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와 언론의 연합으로 48%의 득표율을 보인 자민당이 공명당과 함께 개헌까지 할수 있는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그 원인은 소선구제입니다. 1표라도 많으면 독식하는 방식이라 공명당 지지자의 몰아주기가 통하다보니 자민당도 놀랄 정도랍니다.
도쿄지역도 거의 독식했는데 비례대표 후보가 부족해서 사민당 후보가 당선된 경우까지 있다는군요.
지역대표를 뽑는 것이 아니라 국회의원을 뽑는 것이니
가능한 지지율/득표율에 비례하여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좋은 제도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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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수 채우기용 후보 “당선이라고? 앞으로 뭘해야 하지”
일본 9·11 총선뒤 자민당 지지자도 곤혹
현장 속 현장
9·11 일본 총선의 충격이 좀체로 가시지 않고 있다. 누구도 예상못한 대이변이니 그럴 만하다. 전체 의석(480)의 3분의 2가 넘는 327석을 거느린 공룡 여당의 출현에 대해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경악은 물론 ‘이래도 되나’는 당혹감마저 적지 않다.
집권 자민당에 표를 몰아준 사람들에게서도 당혹스런 표정은 역력하다. <요미우리신문>이 총선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민당에 투표한 유권자의 36%가 “의석이 좀 적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36%라는 수치는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파층’의 비율과 비슷하다. 고이즈미 열풍에 휩쓸려간 무당파층의 대부분이 이런 대답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보고 표를 던지긴 했지만 의석을 ‘싹쓸이’하다시피 하기를 바란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뜻밖의 결과는 물론 ‘고이즈미 카트리나’에서 비롯했다. 고이즈미 바람이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못지 않다고 해서 이렇게 부른다. 그 바람의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 바로 소선거구제의 ‘마력’이다.
자민당은 소선거구 투표에서 48%의 득표율을 올렸다. 그런데 얻은 의석은 전체의 73%인 219석이다. 제1 야당 민주당은 득표율이 36%에 이르렀지만, 17%인 52석을 얻는 데 그쳤다. 두 당의 지지율 격차는 12%포인트인 반면, 의석수 비율은 4대 1이다. 1표라도 많은 후보가 의석을 독점하는 소선거구제가 1996년 선거부터 도입된 이후 그 위력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실감하게 됐다. 고이즈미 카트리나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대도시 선거구(87석)에선 지난 2003년 총선 때와 비교해 무려 40석이 민주당에서 자민당으로 이동했다.
연립여당 공명당이라는 숨은 변수도 작용했다. 이번 총선에서 공명당 지지자는 약 900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80% 이상이 소선거구 투표에서 자민당 후보를 찍은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구가 300개이므로 자민당 후보는 선거구당 약 2만5천표를 그저 먹고 들어간 셈이다. 이 정도의 표는 접전지역의 당락을 바꿔놓기에 충분하다.
<마이니치신문>이 ‘공명당 프리미엄’을 분석해본 결과, 자민당 후보가 공명당 표를 전혀 얻지 못했을 때는 93명이 낙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맞대결을 펼친 자민·민주당 후보가 공명당 표를 동등하게 나눠가졌다면, 자민당의 소선거구 의석은 219석에서 126석으로 쪼그라든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제1당 유지도 불가능하다. 공명당 표를 절반만 얻었을 때는 자민당 의석이 39석 줄어드는 것으로 예측됐다.
따라서 고이즈미 바람의 위력이 예상을 훨씬 웃돌기는 했지만 과대포장된 면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소선거구제와 자민-공명당의 선거협력이 그 영향을 증폭시킨 것이다.
부풀려진 고이즈미 바람
일본 언론들은 이번 총선을 ‘고이즈미 극장’이라고 불러왔다. 이 극장의 최대 흥행요소는 고이즈미가 각본·연출·주연을 맡은 ‘자객극’이었다. 고이즈미는 우정민영화 법안에 반대한 자민당 중의원 의원 37명을 내쫓은 뒤, 이들을 떨어뜨리기 위해 지명도 높고 참신한 인사들을 투입함으로써 유권자들의 관심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자객극의 성공 배경에는 일본의 독특한 선거제도가 자리잡고 있다. 소선거구 출마 후보의 비례대표 중복공천이 그것이다. 소선거구에서 낙선해도 비례대표를 통해 ‘부활 당선’될 수 있는 것이다. 고이즈미는 이 제도를 한껏 활용해 참신한 정치신인들, 특히 여성후보들을 대거 자객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비례대표 상위 중복공천이라는 ‘안전판’이 마련돼 있기 때문에 고이즈미의 출마 요구에 선뜻 응할 수 있었다. 이 제도가 없었다면 고이즈미의 작전은 상당한 차질을 빚었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신인들로선 낙선 부담이 커 연고도 없는 선거구에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며, 비례대표로 동원했다면 흥미진진한 선거구 맞대결의 연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극장에 손님을 몰아준 일등공신은 매스컴, 특히 방송이다. 방송은 날마다 자민당 반대파와 자객으로 투입된 후보 사이의 격전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유권자들의 관심을 그쪽으로 끌고갔다. 