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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가 뭔지나 알고 욕하는지 졸라 궁금하다.
시사종교 > 상세보기 | 2005-06-19 13: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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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1,034

제목

친일파가 뭔지나 알고 욕하는지 졸라 궁금하다.

글쓴이

김원전 [가입일자 : 2004-12-22]
내용
친일파가 뭔지나 알고 욕하는지 졸라 궁금하다.



울나라가 쪽바리들 식민지가 된 이유는 조선땅에 애국자가 적어서도 아니고 비분강개하는 열혈남아가 없어서도 아니고 충신열사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조선민중의 용기와 저항정신이 허약했던 때문도 그 이유가 아니다. 한일합방, 경술국치의 근본적인 이유는 딱 하나로 귀결된다. 그 원인의 최종점은 당시 조선민중의 무지와 몽매함이었다. 단지 그것 뿐이다.



유럽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적 근성이 발휘되던 그 때 -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중동의 모든 민족들은 서구의 열강에 비교할 때 원시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역사가 몇 만 년이 되었건, 그 인구가 몇 억 명이 되었건, 찬란한 역사와 융성한 문화의 저력이 있던, 없던 간에 산업혁명을 통하여 이루어 낸 서구의 열강들이 도달한 수준에는 까마득히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차이는 우리가 지금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엄청난 격차를 가진 것으로 비교불급의 것이였다. 현재의 미국과 아프리카의 후진국가의 국력의 차이의 열 배, 아니 백 배 이상의 격차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에 비하면 반만 년 역사의 조선민족의 지성, 기술, 문화라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수준이였다. 특히나 서민들의 생활상과 지식의 정도, 일반적인 문명화의 수준으로 보면 한마디로 야만인, 그 자제였다.



그 생활상태가 어떠했냐면.... 조선조 말기 즉 일제 시대의 직전인 개화기의 조선인들은 소수 양반층을 제외하고는 전부 맨발로 다닐 정도였다. 짚신이라는 것은 먼 길 갈 때나 두어켤레 옆구리에 차고 갔지만 태반은 그냥 매달린 채 돌아왔다. 여자들은 젖통을 태연히 내놓고 돌아 다녔고 뒷간이라는 것은 퇴비를 모으기 위한 창고였지 위생을 위한 장소가 아니어서 남녀불문하고 길에서, 들판에서 예사로 볼 일을 보곤 했다. 그것을 치우라고 개를 길렀다.



테레비에 장금이나 보고 착각하지 마시라. 그 정도의 세상은 환상의 나라이다.



입고 있는 옷은 누더기 넝마쪼가리에 불과했고 그 먹는 음식은 꿀꿀이죽보다도 나을 것이 없었다. 그것도 없어서 춘궁기에 배를 채우지 못해 (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찾아 먹어도 ) 떼거지로 굶어 죽었다. 위생관념이나 인권 같은 개념은 아예 생각으로라도 못했다.



기술 ? 민중들의 기술은 고작 밭 갈고 씨 부렸다가 가을되면 추수하는 고래의 농사법, 새끼 꼬고 짚신 삼는 동한기의 소일거리, 막그릇, 막사발이나 구워내는 도기 제조술, 단순한 호미나 가래를 겨우 만들 정도의 대장쟁이 기술, 솔나무 꺾어다가 지게나 만드는 것 정도가 조선일들이 할 줄 아는 전부였다.



이러한 정도의 수준이 조선인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니뽄도 차고 게다짝을 끌고 다니면서 뻑하면 사람 모가지나 댕강댕강 잘라대던 쪽발이들도 문명과는 거리가 먼 야만인이었고, 아시아의 중화라는 대국 중국도 나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3 억 중국인의 수도인 북경도 하수도 시설, 상수도 시설은 전무했고 거리에는 똥, 오줌이 넘쳐서 홍수를 이루는 정도였다. 이건 도시가 아니라 백 만 명의 꺼러지가 몰려 사는 거대한 빈민굴 이며 난장판이 북경 이였다.



