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컬랙션으로의 의미를 지니는 뮤지션들의 판이 몇 종류 있다. 경제적인 관점이나 이성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제적, 이성적, 객관적인 관념이 통용되지 않는게 컬랙터의 세계가 아니던가~ 그 중에 하나가 조지 윈스턴 컬랙션이다. 마치 애니메이션이 내가 AV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마련한 것처럼, 조지윈스턴의 음악들은 아마도 내가 오디오에 입문하게 되는 구체적인 동기를 마련하게 된 것 같다. 그런 그의 컬랙션에서 유일하게 빠져있는 음반이 '빈스과랄디를 위하여'라는 판이다. 십수년쯤 전에 나왔던 이 판을 당시의 안목으로는 당최 납득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제법 시점이 지나 피드백 과정을 거쳐서 그 이해할 수 없었던 '빈스과랄디'의 판을 하나 잡았다. 음반을 분류하면서도 난해했던게 이것을 OST로 분할을 해야 할지 아니면 Jazz로 분할을 해야할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는데...
첫 트랙을 시작하면서 끝내기까지 버릴만한 곡이 단 한곡도 없었다. 들어봤던, 혹은 무의식적으로 알고있음직한 곡들이 경쾌한 피아노 멜로디로 이어진다. 그 유머러스하고 밝은 기운은 "Fly me to the moon"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이사오 사사키의 "Moon & Wave"의 그것이나 줄리 런던등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지만 또 '우수어린'이란 공감대를 갖고 있기에 아쉬워서 몇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그 이후에 더 곡이 없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에 반복버튼을 누르지 않았을까?(혹은 판갈기가 귀찮아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 제법 이름 날린 재즈 뮤지션 중 빈스과랄디처럼 외곬수로 음악을 해 온 사람도 그다지 많지는 않다. 그런 뮤지션에서 나오는 음악치고는 너무도 자유분방하고 희노애락이 분명해서 한동안 어리둥절 했다.
다소 겨울 느낌이 나는 음반이다. 따뜻한 아랫목에 책을 읽으면서, 혹은 다소 스트레스 받는 작업을 하면서 한켠의 귓가에 울려퍼지는 경쾌한, 그러나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 피아노 소리에서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의 모습을 어렵잖게 그릴 수 있다. 보편적으로 클래식이라고 말하는 판들은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마치 애니메이션 '마크로스'에서 모든 전쟁을 종결시켰던 것이 몇 만년전 거리에서 울려퍼졌던 이름모를 'Love song'이었던 것처럼 험한 세월의 풍파를 넘어 살아남은 그 시대의 유행가가 소위 말하는 클래식이 아닐까? 우리 시대의 클래식, 가요로는 김광석님이 있듯 비틀즈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길지 않은 삶을 살다간 빈스 과랄디의 이 판도 우리 시대의 '클래식'이 아닐까 문득 웃음지어 본다. 분명 무게감은 없지만 그 따뜻함과 발랄함의 여유있음에 전염되면서... 겨울에 이 음반을 들으면 무척 따뜻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조지 윈스턴이 빈스 과랄디를 추억하게 된 이유도 이런 '공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단 느지막하게 산 덕택에 신포맷의 혜택을 충분히 받았다. 사실 일반판과 직접 비교를 해본 경험은 없지만 크게 음질적 측면에서 나아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정말 좋은 음반은 신포맷과 녹음이 전부가 아니라 그 느낌, 호소력, 예술성과 공감대로 그 실력을 보여주지 않을까? 이 음반은 그런 것을 대표하는 음반중 하나가 되리라 생각한다. 아마 그때 샀던 10여장의 판중에 가장 Best choice가 되버린 이 판.. 이 판이 적어도 나에게 주었던 느낌은 "익숙함"과 "자연스러움"이었다. 어제 잠시 할애된 점심 시간 10여분의 짜투리 시간동안 사이먼 레틀이 지휘한 "슈베르트 sym no.9 The great"에 대한 느낌을 애써 짜내려다 실패했던 이유는 억지강매로 느낌을 만들려 했다면 아마도 이렇게도 쉽게 글을 쓸 수 있게 되는것은 그 '자연스러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오늘은 퇴근해서 그 'Fly me to the moon'을 들으며 빗속의 우수에 빠져보고 싶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