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같은 3일의 연휴가 계속되는 휴일의 새벽입니다.
이 새벽시간에 난데없이 자유게시판과 시사게시판에서 '동시패션'으로 논쟁인가, 말싸움인가가 치열하군요.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심기가 왠지 모르게 가파라져가고 불편해져가는 세태의 반영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무수히 널린 인터넷커뮤니티들가운데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소중한 와싸다커뮤니티가 혹 변질되는 것은 아닌지...안타깝고 조심스럽습니다.
아주 간곡하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내미는 강준만교수의 노무현비판 글 하나를 올려 봅니다.
노무현정권의 알파와 오메가는, 모두 아다시피 개혁, 구태들로부터의 혁명...그 정도일 겁니다.
그 질풍노도같은 개혁바람속에서 인간은 어디쯤에 있으며, 그 인간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되는지...
문득 문득 되묻고 싶은 심정입니다.
멋지고 알찬 연휴시간들 되시길...^^
[강준만의 세상읽기]
언론의 ‘노무현 때리기’를 스타일에 대한 공격으로 본 남재일씨와의 대화
보수·진보 구분없는 비판의 실체는 독선과 일관성 결여에 있지 않나
내가 탐독하는 <한겨레> ‘책·지성 섹션’(9월16일치) 표지에 ‘노무현 때리기’는 유행병?” 이라는 제목의 기사 소개가 실렸다. 본문을 찾아봤더니 문화평론가 남재일이 쓴 “노무현이 까닭 없이 싫다는 당신”이란 제목의 글이었다. 이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데 읽고 나서 대화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논쟁’이 아닌 ‘대화’ 말이다. 그것도 가능하면 화기애애한 대화다. 그래서 남재일씨께 편지 형식을 빌려 이 글을 쓰기로 했다.
‘독선’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
남재일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남 선생님의 글은 제게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 점에 감사드립니다. 물론 저로선 동의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았습니다만, 그게 논쟁을 할 성격의 사안은 아니라고 봅니다. ‘지지’도 ‘비판’도 아닌 중간적 입장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입장에서 남 선생님이 다른 기회에 이 주제로 글을 쓰시거나 말씀을 하실 경우 보완해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남 선생님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한 연구에서 노무현 대통령 시기의 언론 보도를 분석해보니, 비판의 요지가 ‘정치적 투박함’에 해당하는 기사가 이전 정권에서는 거의 제로인데 노 정권은 20%에 달했다면서요. 남 선생님은 “이런 비판의 행태는 까닭 없이 싫은 사람을 대할 때 흔히 나타나는 태도”라고 지적하면서 정신과 의사들은 이 상태를 ‘히스테리’라고 진단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면서 “확실히 ‘노통 때리기’에는 집단 히스테리 징후가 농후하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만난 한 기자의 말을 인용해 “요즘 노무현 조지는 글 안 쓰면 바보 취급하는 분위기가 있다”고도 했습니다.
남 선생님의 위와 같은 말씀엔 어느 정도 동의하면서도, 달리 볼 측면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남 선생님이 말씀하신 ‘정치적 투박함’엔 ‘독선’도 포함되겠지요? 독선은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스타일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게다가 그 독선이 자신에겐 너그럽고 남에겐 엄격한 이중 기준의 지배를 받고 있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은 노 대통령의 독선을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노 대통령은 선과 정의를 대변하는 분일 테니까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노 대통령을 매우 독선적인 사람으로 본다는 거지요. 그들이 악과 불의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라면 노 대통령의 독선은 옳겠습니다만, 그렇게 보기도 어렵거니와 노 대통령은 최근 대연정을 역설하면서 사실상 선악 이분법을 버릴 것을 지지자들에게 호소하지 않았습니까?
독선뿐만 아니라 일관성도 문제가 될 겁니다. 그간 노 대통령은 일관성이 없거나 약한, 또는 그렇게 보일 만한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물론 발언의 선의와 취지를 헤아려 거시적으로 보자면 다 일관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보통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할 때엔 일단 이심전심의 가능성은 배제하고 구체적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의미하는 게 아닐까요? 바로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나타납니다. 지지자들은 이심전심의 원리를 적용해 노 대통령의 발언을 늘 아름답게 해석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노 대통령이 가볍거나 무책임하다고 본다는 거지요.