영국군 수 천 명이 소풍가듯이 놀러가서 정복한 땅이 2 억의 인구를 가졌던 그 찬란하다는 아소카 문명의 후예들이 만들었다는 인도의 모습 이다. 중국이라고 충신열사거 없었고 의인, 지사가 모잘랐겠나? 의화단 수십 만이 신식군대 칠백 명을 못 이기고 깨져 버렸다.



그것은 나라전체가, 국민 전체가 무지한 죄며 몽매한 업보이지, 애국심이나 충성심, 투철한 국가관, 용기 같은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암만 충실하고 넘쳐났어도 그 걸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고 그런 것으로 피 할 수 있는 위기가 아니기 때문 이였다.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그 참화를 비껴간 유일한 사례인 일본도 사무라이 정신으로 이겨낸 것이 아니었다. 선배열강들에게 비루하고 아부하며 눈물겹도록 굽신거리면서 이를 악다물고 배우고 익혀서 그 호구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그 과정을 보면 기적이라고 말해도 부족할 정도이다. 그러한 환골탈태의 기적도 50 년 이나 걸렸다.



조선, 중국, 베트남, 인도, 파키스탄, 기타 등등 아시아의 모든 나라, - 여타 세계 각국은 말 할 것도 없이 - 모든 민족은 단 하나, 쪽빠리 일본놈들 빼고는 모조리 서구 열강의 식사거리로 전락해 버렸다. 단 조선, 만주, 중국, 대만은 선배제국의 허락을 받은 세계열강의 귀염둥이인 일본의 잔나비가 먹겠다고 아둥대니까 형님들이 슬쩍 비켜준 케이스에 불과하다.



조선인만이 특별히 못나서도 아니고 친일파란 놈들이 헤작되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다. 애국심이나 용기로 극복 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사태가 아니었다. 세계를 통째를 뒤덮은 거대한 홍수요 해일이며 전지구적인 쓰나미인 것이다. 그것에 맞서 이겨내지 못했다고 우리 스스로 자책하고 번민 할 이유가 없다. 거대제국 인 중국도 인도도 속절없이 떠내려간 대격랑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에서 헤어나는 길이요 방법인데... 그것이 애국자가 부족해서 겪은 일이면 애국자를 길러 내어야 하고 용기가 없어서 당한 일이면 용기를 기우면 되고 체력이 약해서 당한 일어면 운동을 하면 될 텐데....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일의 원인은 단 하나 무지몽매해서 당했던 일 이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벗어나는 일은 바로 배우고 익히는 것 뿐인 것이다. 그 센세이가 양놈이던 왜놈이던, 친일이던 매국이건 무조건 배워야 했다. 쪽바리 앞에서 무릎을 꿇고라고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수치도 아니다. 얄량한 자존심 때문에 굽히지 않고 배우지 않아서 무지몽매한 상태로 있는 것이 진정 수치인 것이다.



기술과 지식에는 일제, 미제라는 것이 없다. 지식에는 국적이 없고 과학에는 국경이 없으며 기술은 피부색을 따지지 않는다. 총 쏘는 것은 쪽바리에게 배워도 총을 쏘면 적이 죽고 대포를 쏘는 것은 양놈에게 배워도 대포를 쏘면 적의 성곽이 무너진다. 누구에게 배웠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총을 쏠 줄 알아야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총과 대포가 뭔지도 모르던 십 만의 동학군이 우금치 고개에 잠들어 있다. 무지한 자의 용기가 통하는 시대가 아닌 것이다. 모르는 애국자, 기술 없는 충신, 무지한 충신열사 만 명보다 친일 기술자 1 명이 이나라에는 더 필요했다. 나라를 살리는데 어느 쪽이 더 필요한 사람인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그래서 대다수의 신생독립국들의 지도자들은 예외없이 피식민지 시절에 자기를 통치했던 주인 밑에서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던 사람들이었다. 간디, 네루, 장개석, 막사이사이, 이광요 그리고 우리의 박정희.... 모든 독립국들의 건설과 근대화는 친영파, 친미파, 친화란파, 친불란서파, 친일파들이 담당했다. 그것은 필연적이고 당연한 일이지 다른 방법, 다른 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도 그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기들의 리더를 그것을 이유로 비난하지 않는다. 오직 단 하나 한국인들만 그러하다.



