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라는 취미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되질 않으면 상당히 외곬수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부분은 나한테도 예외적이지 않아서 '임형주'라는 남성보컬을 비교적 최근의 신간에서 발견했다. 아무 기본적인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단지 "Lotus(연꽃)"이라는 어감이 좋아서 산 앨범이었다.
'한국적' 이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정의를 내려보라면 요즘은 좀 자신이 없다. 수없이 흘러들어온 서구의 문물의 홍수와 그 사이에 헤매이고 있는 한국적 문물의 혼란 상태가 현재의 '한국적'인 상태가 아닐까? 그러기에 음반을 받고 처음 서곡에 들어갔을때의 느낌은 설명할수는 없지만, 지극히 익숙한 느낌이었다. 아마도 간간히 섞여오는 대금소리와 고즈넉한 절의 침묵을 깨뜨리는 풍경소리가 그 느낌을 대변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오페라의 장대한 막을 여는듯한 서곡이 끝나고 戀人(연인)이라는 곡이 들려온다. 요즘은 듣기 힘든, 그러나 낯익은 소리가 들려온다. 태평소의 소리가 작지 않은 오케스트라에 섞여있다. 哀而不悲라는 표현이 이처럼 적절하게 쓰일 수 있을까? 어찌보면 직설적인 감성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있어서 '자신의 슬픔을 안으로 갈무리하는 듯한' 느낌이 반갑기조차 한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한국인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 음반에 쉘브르의 우산의 주제가나 푸치니의 나비부인 중 '어느 개인 날'을 끼워넣은건 다소 실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를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에 찬물을 끼얹어서 맥을 끊는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인데... 오히려 장사익씨 풍이나 조수미씨 풍의 '아리아리랑' 같은 곡을 끼워넣었으면 어땠을까?
역사의 기술은 '승자의 역사'에 대한 기술이다. 그 외의 야사나 패자의 역사가 무대에 나설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백지로 온 편지'라는 제목은 어찌보면 이 판에 적절한 선곡이자 적절한 주제가 아니었을까? 음악에 사용된 곡도, 노래를 하는 풍도 현대적인 느낌이 물씬 살아있다. 그러나 들리는 노래는 한동안 구전되지 못했던, 잊혀진 전설의 향기가 느껴진다. 아마도 이 판의 전반적인 흐름은 현대적이되, 잊혀진 이들에 대한 애정이 그 주제가 아니었을까? ^^
양희은씨가 불렀던 것으로 기억하는 '한계령' 역시도 중성적인 느낌을 잘 살려 이 음반의 기본적인 주제에 한 몫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리메이크는 오리지널을 능가하기 어렵다.'라는 기본 통념은 깨질 못하지만 애써 흉내내려 하는 것보다 자신의 스타일로 재창조를 한 것은 충분히 들여다 볼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사실 음반 한장을 사서 5곡 이상을 건지게 된다면 나름대로 성공한 구입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음반을 고르고 양질의 선곡이 되는것은 어렵다. 이 음반이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각인이 되었는지 모른다.(무엇보다 이것을 OST로 썼던 영화 '무영검'은 기대치에 상당히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 그러나 억지강매로 '한국적'을 강요하느라 변화의 물결에 대응하지 못하거나 혹은 유입된 문화에 먹혀 자신의 주체성을 찾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융합과 조화를 통해 재 창조를 이루는 것은 문화로서의 생명력을 이어간다고 여겨진다.
전제적인 선곡은 그다지 부담이 없다. 무리하게 가창력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나지막하게 속삭이는듯한, 그러나 힘이 실려있는 목소리로 호소력있게 감정을 전달한다. 어찌보면 안드레아 보첼리나 미성을 자랑하는 최승원씨의 느낌이 임형주에게 느껴진다. 듣기 좋다.
적어로 '연꽃'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판은 그런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지극히 한국적인 느낌의, 한국적인 판이라는 점에서...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