기회주의적 비판과 무조건적 지지
물론 언론이 지도자의 큰 걸 놓치고 ‘행태적 투박함’을 물고 늘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요. 그러나 남 선생님도 기자 생활을 오래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언론의 속성이나 생리가 어디 그런가요? 지도자뿐만 아니라 유명 인사들은 언론의 그런 속성을 염두에 두고 처신해야 하지 않을까요? 언론의 그런 바람직하지 못한 속성을 바꾸려는 언론개혁이라는 장기 과제와는 별도로 그런 처신이 과도기적 대응으로나마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물론 소신에 따라 달리 행동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결과로 나타나는 언론의 행태에 대한 모든 책임을 언론에만 묻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거지요.
남 선생님은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을 “무조건 싫다”와 “원론은 맞는데 각론이 싫다” 두 유형으로 분류하셨습니다. 전자는 보수언론이 집권 초기부터 고수하던 전략이고, 후자는 개혁세력 내부나 지식인들이 노 대통령을 대하는 흔한 태도인데, 여기서도 말투나 스타일에 대한 지적이 많다고 하셨지요. 또 이들의 속내는 전자가 “내 밥그릇 축낸 당신이 정말 싫다”라면, 후자는 “밥 숟가락 놓고 개혁에 동참하라는 당신이 불편하다”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하셨지요.
이어 남 선생님은 전자가 노 대통령을 ‘닥치는 대로 조져대’고 나면, 정세를 관망 중이던 “각론이 싫다”파가 ‘가장 안전빵=미적 취향 비판’으로 가닥을 잡고 편승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졸고 있던 관객들이 얼떨결에 박수를 치며 마침내 토네이도가 발생한다”면서 “어쨌거나 대통령 비판이 밥줄 걸던 거사였음이 얼마 전인데 어떻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놀라움을 표현하셨지요.
논지를 살리기 위해 일부러 뺀 걸로 이해합니다만,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은 그 두 가지 유형 이외에도 많이 있지요. <한겨레>와 <경향신문>에도 노 대통령을 비판하는 글은 자주 실리지 않습니까. 여기에 민주노동당 관점의 비판도 만만치 않지요. 그런데 흥미롭고도 안타까운 건 개혁·진보파의 노 대통령 비판과 보수신문(조·중·동)의 비판 중 비슷한 내용이 의외로 많다는 겁니다. 예컨대 대통령의 인사나 정략적 행위를 비판함에 있어 보수·진보의 차이는 불필요하겠지요.
‘대통령 비판이 밥줄 걸던 거사였’던 건 1987년 6월항쟁 이전까지의 일이지요. 노태우 정권 때도 대통령 비판은 자유로웠고, 김영삼·김대중 정권 때는 더욱 자유로웠지요. 김대중 정권 시절, 김대중 대통령은 보수신문한테 아무리 두들겨맞아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잘했다거나 옳다는 게 아닙니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이 조·중·동에 대해 화끈한 자세를 취하는 것에 지지를 보낸 사람이랍니다. 다만 과유불급은 지적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제가 말하려는 건 보수신문의 ‘대통령 때리기’가 노무현 정권 들어서 생긴 일도 아니며, 노 대통령은 보수신문에 대한 화끈한 대응으로 얻는 게 있는 만큼 잃는 게 있다는 균형감각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남 선생님은 정세를 관망 중이던 “각론이 싫다”파가 ‘가장 안전빵=미적 취향 비판’으로 가닥을 잡고 편승한다고 하셨는데, 그런 점도 없진 않겠습니다만 개혁세력 내부 비판의 주된 흐름을 ‘미적 취향 비판’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또 그들의 비판을 ‘기회주의’로 보셨는데, 그것이 정반대의 기회주의보다 더 심하다고 볼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잘 아시겠습니다만, 무슨무슨 위원회의 위원 자리라거나 정부 및 공적 프로젝트 수주 등 이해관계 때문에 평소 행태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면서 노 대통령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표명하는 지식인들도 많거든요.
‘국민들의 권위주의 의존증’ 정말일까
“졸고 있던 관객들이 얼떨결에 박수를 치며 마침내 토네이도가 발생한다”는 말씀은 노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20%대의 낮은 지지도를 설명하는 말씀처럼 들리는군요. 남 선생님은 ‘국민들의 권위주의 의존증’도 지적하셨는데, 이는 국민이 노 대통령의 탈권위 행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뜻인가요?