그렇지 않은 나라가 한 둘 있긴한데, 노무현 대통령이 존경한다는 모택동이 건설한 중화인민공화국과 나무이파리로 대동강을 건넌다는 위대하고 영명하신 영도자 김일성 주석이 세운 주체조선이 있다. 둘 다 제국주의의 침략의 시기에 자기 나라를 침략해 온 외국과 투쟁하는데 평생을 바쳤다는 사람들이 세우고 통치한 나라인 셈이다. 그런데 이들은 둘 다 침략자 보다도 더 잔인하고 악랄한 범죄 행위를 자국민에게 자행했고, 두 나라 모두 일제하의 생활보다 더 비참한 기아 상태로 국민들을 내몰았다는 것이다. 모택동과 김일성은 둘 다 일본에게 희생된 국민들 수의 열 배가 넘는 동족을 쪽바리 일본제국주의자들 보다 더 혹독하고 처참한 고통과 비인간적인 범죄로 숨지게 만들었다. 문화혁명 기간 중에 희생된 중국민의 수가 삼천 만 명에 달한다. 이것은 남경 학살 때 일제가 죽인 삼십 만 시민의 백 배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김일성은 한국전쟁을 일으켜 수 많은 동족을 죽인 것은 제외하더래도 그의 통치 하에서 맞아죽고, 굶어죽고, 총살당한 인민의 수는 쪽바리에게 끌려가 죽은 사람 수의 열 배를 넘는다.



지금 중국은 모택동의 어록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등소평의 유훈으로 통치되고 있는 나라이다. 문화대혁명의 참화를 통해서 등소평은 정신주의, 애국주의의 폐해가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 오는지를 몸서리치게 실감했고, 복권 된 등소평이 중국을 개방하면서 8 억의 중국인민에게 내린 교시가 바로 - 흑묘 백묘론 - 이다. 검은괭이든 흰괭이든 쥐잡는게 장땡이라는 말이다. 등소평의 이 말 한마디에 8억의 중국인민은 지금 누가 검은냐 희냐가 아니라 누가 쥐를 잘 잡느냐로 경쟁하게 되었고 그 황하의 기적은 지금도 진행중인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모택동은 지금의 중국인민에게는 타부의 대상이다. 의도된 기피의 대상인 것이다. 이런 중국에 가서 노무현은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태연스럽게 말해서 얼마나 중국인들을 놀라게 했던지.... 얼척이 없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지 딴에는 점수 좀 딸라고 한 짓거리겠지만 그 한마디로 한국대통령은 완죤히 똥 되버린거지... 한마디로 정신나간 놈이 된 것이다. 국제감각이 그렇게도 없어서야.....쩝



우리는 해방된 조국, 신생 대한민국의 건국과 건설을 친일파들이 앞장서서 해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누가 했건, 어떤 식으로 했건, 지금 우리는 세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경제대국이며 군사강국이다. 우리의 아부지들이 과거 일자리를 찾아서 일본으로 밀항선을 타던 그때처럼, 지금 아시아 각국의 사람들이 집 팔고 논 팔아서 비자사서 들어오는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다. 쪽바리들이 기생관광하러 몰려오던 나라가 우리나라였다. 그러나 지금의 왜놈들은 감히 우리나라에 와서 룸싸롱 변변한데 못간다. 글마들 호줌지사정으로는 너무 삐까번쩍한 곳이기 때문이다. 잘난 한국남자들이 태국으로 필리핀으로 중국으로 해작질하러 다닐 정도가 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게 다 너거들이 친일파라고 부르는 사람들 덕분이다. 너거들이 친일파라고 불러서 그렇지, 사실은 그 암울했던 시절에 이를 악다물고 공부하고 익히고 노력해던 뛰어난 인재들 이며 그들의 앞장섬에 지금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욕한다.

왜 하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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