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W 사용기란에 QUAD 33에 대한 사용기는 없는듯 하여
경험은 얼마 안되는 초보 막귀지만, 사용기 올려봅니다.
여러 고수님들이 많은 와싸다 게시판에 글 올릴때에는 항상 조심스럽네요.
오디오에 발을 디딘자의 숙명이랄까요. 업글병, 바꿈질병이 도졌습니다.
진공관 싱글로 음악을 듣다가 사용감이 떨어지는 QUAD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으로 전기밥좀 먹이다 글 올립니다.
일단 제 청취환경이라는 것이 여러 사람이 같이 쓰는 사무실 책상 앞에서 소구경 북셀프라
대편성을 듣기에도 애매한 공간이며, 그렇다고 자극적인 댄스나 팝을 틀어놓기도 애매한 공간입니다.
차분한 재즈나 클래식 소편성 정도를 즐겨듣습니다.
우선 유명한 일화.
쿼드의 창업자 워커씨에게 평론가가 당신네 쿼드는 이래저래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고 하니, 워커씨가 "그래서 당신이 쿼드로 클래식을 듣는데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로 하자 평론가는 아무말도 못했다는 일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아무생각 없이 음악을 듣는데에 더없이 편안한 음색입니다.
전반적으로 데드한 스페이스에서 연주를 하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소리가 먹힌 멍청한 사운드, 평면적인 사운드라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더군요. 틀린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피아노의 경우, 소프트 페달+약한 사일런트 페달을 밟은 착색이 느껴집니다.
날서지 않은 음색을 들려줍니다. 하지만, 현의 울림이 끝까지 느껴지면서 묘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피아노 고음부의 터치, 포르테가 줄 수 있는 자칫 경질의 느낌을 감쇄시켜주면서 포근함을 느꼈습니다.
파워풀하면서 타이트한 저역이나, 청량감을 주는 상쾌한 고음과는 거리가 멀지만
음악이 줄 수 있는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끼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느낌은 현에서도 나타나서 바이올린이나, 첼로의 찰현음이 줄 수 있는 거친 느낌을 순화시켜 줍니다.
혹자는 송진이 휘날리는 듯한 그런 생생한 느낌을 좋아하시던데, 쿼드는 그런 느낌과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음의 전달력에는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스무드하게 악기를 다독이는 느낌이랄까요?
첼로의 경우에는 좀 더 전반적으로 아래로 가라앉은 듯한 차분한 음색을 느꼈습니다.
요약하자면 옆집에 사는 대가의 연습시간을 즐기는 듯한 기분을 줍니다.
술로 따지면 300B가 부드럽지만 상쾌하게 넘어가는 조니워커 블루라벨, 로얄 살루트 21년산이라면
쿼드는 부담없이 즐기는 리큐르. 그중에서도 깔루아 정도?
맞습니다. 단점도 그런거지요. 앞서 말한 멍청한 사운드, 무언가 한겹 낀 티미한 사운드.
하지만 눈에(아니 귀에) 불을 켜고 음악을 분석하는 평론가가 아닌 이상
일반인이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로서의 오디오로서의 역할은 그만 아닌가요?
워커씨가 말한대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데 부족함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덧붙여 도시락만한 사이즈와 위, 아래로 포갤 수 있는 프리, 튜너. 종렬로 배치시킨 파워.
짙은 베이지 계열의 샤시에 너무 튀지 않는 오렌지색의 배색은 디터람스의 브라운에 미치지는 못할지언정
21세기에도 유효한 디자인의 결정판인 것 같습니다. 33 이후의 모델들의 디자인이 다소 메카닉하게 흐르는 데에 반해 33은 이미 처음부터 그야말로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을 한 듯한 매력이 엿보입니다.
작은 서재 책장 사이에 끼워넣고, 적당한 북셀프에 물려 초저녁 튜너를 들으면서 책을 읽는 것이
이녀석을 들일 때의 로망이었는데...잠시 접어두어야할지도 모를겠네요.
나가면 언젠가는 다시 들이겠지요. 그때에는 영국에 직접 가서 상태 최상인 놈 풀셋으로 집어들고, 본사 AS실에 가서 오버홀 받고 앞으로 50년 더 쓰렵니다.