그런 점이 없진 않겠지요. 실제로 노 대통령과 조기숙 청와대 홍보수석도 그런 취지의 발언을 했지요. 그러나 그분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와 대통령 탄핵 사태에서 나타난 민심을 극찬했던 과거를 상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국민이 대통령에게 ‘시대를 앞서가는 선구적 지식인’의 모습까지 기대한다면 더욱 좋은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건 부당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남 선생님은 “‘노통 때리기’를 추동하는 또 다른 요인 하나는 기득권을 누리던 언론의 불안이다”라고 지적하면서 “과거 권언유착의 혜택이 급진적으로 단절된 데 대한 일종의 금단 증상이고, 직접 표출하기 어려운 그 불쾌감이 ‘노통 때리기’에 영향을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진단엔 흔쾌히 수긍합니다. “그게 전부다”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영향을 준다”라는 선에서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어 남 선생님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 것에 대해선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맞장구를 치는 사람이 누구인가? 권력이라고는 군사정권과 그 아류밖에 경험한 게 없어서 제왕적 대통령의 허우대와 허세를 품위라고 생각하는 권위주의 의존증 환자들 아닌가. 이들은 후진 국민일수록 위대한 지도자를 동경한다는 사실, ‘노통 때리기’가 30년 묵은 권위주의의 종양이 터지면서 흘러나오는 고름이라는 걸 깨달을 필요가 있다.”
저는 이 말씀은 노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이 왜 노 대통령을 사랑하는가에 대한 답은 될 수 있을지언정, 냉정한 현실 분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근현대사 100년 넘게 늘 지배권력에게 당하고만 살아온 한국 민중에겐 아나키스트 품성이 강하지요. 저는 그 품성이 궁극적으로 가져다줄 무한한 개혁 역량을 신뢰하는 편입니다만, 그것이 곧장 현실정치에 대한 평가에 적용되는 것엔 반대하는 편입니다. 무엇보다도 차원의 괴리로 인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 오류는 성공을 어렵게 만들지요.
노 대통령의 탈권위, 해체 행보가 가져다준 신선한 충격은 그 자체로서 예찬될 가치가 있겠지만, 그 일을 위해 과거를 폄하하는 것에 대해서도 저는 반대합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용어는 1996년 김영삼 정부 시기에 국내에 수입되었고, 김대중 정부 시기에 본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보수신문들이 과거 독재정권을 정당화하면서 민주정권을 흠집 내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지요. 고려대 최장집 교수가 잘 지적했듯이, “미국의 사례와 달리 이 비판적 담론은 대통령이 실제로 제왕적일 때가 아니라, 대통령이 너무나 허약할 때 이를 더 허약하게 만드는 담론으로 사용되었고, 자유주의파들이 보수파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무기로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노무현이 더 권위적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노무현 정권 들어서 노 정권 사람들이나 지지자들이 보수신문들의 그 용법을 그대로 흉내내더군요. 노 대통령의 치적을 이전 대통령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용도로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제왕적 대통령’으로 몰고 있다는 거지요. 이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김영삼·김대중 정권을 군사정권의 아류로 규정하고 그 정권 치하의 국민들을 ‘권위주의 의존증 환자’로 보는 것에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대통령 되기 이전의 노무현에 대해선 누구 못지않게 그의 탈권위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사람이기에 남 선생님의 선의와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만, 대통령 이전과 이후는 달리 보아야 하며 이건 국민을 폄하하기보다는 겸손한 설득이 필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지도자가 말을 아껴야 한다는 건 ‘권위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가 갖는 무게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복잡한 문제들을 경계한다는, 지극히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수준의 문제 제기가 아닐까요? 말을 아끼지 않아 빚어지는 문제를 단지 ‘투박함’이라는 ‘미적 취향’의 문제로 넘길 수 있을까요?
‘허우대와 허세’라는 말씀을 잘하신 것 같습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에 바로 그 점에선 권위주의 중독증 환자였는지는 몰라도, 민주주의 절차의 구현에선 노무현 대통령이 그들보다 더 권위주의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으셨는지요? 노 대통령에겐 개혁이라는 명분이 있고 지지자들과 직거래를 하고 늘 자신을 던지는 자세를 취하기 때문에 그게 잘 안 보일 뿐, 이른바 ‘위임 민주주의 대통령’의 성격이 더 강할 수 있다는 거지요.
남 선생님! ‘노무현 때리기’가 유행병이라 하더라도, 저는 노 대통령과 지지자들이 그 유행병의 책임에 동참하는, 성찰의 문화가 꽃피기를 바랍니다. 저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엔 반대했지만, 노 대통령이 대연정의 원리로 역설한 ‘화합과 포용’의 정신엔 뜨거운 지지를 보냅니다. 제 딴엔 ‘화합과 포용’의 정신을 역설하고 싶어 이 글을 썼습니다만, 또 누군가를 화나게 만든 건 아닌지 염려됩니다. 다만 남 선생님만큼은 이 글을 유익하게 읽으셨기를 감히 기대해봅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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