내구성이 큰 목재여서 주로 가구, 창문틀, 수납장, 마루, 악기 등에 쓰이는 목재입니다. 그리고 천연적으로 자체 방부효과가 있어 방부처리를 하지 않아도 방부목과 유사한 성능이 있는 목재입니다.
품질이 좋은, 그리고 가공하기 어려워서 인건비가 높은 목재를 사용했군요.
개인적으로 접합방식이 사이드 핑거조인트 방식이라 접합부분이 좀 눈에 거슬리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이걸로 트집을 잡는 건 무리인 듯 합니다.
그리고 나무 표면의 거친 부분을 우드필러로 메꾼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우드필러가 아니라 멀바우 목재의 특성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희미해진다고 하네요.
어쨌든 외관은 참 매력적입니다.
특히 여자들에겐 더 예뻐보이나 봅니다.
아이들과 아내가 외출한 틈에 몰래 박스를 개봉하고 있는데, 아뿔싸! 예고없이 아이들과 아내가 들어와서 현장을 딱 걸렸습니다. ㅠ.ㅠ 뭐 어차피 나중에라도 들통날 일이지만 박스개봉 현장을 걸리니 참 난감했습니다.
딸과 아내가 "아빠 뭐 또 샀어?" "자기 뭘 또 산거야?"하며 동시에 날카로운 눈초리로 매섭게 쏘아보다가 박스에서 포노앰프를 꺼내자마자 감탄성이 나옵니다.
"우와 그거 예쁘다~", "어? 그거 뭐야? 뭔데 되게 예쁘다!" 하면서 신기하게 쳐다봅니다.
아내와 딸이 예쁘다고 하면서 타박받던 일이 저절로 해결이 되네요. 헐~
뒷면입니다.
무슨 일인지 시리얼 번호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입출력단자가 금도금이 아니네요. @.@
제작비를 낮추기 위해서인가요? 아쉽기는 하지만 가격대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긴 합니다....ㅜ.ㅜ
나무케이스에서 분리한 모습입니다. 뒤에서 슬며시 힘을 주어 밀면 빠집니다.
나무케이스를 잘 보시면 본체와 결합을 위한 양면테이프가 붙어있습니다.
본체 상단위에 진공관열기 배출을 위한 환기구가 있습니다만 나무케이스에 끼우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그러나 사용상의 문제는 없어보입니다.
12AX7을 두 알 사용하는데도 많이 뜨겁지 않습니다.
1~2시간 사용하고 전면 알루미늄 패널에 손을 대 보아도 뜨뜻 미지근한 정도입니다.
6~8시간을 켜 놓아도 역시 따듯한 정도이지 뜨거운 정도는 아닙니다.
예전에 쓰던 A급 포르테파워는 정말 뜨거웠는데 말이죠.
아답터 사진입니다.
정격출력 DC12V 1A입니다.
랙에 설치한 모습입니다.
원래 나무케이스 하단에 고무다리가 있지만 랙에 들어가질 않아서 고무다리를 빼고 넣었습니다. 진공관인데도 밤에 보아도 전면패널 유리창에 진공관 불빛이 잘 안보입니다. 좀 아쉽네요.
보우어쿠스틱 카페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벌겋게 달아오른 진공관 사진과는 너무 다른 듯 한데... 이게 정상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나무로 된 제 턴테이블의 플린스와 보우포노앰프의 나무케이스와 잘 어울려 보여 흐뭇합니다.
그래서 소리는?
오디오는 외관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역시 소리죠.
사용기에서 이 부분이 제일 중요한 부분인 만큼 말씀드리기가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전에 제가 쓴 헤드폰 사용기를 제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이신 분이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제까지 몇 백, 몇 천씩 나가는 고가, 고성능의 포노앰프는 귀동냥으로 잠깐 들어본 게 전부이고 제대로 들어본 것은 지금 구입한 VAS150L을 포함해서 겨우 3개뿐입니다.
고성능의 고가 포노앰프를 쓰시는 분들께서는 이 보우포노앰프의 소리가 좋다고 하면 피식하시겠지만 제 기준으로 보아 정말 좋은 소리를 내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가격대를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포노앰프라고 생각합니다.
작금의 포노앰프 시장이 일부 초고가를 제외하고 엔트리급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가격은 엔트리급인데 소리는 미들급 이상이 되지 않을까한다면 말이죠.
보우 포노앰프의 소리를 짧게 표현 한다면 LP의 소리골에 있는 사운드를 최대한 많이, 그러면서도 곱게 뽑아준다는 느낌입니다.
진공관을 사용한다는 것과 나무케이스를 사용한 외관상으로 판단하면 그저 그런 따스하면서도 구수한 진공관 소리가 날 듯 합니다만, 오히려 사운드의 전체적인 특성은 쿨앤클리어의 현대적인 느낌이 더 강합니다.
무대감도 전에 쓰던 프라이메어 R20보다 더 크게 그려주고 있으며, 청감상 고역에서 저역에 이르기까지의 스펙트럼도 더 넓은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악기 간의 구별도 더 잘 느껴지고 악기간의 위치도 더 잘 느껴집니다.
이러한 현대적인 사운드 속성 탓에 소리가 차갑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광대역의 소리를 다 내주는 해상력 높은 현대적인 소리면서도 온기를 품은 소리입니다.
이게 말이 되는가 싶지만 실제 그렇게 들립니다.
그리고 고역이 곱고 달콤하게 들립니다. 바이올린 소리도 곱지만 특히 관악기의 고음은 정말 달콤하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고역 특성 때문에 프라이메어 R20에 비해 살짝 착색이 들어간 듯 느껴지기도 합니다.
반대로 보면 프라이메어 R20의 소리가 중후하면서도 담백한 소리로 표현할 수도 있겠군요.
대편성의 교향곡, 피협, 바협 등의 총주에서 악기 소리가 뭉치면 정말 듣기 힘든데 VAS150L은 이 부분에서도 악기들을 각각 분리해서 표현하는 실력이 상당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으로 LP기기들은 험이나 노이즈에 취약한 경우가 많은데 이 포노앰프는 매우 정숙합니다. 험이 하나도 안 느껴지는게 신통해서 93DB이 넘는 풀레인지에 물려봤는데도 험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가격에 상관없이 LP의 궁극적인 소리를 추구하시는 초하이엔드 유저가 아니고, 주머니를 생각하면서 아날로그의 맛을 느껴보시려는 분들에게 이보다 더 가성비가 좋은 포노앰프가 또 있을까 싶은 좋은 포노앰프라는 말로 길고 지루한 사용기를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VAS150L 포노앰프를 구입하고서 처음부터 사용기를 쓰는 지금까지 줄창 LP만 듣고 있습니다.
요즘 LP 듣는 재미가 정말 좋네요.
이렇게 밤에 조명으로 분위기 내면서 음악을 들어요...ㅎㅎ
*시청기기
턴테이블 : LP12 (플린스 리폼)
톤암 : JELCO 750D
카트리지 : 데논 D103, 오디오테크니카 AT-OC9
승압트랜스 : 오르토폰 T20MK2
포노케이블
- 톤암→승압트랜스 (젤코 JAC-502)
- 승압트랜스→포노앰프(JM오디오Trinity OCC Jr),
- 포노앰프→프리앰프(JM오디오 Exceed OCC RCA)
* JM오디오 케이블이 참 좋습니다. 소리도 좋은데 가격도 착하고 차폐도 충실한 좋은 케이블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