젊은층이 많이 보는 방송 와이드쇼가 대표적이다. 늘 연예인 사생활 얘기로 떡칠을 하는 와이드쇼에서 지난 한달 동안은 총선 보도가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와이드쇼의 1주일 방송시간 합계를 보면, 8월 마지막주에는 총선 보도가 16시간이나 됐다. 9월 첫 주는 10시간으로 2위인 배용준씨 방일 보도(2시간)를 압도했다. 방송시간이 2시간 정도였던 2003년 총선과 비교해봐도 방송들이 고이즈미 극장에 얼마나 흥분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물론 방송 내용의 대부분은 자객 등 자민당 얘기였고, 각당 정책공약의 비교는 ‘양념’에 그쳤다. 이에 대해 핫토리 다카아키 릿쿄대 교수(미디어법)는 방송이 “자민당의 홍보기관으로 전락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번 총선의 수확 가운데 하나는 여성 당선자가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여성 당선자는 43명으로 최다 기록을 갱신했다. 1946년 39명이 당선된 이후 59년 만이다. 자민당에선 여성 후보 26명이 모두 당선됐다.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라는 긍정적 측면이 크지만 여성의원의 증가를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는 않다. 여성계에서도 냉담한 반응이 훨씬 우세하다. 여성의 정치적 권리 향상의 차원이 아니라 고이즈미의 ‘득표 수단’으로 동원된 여성후보가 많기 때문이다. 자민당에선 그동안 여성들의 출마가 드물었으나 이번에 2배 이상 늘었다. 한 출판사 여성 편집자는 “고이즈미를 위해 싸우는 여성들이라는 인식이 가장 싫다”며 “표가 된다면 뭐든지 좋다는 발상으로 여성을 이용하는 것은 남녀평등과 무관하다”고 지적했다. 여성 후보를 ‘개혁의 마돈나’로 포장해 이미지 개선을 노린 고이즈미와 의원 배지를 보장해주는 자민당을 이용해 경력쌓기를 꾀한 전문직 여성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마돈나 열풍’으로 여성들이 대거 원내 진출에 성공한 1989년 참의원 선거와도 좋은 대조를 이룬다. 당시에는 소비세 도입에 따른 국민 불만과 우노 소스케 총리의 여성 추문이 맞물려 “정치를 남자에게 맡겨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고조됐다. 여성 후보들은 ‘부엌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해야 한다며 남성과의 대치 전선을 분명히 하며 주도적으로 선거에 참여했다.
이번 총선의 압권은 뭐니뭐니 해도 멋모르고 찍은 유권자와 멋모르고 뽑힌 의원들이다.
일본 언론들이 투표 당일 젊은 유권자들로부터 들은 투표 이유를 보자. 20대가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말은 “고이즈미 각코이이”다. 일본에서 멋있고 매력적인 사람에게 늘 붙이는 형용사가 이 단어다. 대학을 중퇴하고 도쿄 시부야의 한 음식점에서 일하는 22살 여성은 “(고이즈미가 개혁을 위해선) 죽어도 좋다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각코이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정민영화에 찬성한다고 말했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다들 잘 모르고 투표하는 것 아닌가요.” 그의 객쩍은 변명이다.
진보냐 후퇴냐 ‘마돈나’ 논란
최근 설계 관계 회사에 입사한 25살 남성은 “인터넷에선 전부 자민당 지지 얘기 뿐이었다. 여하튼 (자민당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대학을 나온 뒤 전문학교에서 다시 공부를 하는 등 살인적 취업경쟁에 시달렸던 그는 고이즈미식 구조개혁으로 취업난이 훨씬 심해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그런가요”라며 뒷머리를 긁었다. 신문을 읽은 적이 거의 없고, 텔레비전에서 뉴스가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는 21살의 편의점 점원은 “고이즈미가 자민당 내부의 악당들을 잘라내는 게 멋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20대가 대다수는 아니지만, 선거의 물길을 바꿔놓기에는 모자라지 않는다.
로또 당첨에 못지 않은 낮은 확률로 엉겁결에 금배지를 받아든 자민당 당선자들은 더욱 가관이다. 이들은 명부에 이름만 걸쳐놓았다가 중복공천된 소선거구 후보들이 대부분 당선되는 바람에 빛을 보게 됐다. 이들의 첫 반응은 “아니 내가?”였다.
자민당 가나가와현 협의회 사무국장(56)이 비례대표로 입후보한 이유는 단지 유세에 필요한 선거차량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후보수대로 선거차량이 인정되기 때문에 당 본부로부터 이름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빌려줬을 뿐이다. 당선은 물론 꿈꿔본 적도 없었다. 그는 “뜻밖이다.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민당 남동권 비례대표 최하위권이던 당 본부 사무국 차장(55) 또한 “정말 놀랐다”며 쑥스런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그가 해온 일은 간사장 스케줄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외자계 증권회사의 계약사원인 26살의 최연소 당선자는 “99.99% 낙선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편, 자민당이 도쿄지역을 싹쓸이하면서 비례대표 등록 후보가 모자라는 바람에 의석을 물려받게 된 사민당 후보가 있다. 그는 96년 선거에서 공탁금을 돌려받을 수 없을 만큼 참패를 당하고도 처음으로 비례대표로 부활한 적도 있어 선거 운을 타고난 인물로 꼽혔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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