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역과 구동력의 문제는 오디오쟁이의 영원한 고민거리인 것 같습니다.
이것이 결국 하이엔드적인 저역을 얻기 위함이라 가정하고,
제 나름의 경험과 생각을 한번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1. 좋은 저역을 가진 앰프는?
* 힘, 속도, 정확도
권투선수가 상대에게 큰 데미지를 주려면 ‘힘’과 ‘속도’와 ‘정확성’을 겸비해야 합니다.
힘은 강한데 속도가 느리다면 상대의 몸은 밀리겠지만 데미지는 입히지 못하고,
속도는 빠른데 힘이 없다면 맞는 부위만 따끔할 뿐 데미지는 입히지 못하고,
정확도가 없다면 힘과 속도는 아무 의미도 없겠죠.
* 윤곽, 깊이/풍성함
좋은 앰프의 저역은 이러합니다.
윤곽이 번지지 않고 뚜렷하면서도 깊고 풍성합니다.
어떤 앰프는 번지지 않고 뚜렷한데 깊지도 풍성하지도 못합니다.(품질은 좋지만 전원부와 출력이 약한 앰프)
어떤 앰프는 깊고 풍성한데 번져서 흐릿합니다.(전원부와 출력은 강한데 품질이 떨어지는 앰프)
어떤 앰프는 깊지도 풍성하지도 못하면서 번지기까지 합니다.(전원부와 출력이 약한 앰프)
* 관계성
깊이/풍성함은 힘에 비레하고, 이는 전원부 및 최대출력과 비례하며,
윤곽은 속도와 정확도에 비례하고, 이는 전원부의 용량과 충실도에 비례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좋은 저역을 내려면 전원부 및 출력 모두 강해야 합니다.
(부실한 전원부에 출력만 높인 경우는 별 의미가 없겠습니다)
* 댐핑팩터에 대하여
댐핑팩터는 100만 넘으면 200이든 1000이든 별 의미 없습니다.
왜냐하면, 케이블 및 네트워크의 직류저항으로 인하여 100이든 1000이든 실제로는 모두 20 가까이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댐핑이 높으면 저역이 깊이와 양감이 빈약해지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실제로도 댐핑팩터는 전원부나 출력의 수치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TR 앰프의 댐핑팩터는 100 이상이므로,
진공관앰프가 아닌 한 댐핑팩터는 구동력 측면에서 별 고려할 사항이 아닙니다.
2. 저역만 좋으면 뭐하나?
아무리 저역을 좋게 하더라도 중역 및 고역이 꽝이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각 대역은 서로 청감상 상호작용을 하기에, 중역과 고역이 좋지 않으면 저역 조차도 안 좋게 들리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전원부와 출력을 높이면 저역은 좋아지나 중역과 고역이 망가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출력을 높이려면 증폭소자를 늘리거나 또는 다단계 증폭을 적용해야 하는데,
그 만큼 부품간 편차로 인한 왜곡이 늘어나고 회로도 복잡해지고,
대전류하에서 안정적인 작동을 위하여 추가적인 회로가 들어가,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음질은 나빠지는 쪽으로 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쓴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을 이야기하기 위함입니다.
구동력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구동력이 아무리 좋아봐야 중고역을 겸비하지 않으면 서브우퍼용 앰프에 불과하다고...
(단, 멀티앰핑은 저역과 중고역을 서로 다른 앰프로 구동시키므로 예외입니다.)
3. 좋은 저역을 가진 스피커는?
결국 앰프의 능력은 스피커를 잘 울리기 위함이니 스피커쪽을 함 살펴보겠습니다.
a. 저역은 깊이 안 내려가는데 빵빵 터지는 스피커가 있습니다.
비교적 소구경이면서 low damped 성향으로, 높은 저역대(100Hz 부근)가 부풀어 있습니다.
우퍼를 작은 용적에 담은 것으로, 주로 노래방 스피커이 그러하며, 구동 쉽습니다.
앰프에 투자할 가치가 별로 없습니다.
b. 저역이 깊으면서도 풍성한 스피커가 있습니다.
비교적 대구경이면서 medium damped 성향으로, 저역이 자연스러우면서 깊게 내려갑니다.
우퍼를 적당한 용적에 담은 것으로, 구동이 그리 어렵지 않으면서도 좋은 앰프를 물리면 그 만큼 좋아집니다.
c. 저역이 적당히 깊고 적당히 풍성한 스피커가 있습니다.
비교적 소구경이면서 medium damped 성향으로, 저역이 자연스러우면서 적당히 깊게 내려갑니다.
우퍼를 적당한 용적에 담은 것으로, 구동이 쉬우며 적당히 물려도 들을만하게 납니다. 착한 스피커입니다.
d. 저역이 깊은데 풍성하지 않은 스피커가 있습니다.
비교적 소구경이면서 high dampled 성향으로, 셋 중 높은 저역대(100Hz 부근)의 음압이 가장 낮습니다.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놈입니다.
즉, 우퍼의 요구치보다 실제용적을 크게 하거나, 흡음재를 늘려 가상용적을 늘린 경우입니다.
이러면 같은 구경이라도 c 보다 저역이 더 깊게 내려갑니다.
그런데 내려가긴 하되 저역이 나오다가 마는 듯한 답답한 느낌을 줍니다.
여기에 전원부와 출력이 약한 앰프를 물리면 저역이 웅얼웅얼거리며 이게 뭥미~ 가 되죠.
이 놈한테는 비로소 전원부/출력/음질이 겸비된 앰프를 물려야 저역이 좀 터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렇더라도 그 답답한 느낌은 어느정도 남아있습니다.
왜냐하면 태생적 성향은 바뀌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마지막 답답한 느낌을 없애보려 갖은 앰프 바꿈질을 시도하는데,
적당히는 포기하고 들어야지 별로 부질없는 짓입니다.
이럴 바에는 b에 적당한 앰프를 물리는게 낫다고 봅니다.
그럼 왜 이런 스피커가 존재하느냐? 아래는 개인적인 생각임을 먼저 밝히며...
작은 스피커로 고가에 판매하고는 싶은데,
적어도 그 가격대라면 저역에 대한 기대치가 있어서 깊게는 나와줘야 하겠고,
소구경 소용적에 그러자니 결국 high damped 설계를 할 수 밖에 없는데,
다행히 가격대가 높으므로 그 가격에 맞는 전원부 충실한 고급 앰프를 물릴 것이고 따라서 그 성향이 자연스레 보완이 될 것이며,
만약 제 저역이 나오지 않으면 이건 원래 깊고 웅장한 저역의 잠재력을 가진 스피커인데 이를 끌어내려면 앰프가 받쳐줘야 한다는 논리로,
모든 것을 기기 탓으로 돌려 면피하기 쉽고, 더불어 기기도 판매하는데 아주 좋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러한 설계를 하는게 그렇게 기술력이 필요하고 물량투입이 더 들어가느냐...
그냥 인클로저 용적을 더 키우거나 또는 마그넷 사이즈만 늘리면 되는 것으로, 별거 아니란 것입니다.
인클로저는 두껍고 무겁게 하여 공진을 최소화하고,
모서리는 면취 혹은 라운딩 처리하여 회절을 줄이고,
필요시 트위터를 안으로 밀어 시간축정렬해주면 그 뿐으로,
그 이상은 성능과는 별 관련이 없으니, 그래봐야 얼마 할까요...
물론 제작자가 high damped 성향의 소리 자체를 선호하여 그런 설계를 한 메이커도 있기에(아발론 등),
예외는 있겠지만요....
4. 구동력적 매칭 문제 vs. 밸런스적 매칭 문제
구동력이 전원부와 출력에 비례한다면 전원부 강력하고 출력 쎈 앰프가 만고장땡이어야 할텐데, 실제로는 예외가 많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어떤 이는 구동력이 그래도 모자라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매칭 탓으로 돌리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이 위에서 언급했듯 중역과 고역의 품질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매칭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만약 앰프 자체의 중고역 품질이 떨어진다면 중고역대가 멍청한 스피커라면 오히려 티가 안 나서 괜찮게 들릴수도 있겠고, 해상도가 높은 스피커라면 그 나쁜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 안좋게 들릴 것이겠죠.
만약 앰프가 고역이 밝은 성향인데 스피커도 밝다면 소리는 피곤해지겠죠. 이걸 구동력이 딸려서 저역이 안 나오기 때문에 고역이 나선다라고 생각한다면 오진입니다.
만약 스피커가 high damped 성향이라 저역이 안 터지는데 이걸 밸런스적 매칭문제로 생각한다면 또한 오진이겠죠.
결국 스피커와 매칭시 이것이 구동력적 매칭 문제인지 밸런스적 매칭 문제인지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5. 하이엔드 저역에 대하여
하이엔드 저역이란 깊고 풍성하면서도 결코 번지지 않고 윤곽이 또렷합니다.
눈 앞에 고해상도로 저역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것이 보입니다.
에너지감이 넘쳐 흘러서 뱃가죽이 떨리고 가슴이 오그라드는 몸이 반응하는 저역입니다.
실음보다 오히려 과장된 면이 있다 싶은데... 그 쾌감은 대단합니다.
중고역을 실음대비 과장시키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저역을 과장시키는 건 결코 쉬운일이 아닙니다.
강력한 전원부, 높은 출력, 고음질의 중고역을 갖췄다면 하이엔드 앰프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매우 고가인데, 물론 상당부분은 샷시비용이나 유통마진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저역과 중고역을 한번에 잡기는 쉽지 않기에
물량투입과 기술력이 동시에 필요하고 따라서 어느정도 비쌀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 경험상 하이엔드 메이커 제품으로 출력 채널당 200W, 무게 50kg 이상은 되어야 이런 저역 슬슬 밷어내기 시작하더군요.
다시 강조하지만, 중고역이 받쳐주지 않으면 저역도 의미가 없으며 따라서 출력만 높은 저가형 파워(PA용 포함)를 하이엔드라 부르지 않는 이유입니다.
하이엔드 저역을 들으려면 파워에 그러한 저역신호를 일단 보내줘야 하기에,
사실 프리와 소스기기의 저역품질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프리와 소스가 부실하면 아무리 파워가 좋아도 하이엔드 저역 제대로 안 나옵니다.
이 단계에서는 케이블의 영향도 증가합니다.
그렇게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면, 불과 5인치짜리 북쉘프로도 뒤로 자빠질 저역 뱉어냅니다.
개인적으로 사실 아파트에서 그러한 저역을 적당한(?) 볼륨으로 틀면 아랫집에서 난리가 나기에 정말 낮에만 가끔 듣게 되더군요. 게다가 리니어 방식이라면 가뜩이나 무게와 전기료 등 운용이 부담스러운데 제대로 듣지도 못하니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어, 결국 오래 사용하지 않게 되더군요.
그런 면에서 디지틀앰프가 제격이긴 한데 아직 진화가 더 필요한 듯 하므로 그 때를 기다려 봅니다.
생각해 보면 하이엔드 액티브 서브우퍼와 세틀라잇 구성이 잘만 셋팅하면 괜찮을 수 있겠다 싶기도 하구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태클 환영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